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보복징계 처분 전모

“성희롱 피해자를 왕따·정신병자로 몰아”

2014-02-10     박시은 기자

[일요서울Ⅰ박시은 기자]성희롱 피해자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는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다. 대기업 10년차 과장이었던 한 여성이 상사로부터 1여 년간 성희롱에 시달렸다. 정신적 충격에서 아직 채 벗어나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되려 ‘꼬리를 쳤다’며 손가락질 받았다. 이로도 모자라 그녀를 도와준 동료와 함께 창고 같은 공간에서 감금 상태와 다름없는 수모를 겪고 있다. 반면 성희롱 가해자는 단 2주간의 정직 처분만으로 모든 죄를 씻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곳은 ‘르노삼성자동차’. [일요서울]이 그 내막을 알아봤다.
 

고통 호소 후 ‘꼬리쳤다’ 소문 파다
조력자 동료, 불성실 근태로 징계

르노삼성자동차 사내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지만 오히려 피해자가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성희롱 피해자와 그를 도와준 동료 직원에게 회사가 불이익 조치를 했느냐를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실이 지난 4일 한 방송을 통해 보도되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성희롱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1여 년간의 고통을 참다못해 신고했지만 그 후 돌아온 것은 부당대우였다. 심지어 회사는 피해자를 도와준 동료 직원에게도 부당한 징계를 내리고 형사고소까지 했다.

이번 논란은 국회로까지 번졌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3월 근무하고 있는 팀에 가해자로 지목된 B팀장(부장)이 오면서다. 피해자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시작은 B팀장과의 산행에서부터다. 어느 날 B팀장은 A씨에게 등산을 가자고 제안했다. 새로 온 상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칫 밉보일까 우려됐던 A씨는 B팀장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산행에서 “산이 험하니 손을 잡아주겠다”며 접촉을 시도했고, 이후 “집에 놀러가겠다”, “오일 마사지를 해주겠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 “같이 놀러가자”, “사랑한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사적 만남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B팀장은 대학생 딸까지 두고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2012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년에 걸쳐 성희롱 행위가 지속됐다. 심지어 직원들이 함께있는 회식 자리에서도 “사랑한다”고 외쳤다.
당시 A씨는 ‘죽고싶을’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팀원으로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지만 성희롱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며 “중간 타협점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회사에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 회사에서 선임한 외부 법무법인 여성 변호사를 통해 조사가 시작됐다. B팀장은 부서이동, 보직해임, 2주간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문제는 정직 2주의 징계 사유로 ‘성희롱’뿐만 아니라 ‘회사 시험용 차량을 몰고 음주운전을 한 것’이 지목됐다는 점이다. 성희롱 자체는 그리 중요한 징계 사유가 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산 것이다.

성희롱 증거부족 일부만 인정돼

게다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입증이 어렵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며 대부분의 피해 사실을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인정한 “오일 마사지 해줄까”라는 특정 부분에서만 성희롱을 인정했다.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A씨에게 “회사를 나가는 것이 깔끔하다”며 사직을 권고한 임원은 징계 처분을 받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후 A씨는 시말서를 작성해야 했다. 피해 사실을 진술해준 동료도 1주일 정직 처분을 받았다.
심지어 신고 후부터 회사에서 ‘여자가 먼저 꼬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피해자인 A씨가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등산을 제안한 가해자 본인의 발신 메일은 제외한 채 A씨의 답장 내용만을 사내에 퍼뜨렸다. A씨는 다시 한 번 수치심과 상처를 받았지만, 동료 C씨의 도움으로 소문을 퍼뜨린 정황이 있는 성희롱 가해자와 인사팀 직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했다.

그러자 그 불똥은 동료 C씨에게 튀었다. 잦은 지각과 조기퇴근을 이유로 정직 1주일의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이를 신고하자 지방노동위원회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부서에서 지각, 조기퇴근은 의미가 없다”며 “1000여 명의 직원 중 단 한 사람만을 상대로 6개월간의 근태 시간을 조사해 징계를 내린 것은 부당한 징계”라고 판정을 내렸다.
이후 사측은 지난해 12월 피해자 A씨와 동료 C씨에게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또 용역직원을 동원해 회사의 기밀문서를 빼냈다는 이유로 형사고소까지 진행했다. 현재 두 사람은 회의실로 출근해 점심시간과 휴게시간 외에는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회사 집기 사용 금지는 물론 CCTV 바로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감금에 준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5일 한국성폭력삼담소, 한명숙 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르노삼성자동차가 불이익조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희롱 사건을 호소한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와준 동료에게 회사는 지속적인 불이익을 주면서 인권침해를 일삼고 있다”며 비판했다. 또 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릴 것을 요구한다”며 2차 피해에 대한 징계와 사후 대책을 마련 요구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 의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며 “직장 내 성희롱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르노삼성 측은 “A씨가 동료에게 강압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도록 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 의견이 대부분 엇갈렸고, 구체적인 단서가 없었다”고 말했다. A씨를 도와준 C씨에게 내린 징계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징계양정이 과하다고 판정했을 뿐이다”며 “용역직원을 동원한 일은 도난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동료 C씨에게 내린 징계 모두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내려진 처분이라는 설명이다.

한 성희롱 예방 교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런 경우 대부분은 ‘증거 싸움’으로 이어진다”며 “기업의 경우 이미지 실추, 훼손에 따른 손해가 크기 때문에 재판보다 보여주기 식으로 명예훼손 방지를 위한 고소 진행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성희롱을 신고한 여직원을 왕따에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것이 소름끼친다”며 “르노삼성자동차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불매 운동 의사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던 르노삼성자동차의 내수판매 귀추도 주목되고 있다.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