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성희롱 사건은 현재진행 중
“이게 니 XX가?” 발언은 빙산의 일각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는 충격적인 음성파일 하나가 게재됐다. 이 음성 파일 속에 등장하는 한 남성은 한 여성에게 “이게 니 XX(여성의 생식기를 뜻하는 비속어)가?”라고 반복적으로 묻고 있었다. 해당 음성은 공개되자마자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사건의 장소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농협 직지점,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남성의 목소리는 농협 직지점의 이모 전무로 밝혀졌다. 그리고 당시 이 전무가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이 사실로 확인돼 결국 보직 해임됐다.
해당 임원 해임에도 규탄 시위 계속
끝도 없는 가혹행위 방관하는 중앙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농협노동조합은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지역의 한 농협에서 빚어진 성희롱 논란에 대한 중앙회의 감사를 촉구했다. 농협노조는 이 자리에서 “전무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원을 동원해 한 여성노동자를 왕따시키고 음해하고 누명을 씌운 것이 이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성희롱 사건을 불러온 농협 사업장 문화, 업무방식 등을 문제삼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뉘우칠 마음이 없는 해당 사업장과 그 하수인들에게는 이제 외부의 충격이 필요한 때이며 중앙회가 엄중한 감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시작은 3년 전
현재 해당 전무는 보직 해임이 됐고 고소까지 당해 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일요서울]의 취재 과정에서 이번 농협 성희롱 사건이 직장 내 왕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때문에 단순한 보직 해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를 본 여직원은 2010년부터 직장 내 왕따를 당해 부당발령, 횡령누명, 해고 등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아 왔다.
더욱이 전국농협노조는 피해자인 여직원이 직지농협에서 왕따를 당한 이유에 대해 “하모 현 직지조합장의 조합장선거 당시 해당 여직원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 가혹행위의 이유였다”며 “성희롱 사건은 이러한 가혹행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아울러 “그럼에도 현재까지 여직원에 대한 가혹행위는 계속되고 있고, 도움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중앙회 역시 방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또 농협조합장에 대한 요구사항으로 ▲여직원을 성희롱한 임원을 격리, 해고하고 처벌할 것 ▲여성탄압 중단하고 부당해고 및 탄압행위 사과할 것 ▲법원판결 존중하고 가혹행위 중단할 것 ▲직장 내 집단따돌림 사용주 처벌법으로 해당 농협 조합장을 처벌할 것 등을 촉구했다.
농협노조 관계자는 “농협조합장의 힘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지역 조합마다 조합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괴롭히는 사례가 굉장히 빈번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중앙회가 나서야만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일은 근절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농협중앙회는 성희롱 사건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해당 전무의 보직 해임으로 끝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해당 전무의 해임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며 “노조 측과도 원만히 해결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역 농협들의 곪다 못해 터진 상처를 중앙회가 계속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성희롱 피해 여직원 직격토로
“자살 기도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우겠다”
[일요서울]은 조금 더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성희롱 사건 피해자와 직접 전화 인터뷰를 했다. 피해자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밝혔다. 다음은 피해자와의 일문일답(一問一答)이다.
- 규탄 시위의 배경은.
▲ 대중에게 알려진 사건은 성희롱 사건 하나지만 농협직원들의 아픔은 너무나 많다. 중앙회의 감사와 대책 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규탄 시위도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 가혹행위는 언제부터였나.
▲ 2010년 조합장 선거 이후다. 선거가 끝나고 조합장 당선자를 돕지 않았던 이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났다. 보복 발령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여성복지역을 맡고 있어 타 지점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난 본점에 남게 됐고, 가혹행위로써 보복이 들어왔다.
- 녹취를 하게 된 이유는.
▲ 평소 너무 심한 가혹행위라 녹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 전무의 호출에 녹음을 시작했고 역시나 심한 말을 퍼부었다.
- 이 전무 해임 이후 근황은.
▲ 이 전무만 없을 뿐이지 가혹행위와 왕따는 여전하다. 내가 평소 지병을 앓고 있어 기침을 자주하는데 그것마저 조합장의 인신공격 대상이다. 조합장의 눈치를 보느라 다른 직원들도 가세하는 경우마저 허다하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기분이다.
- 왜 싸움을 멈추지 않나.
▲ 처음에는 조금만 참으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참았는데 벌써 3년여 동안 가혹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너무 힘이 들어 자살시도까지 했다. 그런데 문득 ‘농협에서 근무한 지 25년이 지났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는 절대 멈출 수 없다. 내가 피해자들의 본보기가 돼 나와 같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싶다.
- 중앙회의 도움은 없었나. 앞으로의 계획은.
▲ 몇 번인가 감사 요청을 했지만 중앙회는 조합장 사이의 관계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중앙회에도 철저히 감사를 요구할 것이며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법적인 소송도 불사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 6개월 이후 이 전무가 구제신청을 해 복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아니지 않나. 너무 불안하다.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희롱과 가혹행위, 폭언 등은 남녀를 떠나 대한민국 근로자들의 애환인 것 같다. 올바른 직장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있다고 남을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모두 뿌리 뽑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