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보육시설 아닌 투자로 보는 사람들

보육시설 현주소…권리금 8천만 원 거래

2013-12-16     오두환 기자

운영비·특별활동비 유용·무자격자 채용 비리 잦아 
근무환경개선비·원생 장려수당 허위 신고 하기도

[일요서울|오두환 기자] 어린이집을 둘러싸고 각종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이들을 잘 관리하고 키워야 할 어린이집에서 정작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어린이집에서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때리거나 학대한 혐의로 여교사 유모(27)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유 씨는 부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강제로 밥을 먹이거나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의 모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유 씨는 지난 7월부터 11월 7일까지 4세 어린이 8명을 폭행하거나 강제로 밥을 먹이는 등 아이들을 216차례 학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집을 둘러싼 사건은 아동학대뿐만이 아니다.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끊임없이 국고 횡령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어린이집 매매를 둘러싸고도 다양한 분쟁이 일고 있다.

어린이집은 6세 미만의 어린이를 돌보고 기르는 시설이다. 어린이의 보호자가 근로, 질병, 기타의 사유로 돌볼 수 없을 때 국공립 단체, 민간단체, 직장 등에서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보육한다.

브로커 통해
어린이집 구입 

정부에서는 어린이집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육교사 근무환경개선비와 원생 장려수당이다. 매달 근무환경개선비로 12만 원, 장려수당으로 3만 원 가량을 지원한다. 또 올해 기준으로 민간 어린이집은 등록된 영유아 1인당 22만~75만5000원을 지원을 받는다. 교사와 원생이 늘수록 보조금은 더욱더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을 어린이 보육기관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광주에서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 운영권을 낙찰받기 위해 브로커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A(51)씨는 2011년 6월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 운영권을 낙찰받기 위해 브로커 K(34)씨에게 5500만원을 건넸다. 이후 K씨의 조언에 따라 입찰서를 작성한 A씨는 다른 원장들을 제치고 900가구 대단지 아파트 내 어린이집 운영권을 낙찰받았다.

K씨는 A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해당 아파트 관리업체 대표 P(39)씨, 관리소장 L(52)씨 등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에게 유리한 입찰공고문과 평가표를 작성토록 조종했기 때문이다. 입찰대상자로 지명된 사람만 입찰이 가능하고, 입주민 편의시설이므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등의 문구를 넣는 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어린이집 운영권을 따낸 원장들이 수천 만~수억 원의 브로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보육교사 근무환경개선비와 원생 장려수당 등을 허위로 신고해 국가보조금을 부당 수령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조교사를 채용하고 정교사로 등록하거나, 아예 보육교사나 원생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 어린이집 원장들이 수익을 얻기 위해 저지르는 불법 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경산의 A어린이집은 이전에 근무했던 보육교사의 명의를 빌려 무자격자를 채용하고 1년여간 급여 등 보조금 2560만 원을 부정 수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B어린이집은 경산시의 임명승인 없이 시설 대표에게 사무보조 명목으로 2011년부터 매달 100만 원을 부당하게 지급하다 적발됐다.
C어린이집은 원장이 운영비 50여만 원을 경조사비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가 환수 조치를 받았다. D어린이집 등은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거나 보육교사 건강검진 등을 하지 않았다. E어린이집은 특별활동 경비를 어린이집 계좌를 통하지 않고 현금으로 받고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등 회계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까지 돈을 횡령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브로커 비용을 주고 어린이집 운영권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국고보조금 등을 횡령하는 비리로 이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권리금 받고
매매되는 어린이집

어린이집이 ‘돈되는 사업 아이템’으로 소문이 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권리금을 받고 어린이집을 판매하는 기현상도 연출되고 있다. 일반 아파트나 상가에 붙던 권리금이 버젓이 어린이집에 붙어 매매되고 있는 것이다.
검색사이트에서 ‘어린이집 매매’라는 검색어만 입력해 봐도 즉시 수많은 매매 알선 또는 컨설팅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더 가관이다. 부동산 매매 홈페이지와 똑같은 구성으로 매물리스트, 추천리스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어린이집 권리금은 지역과 원생 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울 강서구의 A어린이집 매물의 경우 권리금이 6000만 원이라고 표기돼 있다. 132m2 규모의 어린이 집으로 원생은 25명 이하다. 서울 동작구 B어린이집은 권리금이 8000만 원이다. 규모는 198m2이며 원생은 50명이다. 경기 부천의 C어린이집은 권리금이 1억9000만 원이다. 규모는  231m2에 원생 수는 45명이다.
관리동어린이집은 지역을 불문하고 권리금이 1억 원 이상이다. 경기 화성시의 331m2 규모의 D관리동어린이집은 원생 80명에 권리금이 3억 원이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248m2 규모의 E관리동어린이집은 원생 57명 이하에 권리금이 2억3500만 원이다.

고액의 권리금이 붙은 어린이집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민간 어린이집 설립이 허가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설립이 쉽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매가 늘게 됐다. 정부에서 무상보육 확대를 위해 2조 원대의 지원금을 풀 것이라는 전망도 매매 열기를 부추겼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유모(45)씨는 대출까지 받아 권리금 9000만 원을 주고 어린이집을 인수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수익보다는 지출이 많았고 이것저것 보수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유씨는 어린이집 인수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시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징계받은 현장관찰자
평가점수 신뢰 못해

아이들의 육아와 보육을 위해 애써야 할 어린이집 원장들이 수익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어린이집의 질과 교육시설 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제의 목적은 보육서비스 질적 향상, 전문성 증진, 자녀양육 지원, 영유아 관련 정부 예산의 효율적 관리 및 지원이다.
현재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는 한국보육진흥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장관찰자가 어린이집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시설, 교재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뒤 인증 최종 사항을 심의하는 심의위원회를 거처 인증 여부가 결정된다.

심의위원회 위원은 총 244명이다. 이 중 관련 학과 교수는 80명, 지자체 담당 공무원 85명, 지역 보육정보센터장 28명이며, 어린이집 원장도 51명이 포함돼 있다. 철저하고 완벽한 심의를 위해 다수의 심의위원과 현장관찰자를 뒀지만 종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이 한국보육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평가인증이 시작된 후 현장관찰 평정 오류로 징계를 받은 현장관찰자가 총 8명이다. 200명이 넘는 현장관찰자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이들 중 일부가 아직도 현장관찰자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 측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잘못된 평가로 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징계 후에도 현장에 나가 적게는 6회, 많게는 361회나 평가를 계속했다. 또한 이 중 3명은 아직도 재직하고 있으며 평가에서 제외되지 않고 계속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진은 사실 확인을 위해 한국보육진흥원에 전화로 문의했으나 확인에 시간이 걸린다며 정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징계를 받은 현장관찰자가 어린이집 인증평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그들이 한 평가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평가만하고
사후관리는 부실

한국보육진흥원의 어린이집 사후관리도 부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통과한 업체는 총 2만6607개소다. 이중 평가점수가 90점 이상인 어린이집은 1만9739개소로 74.19%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시행한 확인점검 결과를 보면 761개소 중 90점 이상을 기록한 곳은 단 91개소로 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초기 인증평가 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점수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진흥원의 사후관리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다.

보육교사 자격증 관리도 부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돈을 주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발급받거나, 실습을 하지 않고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자격증을 딴 사건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후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는 전국 68개 ‘보육교사 교육원’을 대상으로 지도·점검을 펼쳤다. 그 결과 45개소에서 총 103건의 법규 및 지침 위반 행위가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