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돈기업들의 ‘수난’
‘검풍에 세풍까지’ 바람 잘 날 없다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한국에서 대통령 사돈기업은 특별하다. 권력과 정권의 비호 아래서 각종 특혜를 얻어 승승장구한다. 창업주의 숙원사업이었지만 오랫동안 첫삽을 뜨지 못한 일도 해결되고, 사정당국 수사에서도 배제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권이 끝나면 집중적인 견제는 물론이고 감시를 받으면서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경제단체의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경혼테크’, ‘정경인수합병’의 주홍글씨가 돼 해당 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에 독이 되기도 한다.
수식어처럼 붙더니 정경유착 주홍글씨로 남아
대통령 측근 손보기에 ‘기업 발목 잡을까’ 우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효성그룹’이다. 효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돈기업이다. 엄밀히 따져 조석래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은 ‘한 다리를 건넌’ 사돈이다. 이 전 대통령의 딸 수연씨와 한국타이어 조현범 사장이 2001년 결혼했다. 조 사장은 조 회장의 동생 조양래 회장의 아들이다.
효성이나 한국타이어나 대통령집안과 사돈을 맺으려고 처음부터 작정했던 것은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15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아시아태평양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를 맡고 있었다. 조현범 사장도 한국타이어에 입사하기 전이었다.
당시는 이 전 대통령이 권력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누구도 이 전 대통령이 1년 뒤에 서울시장이 되고, 7년 뒤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시기다. 그러나 사돈이 대통령이 되자 효성도 날개를 단 듯 실적이 급상승했다.
당시 효성 계열사는 25개사에서 5년 만에 45개사로 늘어났다. 자산규모도 27%나 성장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게다가 장남 조현준 사장이 회사 돈을 이용해 해외부동산을 구입한 것이 문제가 돼 검찰로부터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전 대통령 퇴임 직전 사면을 받으면서 효성 주변에서 정권특혜설이 고개 들기 시작했다.
현 정권이 시작되면서 효성의 수난은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권은 효성이 하이닉스를 포기했음에도 국감에서 조차 ‘하이닉스 분할 매각’ 조건은 대통령 사돈기업을 위한 변경이었다며 강도 높은 추궁을 했다. 검찰·국세청 등이 전방위로 나서 탈세 세무사찰을 벌이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등 전방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도 아버지 조석래 회장은 물론이고 아들 형제까지 검찰 조사가 한창이다. 비자금 조성부터 개인재산 은닉까지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어 조만간 구속 결정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돌고 있다.
마찬가지로 재계에서는 SK그룹, 신동방그룹, 벽산그룹 등도 대통령 사돈기업의 숙명을 함께한 기업이라고 말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국동아제분(현 동아원) 오너 일가와 혼인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와 이희상 동아제분 회장의 장녀 윤혜씨가 1995년 화촉을 밝혔다.
그러나 두 가문 역시 대통령 사돈기업으로서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 번 구설에 올랐다. 이 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1996년 전 전 대통령의 채권 160억 원을 차명으로 소유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지난 10월에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을 또다시 사며 회사가 압수수색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SK그룹과 신동방그룹 역시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사돈이 됐다가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빠졌다.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장남 태원씨는 노 전 대통령의 장녀 소영씨와 1988년 결혼했다. SK그룹은 이 혼사로 1992년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등 사업 확장 때마다 온갖 시련을 맛봐야 했다.
현재도 최 회장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대통령 사돈기업의 검풍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신동방그룹(당시 동방유량)도 마찬가지다. 신명수 전 회장의 외동딸 정화씨는 1990년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 재헌씨와 결혼했다.
이후 신동방그룹은 노 전 대통령의 집권 때 숙원이던 증권업에 진출했지만 특혜의혹을 받았다. 게다가 1996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 당시 검찰의 수상 대상이 돼 홍역을 치렀다.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빌딩을 매입하고 주가조작으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반복되는 친인척 비리 과연 끝은
신동방그룹은 이런 시련을 겪은 뒤 외환위기 전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해 2004년 CJ에 매각됐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만 재벌가와의 혼맥이 없다. 친가와 처가 모두 일반인과 혼사를 치렀다.
한편 박근혜 정부도 4년 후에는 전 정권이 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차기 정부가 현 정부와 가까웠던 기업들을 수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특정기업명을 거론하며 해당 기업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이 OCI다. OCI는 박근혜 대통령 이모(육인순)의 외손자가 OCI그룹의 삼남 이화영 유니드 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사돈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벽산그룹과도 사돈지간이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형인 박상희 씨의 딸 설자씨와 고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의 차남 희용씨가 1972년 결혼했다. 설자 씨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들의 ‘수난’이 이어져 요즘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현재까지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만 50군데가 넘는다”며 “전 정권과 가까웠던 기업에 대한 ‘보복 수사’라는 얘기가 헛소문에 그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한 그는 “재계 혼맥의 공통점이 대통령이 되기 전 한 것이다. 억지로 묶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기업 생존에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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