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경영권 포기 막후
막후돈되는 ‘알짜’는 품안에 알고 보면 ‘윈윈’ 전략
[일요서울Ⅰ이범희 기자]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한진해운 지분을 시숙(媤叔)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측에 모두 넘기고 물러선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영권을 포기함은 물론 지분관계도 완전히 정리하는 방식으로 퇴진 배경을 밝혔다. 이로써 2006년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 사후 조씨가에서 최씨가로 넘어갔던 회사 경영권이 또 다시 조씨가로 변경된다. 그렇다면 해운업계 맏형겪인 한진해운이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다.
최 회장은 2006년 남편 고 조수호 전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해 가정에만 신경을 쓴 전업주부였다. 당시만해도 해운업계는 불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미망인의 경영수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진해운은 근래 수년간 해운업이 불황에 빠지자 실적이 악화돼 지난해 3분기까지만 417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해 연말 3000억 원의 유동성을 지원한 채권단은 유상증자까지 마치면서 한진해운이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 회장은 결국 회사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결정을 내렸다.
지주사 인적 분할 회사 위해 지분 다 포기
최 회장이 물러나겠다고 밝힘에 따라 최 회장과 조 회장은 한진해운홀딩스를 분할해 계열 분리키로 하고 조만간 분리방안에 최종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먼저 한진해운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한진해운홀딩스를 인적 분할한다. 신설 법인에는 한진해운과 상표권사용수익 등의 자산이 이전되고 기존 법인에는 한진해운 여의도 사옥과 ㈜싸이버로지텍 등 계열사들이 남는다.
인적 분할하기 때문에 한진해운홀딩스의 기존 주주들 지분도 기존 법인과 신설 법인으로 나눠진다. 최 회장과 조 회장 측은 서로 주식을 교환해 지분 관계를 정리할 계획이다. 주식 교환이 완료되면 최 회장은 기존 법인의 지분만, 조 회장은 신설 법인의 지분만 각각 갖는다.
이후 신설 법인은 한진해운과 또 다시 합병한다. 한진그룹은 합병된 회사가 실시하는 4000억 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합병회사를 대한항공 자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해운사만 떼내 대한항공에 넘겨…물류사업 챙긴 속내
최 회장 결심에 한진 증시 강세…유동성 위기 벗을까
이 같은 과정을 전부 마치면 최 회장은 한진해운 지분을 단 1주도 갖지 않고 한진그룹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한진해운홀딩스를 분할하고 남은 회사를 통해 여의도 사옥과 싸이버로지텍, 한진SM, 3자 물류사업(3PL) 부문 등을 지배할 뿐이다. 싸이버로지텍은 한진해운을 포함한 국내외 선사, 터미널, 물류회사 등에 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하는 회사다. 한진SM은 선박관리회사이며 한진해운의 3자 물류사업 부문도 기존 법인에 남는다. 최 회장은 결국 매출 10조원대 한진해운 경영권을 내려놓고 대신 5000억 원대 3자 물류 전문기업만을 경영한다.
사실 한진해운을 조 회장이 다시 품게 될 것이라는 ‘한진해운 편입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말 한진해운이 대한항공으로부터 1500억 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 받았을 때도 비슷한 전망이 나왔다. 특히 대한항공이 자금 지원 대가로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 15.36%를 담보로 받으면서 무게가 실렸다.
게다가 지난달 말 석태수 ㈜한진 대표이자 한진칼 대표이사가 한진해운 신임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한진해운에 대한 조 회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실제로 석 대표는 조 회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재계에서는 최씨 가문이 한진그룹 내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너가 있는 기업에서 오너가 권력다툼을 통해 밀려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한진그룹 내의 특수한 상황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도 한 일이다.
한편 조 회장은 이번 한진해운 인수를 통해 선친인 고(姑) 조중훈 회장의 경영철학이었던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육해공에서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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