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FA 몸값 급등 ‘부익부 빈익빈’ 심화
다음시즌 1000억 원 시대 전망…프로야구계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
먹튀 후유증에도 구단들 울며 겨자 먹기…수급불균형 후유증 자초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 18일 최준석(30)이 두산 베어스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올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막을 내렸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대어급 선수들이 대거 FA 시장에 나오면서 계약 총액도 500억 원을 돌파했다. 이 같은 몸값 상승 열기로 곧 1000억 원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면서 제도 개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강민호(28·롯데)는 지난 13일 한국프로야구 FA 사상 최고액을 경신하며 롯데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를 시작으로 정근우(31)와 이용규(28)가 심정수가 세웠던 역대 최고 60억 원을 가볍게 뛰어 넘으며 한화 옷으로 갈아입었고 장원삼도 60억 원(4년)에 삼성에 남았다. 이종욱(33)과 손시헌(33)도 각각 50억 원과 30억 원에 두산을 떠나 NC 소속이 되는 등 올해 FA시장은 총 523억5000만 원을 기록하는 돈잔치로 마무리됐다.
이번 ‘쩐’의 전쟁에서 가장 큰 수혜팀으로는 단연 한화를 꼽을 수 있다. 부진에 시달리며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화는 FA 2명을 건졌다. 특히 평범한 FA 2명이 아닌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하면서 리그 최강 타선을 꾸리게 됐다.
이와 함께 내부 FA 3인방인 이대수(32), 한상훈(33), 박정진(37) 단속에도 성공했다. 물론 이번 FA 시장에만 총 178억 원을 쏟아 부었다.
롯데 역시 올 FA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국가대표 포수 강민호를 일찌감치 붙잡았고 최준석을 데려와 중심타선을 보강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올 시즌 신생팀으로서 돌풍을 일으켰던 NC 역시 80억 원을 쏟아 부으며 센터라인을 완성시켰다. 김종호(29)와 이종욱, 나성범(24) 등으로 구성된 발 빠른 외야진은 리그 수준급이고 김종호와 이종욱의 좌타자 테이블세터진도 타 구단에 뒤지지 않는다. 또 내야에 손시헌이 투입돼 안정감을 더했다.
더욱이 이종욱과 손시헌은 김경문 NC 감독이 두산 감독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던 선수라는 점에서 김 감독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다. 여기에 NC는 신생팀 지원 혜택에 따라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
반면 SK와 KIA, 두산은 모두 핵심 전력을 내주며 다음 시즌 전력 구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SK는 국가대표 톱타자 정근우를 끝내 붙잡지 못하면서 2005년 이후 6년 연속 주축 선수 대부분을 떠나보내야 했다.
KIA는 지난해 50억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김주찬(32)을 영입했으나 올해 그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용규를 내줘야 했다. 이에 급히 이대형(31)을 영입했으나 전반적인 부분에서 이용규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수층이 두꺼운 두산 역시 FA 3인방인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을 모두 내주면서 생각보다 공백이 커졌다.
또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어 유망주 지키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신생팀 지원 혜택을 받고 있는 NC에서 보상선수를 받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집안 단속에 성공한 삼성은 통합 3연패에 기여한 장원삼에게 총액 60억 원을 안겨주며 자존심을 세워줬다. 또 13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때려내고 있는 외야수 박한이의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하면서 전력 공백을 최소화했다.
다만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는 마무리 오승환의 대체자원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은 갖게 됐다.
LG는 일찌감치 FA 시장에 침묵하며 내부 단속에 초점을 맞췄다. 이대형을 FA 시장에서 잃었지만 내부 FA였던 캡틴 이병규(39·9번)와 베테랑 내야수 권용관(37)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에 잔류시켰다.
넥센은 FA 신청 선수가 한 명도 없었고 외부 영입도 없이 이번 FA시장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계약 총액 500억 돌파
내년에는 1000억 원 될 듯
이처럼 사상 최고액을 경신하며 FA 시장을 마감한 가운데 2015 FA 시장은 최정(26·SK) 등 대어급 선수들이 대거 FA 자격을 얻으면서 시장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내년에는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제10구단 KT가 뛰어들면서 FA 몸값 폭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없이 폭등하고 있는 FA시장을 두고 아구계에선 “시장이 미쳤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도 류현진의 포스팅 머니 280억 원을 손에 쥐고 있던 한화와 10개 구단으로 확장된 리그 등에 힘을 입었다지만 올해 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한 이대형이 KIA와 4년간 24억 원에 사인하면서 평균 계약 총액이 자연스럽게 올랐다. 올 시즌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FA시장가는 4년간 50억 원에 맞춰졌다.
당장 내년에는 1000억 원대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 급부상하면서 한국야구위원회(KBO)도 FA 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부상 없이 다음 시즌을 마칠 경우 최정 외에 김강민(31), 박재상(31), 김상현(33), 조동화(32·이상 SK), 배영수(32), 윤성환(32), 안지만(30), 권혁(30), 조동찬(30·이상 삼성), 장원준(28·롯데), 박용택(34·LG), 송은범(29·KIA), 이성열(29·넥센) 등이 FA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FA 시장에서 내야수 정근우가 9년간 통산 타율 0.301에 269도루, 377타점과 565득점을 올리고 70억 원(4년간)을 받았다. 최정의 경우 통산 성적 9년간 타율 0.291, 154홈런, 112도루, 558타점, 528득점을 기록하면서 1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결국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구단은 전력 보강을 위해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프로야구 구단은 전체 선수단 운영비를 무한정 올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슈퍼스타가 아닌 선수들은 연봉을 줄이거나 방출까지 감수해야 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KBO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1군 평균 연봉은 9496만 원이었다. 하지만 최저 연봉은 24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뿐만 아니라 15년 차에 접어든 FA 제도가 미숙함을 드러내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선 선수들은 FA 자격을 얻기 위한 기간이 만만치 않게 길다. 메이저리그는 6시즌을 채우면 FA 자격을 준다.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9시즌을, 대졸 선수는 8시즌을 보내야 생애 첫 FA 자격을 갖추게 된다.
FA 취득 기간이 길다 보니 FA 계약을 할 당시 이미 전성기가 지나거나 계약 기간 동안 하락세를 타는 선수가 속출하고 있다. 또 애초에 시장에 등장하는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품귀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몇몇 선수들에게만 대형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일명 ‘먹튀’논란은 여전히 FA의 슬픈 자화상으로 남아있다. 구단은 거액을 선수에게 투자했지만 선수가 제몫을 못하면서 투자에 실패하고 선수도 거금을 받아 기쁘지만 그 부담감에 막상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삼성이 2004년 사상 최고액인 60억 원에 영입한 심정수가 먹튀 논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심정수는 2002년에는 46개, 2003년에는 53개 홈런을 치며 이승엽과 홈런왕을 놓고 경쟁을 펼친 바 있다. 이에 삼성이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심정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심성수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밖에 LG가 영입했던 홍현우를 비롯해 진필중, 박명환, 롯데의 정수근, 이상목도 부진한 성적으로 먹튀 오명을 써야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프로농구의 FA 제도를 참고할 만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프로농구에서는 최대 5년의 다년계약이 가능하지만 5년간의 연봉이 보장되지 않는다. 먹튀 논란을 막기 위해 매년 연봉 협상을 새로 하도록 2007년 제도를 바꿨다. FA 취득 기간도 5년으로 줄인 대신 계약금도 없앴다.
프로농구 관계자는 제도를 바꾸면서 구단의 부담은 줄이고 매년 연봉협상을 통해 선수들의 긴장감도 유지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FA 거품 거두나
다만 내년에도 몸값 폭등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 반대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FA 시장 거품논란의 가장 큰 변수는 외국인 선수 영입 확대다. 지난 5일 프로야구 10개 구단 단장들은 실행위원회를 열고 2014년 외국인 선수 보유 확대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신생구단인 NC와 KT를 제외한 8개 구단의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가 2014년부터 현재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난다. 단, 3명의 포지션이 모두 같아서는 안 되고 투수 2명과 야수 1명, 야수 2명과 투수 1명 등 ‘2+1’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구단은 전력 공백을 미국 시장에서 적정 가격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실제 50만 달러(약 5억3000만 원)면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는 준수한 외야수를 구할 수 있고 80만 달러(약 8억4900만 원)면 메이저리그 후보 선수도 데려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큰손인 삼성, LG, SK가 외부 FA를 쳐다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FA 몸값 폭등을 주도했던 삼성이 올해는 ‘내부 육성’과 ‘집안 단속’으로 돌아섰고 LG역시 외부 FA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SK도 장기적으로 내부 육성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점차 FA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2차 드래프트 개선도 선수 수급 불균형에 기인한 FA 시장 과열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차 드래프트를 활성화하면 선수 풀을 넓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2차 드래프트를 매년 시행하고 팀당 보호선수를 25명 정도로 줄여핵심 선수를 거래해야 한다. 지명 인원을 3라운드에서 4, 5라운드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김응용 한화 감독도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를 30명으로 줄이고 매년 열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선수가 풍족한 구단들은 2차 드래프트 확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1군 엔트리가 26명이니 보호선수 30명은 사실상 1군 선수라는 것. 그러나 2차 드래프트에서 주전급 선수가 나오면 FA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어 구단들의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차 드래프트는 격년제로 각 팀의 보호선수 40명을 제외한 명단에서 구단이 3명씩 돌아가며 뽑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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