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남녀들…그곳은 뜨겁다

2004-11-29     이수향 
가출청소년들의 혼숙장소
11월 17일 오후 3시. 가리봉동의 한 찜질방. 시설은 동네 목욕탕 수준으로 좁고 낡았다.대낮의 찜질방은 아줌마 부대들이 차지하고 있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눈에도 앳된 티가 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여기 저기서 엉켜 자고 있었다.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찜질방이 아니라 학교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한켠에는 역시 10대로 보이는 여자애들 세명이 모여 식혜와 구운 달걀을 먹으며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의 대화내용은 주로 남자친구와 일하는 업소에 대한 것이었다. 대화 도중에는 듣기 민망한 10대들만의 언어와 욕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대화주제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이 학생이 아닌 것은 확실해보였다.“이 시간에 원래 학생들이 이렇게 많나”라는 질문에 주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학생이면 이 시간에 여기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학생이 아니라는 말인가”라고 다시 묻자 주인은 “밤에 일하러 나가는 애들”이라고 귓속말로 전했다. 팔베개를 한 채 엉켜 자는 커플을 힐끗 쳐다본 주인은 “(여기서)거의 산다. 쟤네들은 부부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식혜와 구운 달걀을 먹고 있는 무리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본명과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밝히기 꺼려한 소미(16·가명)는 무척 경계하는 눈빛으로 “중2때 자퇴했다”고만 짤막하게 대답했다.“찜질방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여관은 비싸잖아요. 여럿이 가면 더 비싸고”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경계가 풀리는지 소미는 “자퇴하고 가출해서 지금은 밤에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그녀의 말에 따르면 찜질방의 가격은 지역별, 업소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녀는 “여기는 정액제로 끊었는데 일주일에 1만5,000원, 한 달에 3만6,000원”이라고 밝혔다.이는 보통 찜질방이 하루에 5,000~6,000원인 것에 비추어볼 때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시설이나 지역적인 영향도 있지만 주인이 편의를 봐준 덕”이라는 것이 소미의 설명이다.소미 옆에 있던 보배(16·가명)와 진주(17·가명) 역시 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상태였다.놀라운 사실은 그들 모두 이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주는 “방 얻을 돈이 생길때까지 여기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여자끼리 있는 것 보다 덜 위험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니 좋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술·담배값과 약간의 간식비를 제외하면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보배는 “저녁은 일하는데 가서 먹고, 아침만 컵라면으로 간단히 떼운다”며 “컵라면은 1개 천원, 구운계란은 3개 천원”이라고 덧붙였다.‘찜질방이 일부 청소년들의 공식 혼숙 장소로 변질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소미는 “동인천역 근처의 어떤 찜질방은 단골에게만 제공하는 은밀한 2인용 동굴밀실도 있다”며 “찾아보면 우리같은 애들 많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이어 “친구들 중에는 낙태직후 여기서 미역국을 먹고 쉬다 돌아가는 애들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털어놨다. 그들은 한달 간격으로 다른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하루살이’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한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주인눈치도 보이고 자주 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고, 지겹기도 해서 한달 간격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불륜남녀
11월 18일 오후 1시. 서초구에 위치한 G찜질방.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비교적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그러나 황토방, 참옥방 등 개별적으로 분리된 방안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참옥방 문을 열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녀는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스킨십을 나누느라 여념 없었다.특히 속옷도 입지 않은 채 가운을 들추고 적나라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들은 분명 부부가 아닌 듯했다. 청소를 하던 찜질방 관계자는 “저런 사람들은 사람없는 방만 골라 들어가서 온갖 짓을 다한다. 부부라면 평일 대낮에 저러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자가 찜질방안에서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있는 경우, 평일 점심시간에 들어왔다 급하게 나가는 경우는 불륜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오전 11시경에 들어왔다가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차라리 여관을 가지. 저 더운 곳에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11월 18일 밤 11시. 강남구 신사동의 한 찜질방.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일부 여성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두세명씩 무리를 지어 온 이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갔지만 혼자서 온 몇몇 여성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자정 지나도 남아있는 주부들
찜질방을 자주 찾는다는 K씨(40)는 “보통 자정이 지나도 가지 않고 남아있는 주부들의 경우 부부싸움을 했거나 가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도 남편과 크게 싸운 뒤 여기서 잔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카운터를 보는 중년여성은 “정확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눈치로 보아 집나온 주부들이 자주 머무르는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다는데 집에 안들어가는 것 보면 뻔한 거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여관이나 모텔은 값도 비싸고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써야 할뿐 아니라 특히 여자 혼자 투숙하면 이상한 의심을 받기 십상인데 반해 찜질방은 그런 부담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