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재고 떨이 하는 식료품 업계
소외계층 지원 유통기한 임박 제품으로 사회공헌 의혹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연말연시 이곳저곳 온정의 손길이 오가는 가운데 일부 식료품 업체가 재고 처리나 세금 혜택을 노리고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촉박한 식품을 푸드뱅크에 떠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CJ제일제당(대표 김철하)과 롯데칠성음료(대표 이재혁) 등이 대표적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푸드뱅크는 식품제조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식품을 기탁받아 소외계층에게 지원하는 식품지원 복지 서비스 단체인데 이러한 복지단체를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단체 “자체 폐기도…하소연도 ‘애매’”
해당업체 “기부 후 유통 절차 길어…‘억울’”
“처리하기도 버겁다.”
지방의 한 복지단체 간사의 하소연이다. 또 이 간사는 “기부 품목으로 들어오는 물품이 유통기한에 이미 임박한 상태로 들어오면 자체 폐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제품을 폐기해야 할 때면 마음이 착잡하다. 게다가 한두 개씩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박스 단위로 처리해야 해 고충도 두 배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일부 업계와 자선단체에 따르면 몇몇 식료품 업체들이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복지단체에 먹거리를 기부하면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대거 기부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아울러 이들이 기부하는 제품군은 쌈장부터 케첩, 마요네즈, 율무차, 햄, 밀가루, 식용유, 어묵 등 종류도 다양한데 신선식품에 비해 유통기한이 긴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이 들어 있어 더욱 문제라는 설명이다. 물론 길게는 한 달 정도 유통기한이 남은 제품도 있지만 기부 품목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지방 단체까지 전달되기엔 사실상 기간이 너무 짧다고 토로한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복지단체 관계자는 “솔직히 ‘그런 제품이라도 주는 게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하는 아쉬움도 있다”며 “몇 번인가 상위 기관에 어려움을 전했지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어쨌든 받는 처지인데 CJ제일제당이나 롯데칠성음료 본사에 가서 얘기할 수도 없는 사안이지 않나…”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생색 혹은 세금감면
그렇다면 식품업체들이 복지단체들에 이러한 형태의 기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 이유는 사회공헌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현행 세법상 기업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교육, 종교, 병원 등에 지출하는 기부금 또는 기부물품은 한도(법정기부금은 세전 이익의 50%, 지정기부금은 5%) 내에서 50%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기업 쪽에선 재고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제품으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쌓고, 세금 혜택도 누리는 일석이조 전략인 셈이다.
더욱이 이 같은 문제는 2005년부터 불거져 나왔던 것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10여 년 가까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정화원 전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2005년 주식회사 대상과 CJ, 웅진, 롯데칠성 등 유통 대기업들이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로 기부한 식품 중 유통기한을 3일 앞둔 식품이나 아예 기한이 지난 식품을 기부한 사례가 총 2만2858건이나 됐다.
당시 정 의원은 “식품기부활성화법의 기탁자의 의무 및 수혜자에 대한 보호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질타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전적 이익이 우선되는 게 기업이다. 제품 최초 출고와 동시에 기부될 수는 없다. 어쨌든 판매하고 남은 제품들로 기부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며 “문제가 계속 된다면 기한을 조금 늘려 지원할 필요성은 다소 있어 보인다”고 조언을 덧붙였다.
다만 해당 업체들은 억울하다고 성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제품 유통기한은 최소 한 달이라는 기준을 두고 기부를 결정한다”며 “푸드뱅크와도 협의 후에 받을 수 있다는 제품만 지원한다”고 일축했다. 이어 “푸드뱅크 쪽 유통 과정이 2주 정도 소요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간혹 유통기한이 임박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듯하다”고 항변했다.
세금 감면 혜택에 대해서도 “CJ제일제당은 푸드뱅크 기부와 관련해 일절 세금 혜택을 받고 있지 않다. 폐기처리를 하나 기부를 하나 비용만 놓고 보면 똑같다”며 “그런 꼼수를 동원해 생색을 내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전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유통기한이 최소 3주가 남아야 기부한다”고 답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음료수라는 제품이 원래 유통기한이 길다. 신선 식품도 아니고 급박하게 기부할 이유가 없다”며 “물류센터와 협력해 기준을 정확하게 지킨다”고 말했다.
한편 이와 같은 문제점을 기업이 아닌 푸드뱅크 측에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푸드뱅크 기탁식품의 위생관리 요령에 대한 철저한 사전교육과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기업들의 하소연과 같은 맥락으로 유통 라인의 획일화와 같은 방법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지방 단체에 지원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점도 제기된다.
한 달이라는 유통기한을 남기고 받는 제품이 지역마다 배포되는 시간이 줄어들면 기업도 푸드뱅크도 이번과 같은 논란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