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박지원 통장에서 찾으려던 것은…
회장님 위해서라면 불법 조회·삼진 아웃도 괜찮아?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신한은행(은행장 서진원)은 아직도 신한사태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금융감독원이 신한은행 특별 검사에 착수했다. 신한은행이 민주당 박지원, 박영선 의원 등 고위 인사 명의의 계좌를 불법으로 조회한 혐의 때문이다. 더욱이 혐의를 받고 있는 불법 조회의 시기가 2010년으로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의 갈등이 고조됐던 이른바 ‘신한 사태’ 때여서 그 관심도가 증폭되는 모양새다. 이미 일각에선 “신한은행이 라 전 회장을 비판하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불법 조회를 통한 사찰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또 신한은행은 이번 파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진 아웃제’에 걸려 영업점 폐쇄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될 가능성도 있어 불법 조회 배경에 대한 의혹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금감원 특별조사 파견, 진실게임 시작
신한사태의 악령,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신한은행이 2010년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 야당 중진의원들을 비롯한 유력 정·관계 인사들의 고객정보를 무단 조회했다는 의혹이 처음 일어난 것은 지난 17일.
김기식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신한은행이 2010년 4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야당 중진의원들을 포함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의 고객정보를 지속적이며 조직적, 반복적으로 불법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함께 공개된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조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신한은행 경영감사부와 검사부 직원들은 2010년 4월부터 매달 약 20만 건 내외의 고객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자료에는 박지원·박병석·박영선·정동영·정세균 등 민주당 중진들과 18대 국회 정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 고위 관료, 신상훈 전 사장을 포함한 신한은행 주요 임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김 의원은 해당 시기와 관련해 “당시 민주당은 ‘영포라인’에 의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비호 사실을 연일 문제삼고 있었다”며 “당내 특위로 영포게이트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의원들은 라 회장의 50억 원 비자금 의혹 무마 배경 등을 집중 추적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한은행은 2010년 9월 2일 신상훈 전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며 “라응찬-신상훈 두 세력의 격렬한 권력다툼이 법적 공방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의혹이 시작된 지 나흘 만에 금감원이 움직였다. 검사 인력이 신한은행에 긴급 파견돼 사건을 조사 중이며, 문제가 적발되면 신한은행에 중징계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조회 내용이 거래내역조회뿐만 아니라 종합고객정보조회, 고객외환조회, 고객여신전체조회, 고객수신전체조회 등 다양한 종류로 알려지면서 “신한은행이 대체 박지원의 무엇을 찾으려 했던 거냐”는 점이 대두되고 있다.
결국 신한은행은 라 회장이 2008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 원을 건넸던 사실과 차명 계좌를 관리해 왔던 비리가 있었고, 이를 밝히려는 박 의원을 입막음하기 위해 불법으로 조회했다는 설명이다. 또 영포라인이 라응찬 회장을 비호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민주당에 대적하기 위한 수단을 찾으려 했던 것이란 추측도 많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신한은행의 불법 조회는 박 의원과 민주당의 비리를 캐내 라 전 회장을 비호하려던 움직임이 된다.
동시에 일부에선 이번 일로 정치권과 당국 등 외부의 간섭이 들어올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보인다. 라 전 회장과 신 전 사장의 남아 있는 각 라인 세력들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후계 구도를 흔드는 발단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현재 금감원과 신한은행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문 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불법 조회로 인한 특별 조사에 들어간 사실은 맞다”면서도 “그 외 또 다른 사항을 조사할 개연성도 열려 있으며 향후 문책 등 어떠한 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 역시 “금감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며 “일부 언론을 통해 ‘박지원 등 인사들과 동명이인의 통장’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디서 확인된 사실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자체 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금감원에 보고했다는 사실만 확인이 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앞서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이번 의혹 관련 “평상시에 업무와 관련해 여러 정보 조회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자료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한 상태다.
한편 신한은행은 이미 2010년 라응찬 전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로 경고를 받았었고, 지난해 7월에는 동아건설 자금 횡령 사건에 연루돼 금감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