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국내기업 ④ - 오비맥주

두산그룹 구조조정때 매각 맥주 기업 ‘AB인베브’ 품으로

2014-01-27     강휘호 기자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증권가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 이라는 용어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투자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는 투자전략으로 한국의 일반 투자자처럼 주식매매를 한다. 이들의 수법은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돼 2014년 사라져야 할 것으로 지목된다. 반대로 국내 기업명을 혼합해서 쓰지만 실제로는 외국기업인 경우도 있다. GM대우, 홈플러스, 맥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세 회사의 지분 전량이 외국기업에 넘어갔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잘못 알고 있는 소비자가 많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국내 기업명이지만 지분은 외국계인 기업의 명단을 공개한다. 그 네 번째는 국내 맥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오비맥주(사장 장인수)다.

시장점유율 60% 육박, 완전 잠식 가능성도 
발등에 불 떨어진 국내 기업들 “맞불 놓는다”

오비맥주의 전신은 두산그룹이다. 프로야구 인기구단이었던 오비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역시 그 산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중들은 오비맥주에 대해 국내 기업과 같은 친근감을 많이 느낀다. 여전히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은 SNS 회장님으로 불릴 만큼 대중들과의 호흡이 남다르고, 두산베어스는 아직도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어 이러한 후광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원래 주인이었던 두산그룹이 오비맥주를 외국계 기업으로 넘긴 것은 매우 오래 된 일이다. 1998년 두산그룹이 중화학그룹으로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오비맥주를 매물로 내놨고 벨기에 맥주회사인 인베브(당시 회사명 인터브루)가 인수했다.

이후로 오비맥주는 맥주업계의 저니맨이었다. 인베브는 2009년 7월 미국 안호이저부시와 합병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비맥주를 18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에 사모펀드인 KKR-어피너티에 매각했다. 또 KKR은 지분 50%를 AEP(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에 다시 팔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세계 최대,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외국계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이하 AB인베브)가 “오비맥주의 현 주주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등으로부터 오비맥주를 58억 달러(약 6조1천680억 원)에 재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B인베브가 2009년 7월 오비맥주를 18억 달러(약 2조 3천억 원)에 매각할 당시 5년 후 재인수 권리가 조건으로 삽입된 바 있는데, 이를 앞당겨 실행한 것이다. 이로써 두산에서 출발한 오비맥주는 이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재탄생을 완료했다.

맥주시장 전쟁 예고 중

특히 이번 매각에서 공표된 AB인베브의 오비맥주 인수대금 규모가 4년 전 매각 당시 받은 18억 달러(2조3000억 원)보다 무려 3조8000억 원이나 많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AB인베브가 오비맥주의 국내시장 지배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008년 만해도 하이트맥주(58.1%)의 뒤를 이어 41.9%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 1분기 오비맥주가 시장점유율 42.4%를 기록하며 하이트맥주를 바짝 추격하더니 결국 이를 뒤집어 버렸다. 지난해 5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각각 57.7%, 42.3%로 집계됐다. 현재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6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60%가 넘는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로 기세를 펼치지 못하는 국내 기업들의 수난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일이다.

AB인베브도 포부를 숨기지 않는다. 카를로스 브리토 AB인베브 대표는 “오비맥주는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AB인베브의 입지를 한층 강화해나갈 것”이라면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한국시장에서 AB인베브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선언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미 업계에선 AB인베브가 세계 최대의 맥주기업인 만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더욱이 기업을 낮은 가격에 사 높은 가격에 되팔면 그만인 사모펀드 경영자 KKR과는 달리 맥주업계를 주름잡는 AB인베브가 경영권을 가지면 훨씬 더 공격적으로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비맥주와 AB인베브 양사가 보유한 맥주 브랜드들이 국내외 프리미엄 시장에 나오게 되는 등 이들의 시너지를 감안하면 국내 주류사들은 더욱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AB인베브는 세계 시장에서도 30% 가까이를 점유하는 매머드급 기업”이라며 “올해 롯데주류까지 맥주 시장 진출을 예고하는 중인데, 거의 AB인베브 대 반AB인베브의 구도가 형성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 기업들은 AB인베브의 재등장에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일례로 하이트진로(회장 박문덕)는 세계 정상급 기업들과 월드 비어 얼라이언스(이하 WBA)라는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해외 유수의 맥주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는 독일 맥주전문 컨설팅 업체인 한세베버리지(Hanse Beverage)와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앞으로는 독일, 덴마크, 일본, 태국 등의 유명 기업들과도 WBA를 강화하는 동시에 독일, 스코틀랜드, 영국, 스페인 등의 주요 주류기업들과도 제휴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d(드라이피니시)와 퀸즈에일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덴마크의 알렉시아와 양조, 기초과학 등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독일의 바인슈테판, 브루마스터 교육 및 연구에 특화된 VLB 등도 향후 WBA에 참여해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WBA를 통해 우리나라 맥주의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시장에서의 입지도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현재 하이트진로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의 리뉴얼과 신제품 출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글로벌 기업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해 세계 유수의 주류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확대해나갈 것”이라며 “AB인베브의 재등장에 따라 치열해질 맥주 시장에 대한 대비라고 보는 해석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밝혔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