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피눈물 흘리고 개발업자들은 침 흘리고
재개발구역 상도4동 산 65번지 현장취재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2011년 4월 25일. 서울 상도4동 산 65번지 재개발구역은 아수라장이었다. 계절은 봄이었지만 이곳만큼은 겨울 한파보다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쳤다. 이날 이 지역은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이미 재개발사업으로 가옥 70%가 헐려 살고 있는 주민이라고 해 봐야 40명 정도가 다였지만 이들 마저도 쫓아내기 위한 절차였다. 밥 먹다가 밥상째 들려 나가고, 병든 노인도 집 밖으로 들려 나갔다. 바로 서울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다.
땅 팔아 지덕사 이사·건설사 대표 주머니 채워
주민 외면하는 동작구청, 주민 위한 공무원 아냐
2년의 시간이 흐른 2013년 10월 31일. 서울 상도4동 산 65번지 재개발구역 일대는 아직도 그때 모습 그대로다. 마을 입구에는 여전히 철거를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용역원들과 철거장비들을 막기 위해 자동차를 입구 앞에 세워 막아 놓았다.
이곳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상도4동 일대는 양녕대군을 모시는 후손들 재단인 ‘지덕사’ 소유의 땅이다. 이곳에는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한때는 305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비록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기는 했지만 지덕사에 꾸준히 사용료를 내며 살아 왔고 1982년 ‘무허가 주택 양성화 촉진법’ 제정 뒤부터는 취득·등록세, 재산세 등도 내고 살아 왔다.
하지만 1997년경 지덕사는 해당 토지에 부과된 160여억 원의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기 어려워지자 토지 매각 후 수익사업을 고려하게 됐다. 이후 2002년 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제정됐고 2007년 6월 상도4동 산 65번지와 그 일대가 주택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땅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이권이 개입되면서 개발업자들과 일부 재단 관계자 등이 각종 비리와 사고를 일으켜 주민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개발 둘러싼 비리
금품로비로 65억 사용
지덕사 소유의 상도4동 산 65번지는 1997년과 2007년 주택재개발구역 지정 이전에 이미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92년 3월 중앙산업개발은 양녕대군 탄신 600주년 기념사업계획 일환으로 이 일대 토지 공원화와 주택개발을 준비하며 당시 종중 대표 이황, 지덕사 이병준 이사장과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지역주택조합사업 협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기존 재단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돼 후임 이병철 이사장이 선임되고 진일레져산업이 개발사업에 합류하면서 기존 사업 추진 주체였던 중앙산업개발이 사업에서 밀려나게 됐다.
이후 진일레져산업은 소유권 이전과 함께 극동건설 보증을 통해 280억 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토지대금으로 80억 원만 지덕사에 지급하고 대출잔금 200억 원을 착복했다. 이 대출 잔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사기행위로 1998년 11월 당시 지덕사 이사장이던 이병철 이사장과 진일레져산업 박진휘 대표이사는 배임, 위증,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지덕사는 배임 혐의에 대한 상도4동 산 65번지에 대한 소유권반환 청구를 했고 2005년 6월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소유권을 확보했다.
진일레져산업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민영주택개발을 시도하는 세아주택이 재단과 접촉을 했다. 당초 개발 파트너로 여겼던 중앙산업개발과 조합방식의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주민들이 뒤로 밀렸다.
조합방식의 경우 시행자가 무허가건물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 및 임대아파트 건축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지만 민영주택 사업의 경우 앞선 의무사항이 없어 사업이익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아주택은 자신들의 민영주택개발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65억 원대의 금품로비를 벌였다.
당시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2009년 7월 1일 세아주택이 주민들이 중심이 된 재개발사업을 무산시키고 민영개발 방식의 주택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지덕사 이사장·이사, 재개발 추진위원장·임원, 도시정비전문관리업체, 동작구청 담당과장 등 총 13명에게 65억 원 상당의 대규모 금품 로비를 한 사실을 적발했다.
결국 금품을 살포한 세아주택 기대석 대표, 31억5000만 원을 수수한 지덕사 이관수 이사장, 조합원들의 조합설립 인가를 늦추는 대가로 약 2000만 원을 수수한 동작구청 박문식 도시정비과장, 주민들에게 동의를 받아주는 대가로 10억1000만 원을 수수한 최윤호 재개발조합장 등 7명이 구속기소되고 나머지 9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세아주택의 로비자금이 모두 공사원가에 반영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분양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으로 진단했다. 이는 결국 조합원 또는 일반 분양자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또 당시 구속된 이관수 이사장에 대해서는 토지매매 대금을 시세의 2배 정도인 600억 원 이상을 요구한 뒤 이를 550억 원으로 감액해 주는 대가로 31억5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며 이러한 수법은 규모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고 밝혔다.
부채 2000억 원 이상
툭하면 바뀌는 소유권
세아주택의 금품 로비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규모도 컸지만 서민들을 위한 재개발 사업을 이용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운 파렴치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세아주택의 불법로비가 밝혀졌지만 이 과정 동안 세아주택은 2007년 7월 금호건설 지급보증을 통해 500억 원을 대출받았고 2008년 3월 1600억 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부채가 2000억 원이 넘게 됐다.
또 지급보증을 섰던 금호건설은 2010년 3월 워크아웃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8월 상도동 땅을 매각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금호건설은 이 지역을 부실사업장으로 분류해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상도4동 65번지 토지는 1997년 지덕사와 진일레져산업의 매매계약으로 소유권이 진일레져산업개발로 넘어갔었다. 하지만 2003년 지덕사 재단 이사장과 진일레져산업 대표의 배임수재건으로 2005년 재단이 소유권을 반환받았다. 하지만 2007년 7월 지덕사는 세아주택에 다시 토지를 매매하려 했고 25일 이를 위해 정관변경허가서 없이 이사회만 열어 매매해 버렸다. 정관변경허가서 없이는 토지매매계약이 무효이므로 이날 이사회 통과 후 세아주택 측이 금호건설 및 대주주를 속여 받은 대출 또한 불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재단법인이 기본재산을 처분할 시에는 처분에 관한 정관 변경 사항을 이사회에서 결의 한 후 주무관청에 정관변경허가를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세아주택 측은 당시 금호건설 및 대주주를 속이기 위해 소유권 등기이전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재단 정관 제23조(연석회의소집)와 제36조(규칙, 규정)에 대한 동작구청의 정관변경허가서를 첨부해 제출했다.
지덕사 소유의 땅을 합법적으로 처분하기 위해서는 연고주민에게 우선 매각하되 매수하지 못할 시 연고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처분해야 한다. 이 내용은 1997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밝힌 바 있고 주무관청인 동작구청도 2006년 9월 4일 지덕사에 1997년 문화부 장관의 처분조건을 이행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토지는 다시 세아주택으로 넘어갔고 대한토지신탁을 거쳐 현재는 국제신탁 소유로 돼 있다.
하지만 2010년 5월 지덕사와 세아주택의 매매계약이 배임혐의로 확정판결 나면서 지덕사는 11월 소유권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7월 소유권반환 소송에서 법원은 “토지가 지덕사 소유이므로 국제신탁은 토지를 지덕사에서 진정명의 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 등기절차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2013년 3월 지덕사 측에서 국제신탁을 상대로 한 상도4동 토지반환 소송을 취하해 버린 것이다. 취하 이유는 정관변경 하자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었다. 이때 소송 취하를 주도한 사람이 현재 검찰에 구속돼 있는 이종수 상임이사다.
소유권 이전 위해
서류 조작 등 사기극
상도4동 산 65번지 일대 토지 매매에 있어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관 변경’건이다. 앞서 밝혔듯 1997년 당시 문화부 장관의 처분조건은 “연고주민에게 우선 매각하되 매수하지 못할 시 연고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아건설은 이를 충족시킬 수 없고 하루하루 늘어 가는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사기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실제 지덕사가 세아주택에 토지를 매매할 당시 처분조건을 지켰다면 동작구청에 소유권 이전 신청 시 연고주민들에게 받은 동의서나 이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정관변경신청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동작구청은 2008년 4월 21일 이와 관련한 질문에 “세아주택에 토지매각 관련 처분승인 요청이 없었으며 재단이 기본재산 소유권을 이전한 사항은 알 수 없으며 처분승인서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아주택이 2008년 낸 지역조합설립인가처분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사실조회서를 통해 동작구청에 문의한 내용의 답변에는 2008년 8월 26일 “정관변경허가한 사항입니다”라고 답변해 상도동 재개발사업을 더욱 더 꼬이게 만들었다. 재개발지역의 해당 주민들도 동작구청의 이러한 행동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작구청의 확실하고 정확한 업무처리가 있었다면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주민들의 피해는 일찍 해결됐을 수도 있다.
삶의 터전
이젠 주민이 지킨다
상도4동 산 65번지 일대 재개발구역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제철거의 두려움은 물론이고 재산상의 피해 또한 하루하루 쌓여만 가고 있다. 주민들 피해의 책임자들인 지덕사 재단 관계자들과 건설사 관계자들 또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아직도 이 땅을 개발하고 팔아 이익을 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주민들도 이제 땅 지키기에 나섰다. 세아주택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 준 금호종금 외 15개 금융사는 부실채권 회수를 위해 상도4동 재개발용지를 공매에 내놓을 계획이다. 주민들은 이 땅이 공매에 나올 경우 십시일반으로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공매취득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처음부터 추진했던 주민이 중심이 된 재개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