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으면서 사귀는’여자들 많다

2004-11-05     이수향 
연인에 의한 감금과 폭행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폭행의 수준을 넘어 애인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접수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 사건의 중심에는 사귀는 연인에 대한 집착과 욕망, 질투의 감정이 강하게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애인으로부터 고통당하는 많은 여성들은 “보복이 두려워 헤어지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며 겁에 질려 떨고 있다. 사회 문제로 부상중인 ‘연인문화’를 취재했다.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얼굴 밀어넣기, 각목으로 구타하기, 머리채 휘어잡아 끌고 다니기, 각서 쓰기, 3일간 밥도 굶긴 채 감금하기, 잠 안재우기, 온 몸에 피멍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눈동자와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부러지고….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로로 인해 가장 행복해야할 ‘연인’사이에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것도 ‘사랑’을 가장한 질투와 집착으로 인해서.

사례1. 맞으면서 사귄다
서울소재 K대학생 장지원(가명·23)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같다.이유는 사귄지 3년째 되는 동갑내기 남자친구 하정일(가명·23)씨의 ‘손버릇’ 때문이다.지원씨는 “창피한 일이지만…” 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그녀는 “사귄지 한달쯤 됐을 때 어떤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맞았다”며 “그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의심’ 때문에 하씨가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성격이 서로 강한 두 사람은 처음부터 부딪히는 일이 잦았지만, 다른 연인들처럼 토닥거리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날 화가 극에 달한 정일씨가 지원씨의 뺨을 때린 후부터 정일씨는 조금만 화가 나도 손부터 올라온다고 했다.지원씨는 “한번은 같이 기분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우연히 다른 남자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손이 날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맞으면서까지 사귀는 이유에 대해 그녀는 “수차례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금세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자꾸 한번 더 믿게 됐다. 날 얼마나 사랑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례2 구타가 아닌 고문
“강남역 한복판에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소리지르며 욕하고, 난리도 아니었다.”삼성동 무역회사에 다니는 임윤미(가명·28)씨는 지원씨보다 더욱 심각한 경우다.그녀가 현재 사귀는 주영진(가명·32)씨는 윤미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체크한다.전화라도 한번 못받게 되면 하루종일 시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응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윤미씨의 설명이다. 변명이라도 하려 하면 영진씨의 입에서는 연인 사이에서 차마 듣기 거북한 욕설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윤미씨는 올 여름에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발로 밟히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 일로 인해 윤미씨는 생전 가보지도 못한 경찰서에서 조서까지 썼다고 흥분했다.그러나 윤미씨는 헤어질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과거에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가 대천의 한 모텔로 끌려가 3일간 폭행 및 괴롭힘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건도 얘기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윤미씨는 “구타가 아닌 고문이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도 그녀는 자세한 답변을 꺼렸으나 “근 일주일간 회사도 못나갔다”는 말로 당시 상황이 심각했음을 시인했다.윤미씨에 따르면 영진씨는 “너 없으면 못산다”혹은 “다른 남자 만나면 둘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다.“사랑하기 때문이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윤미씨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흔적이 역력했다.

사례3 갈데까지 간 사이
한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놓은 재희씨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애인의 폭력이 극에 달하자 그녀는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했으나 오히려 그는 의기양양했다.오히려 “너와 나는 갈데까지 간 사이아니냐”며 “두번의 낙태사실과 현재 방광염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을 모두 알릴테니 일러보라”는 식으로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애인 K씨는 “안만나주면 회사, 집으로 찾아가겠다”며 위협하는가하면, 심지어 “니네 엄마까지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해, 재희씨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