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공기업 방만 경영의 실태를 말하다 ① - 한국공항공사

낙하산 인사가 부른 파문 ‘용산 참사, 아픈 기억 되살리다’

2013-10-21     강휘호 기자

 

 시민단체 비난 여론 폭발 “살인마가 공기업 사장”// 시위 움직임 확산 가능성 높아, 거센 후폭풍 예고

공기업(公企業).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첫 번째 의무로서 공익성을 요구받고, 두 번째로 관료주의와 비능률을 회피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공기업들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공공의 목적을 잊은 채 방만 경영 일로를 걷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공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기업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와 같은 현실에 [일요서울]은 각 공기업이 어떻게 공익을 해치고 있는지 그 천태만상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낙하산 인사 파문을 겪고 있는 한국공항공사(사장 김석기·이하 공항공사)다. [편집자주]  

정치 인사들도 관심 집중…정부 비판 행렬 잇달아
실질적 경영문제 역시 국정감사 통해 끝없는 지적  


[일요서울ㅣ강휘호 기자]  지난 16일 오전 9시, 취재진이 찾은 공항공사에선 모든 출입문이 통제된 채 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돼 있던 김석기 신임 사장의 밀실 취임식이 강행됐다. 그런데 김 사장의 취임식은 대체 왜 밀실에서 진행됐던 것일까. 김 사장은 전 서울경찰청장으로 2009년 1월 이른 바 ‘용산참사 사건’ 때 진압경찰 병력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경찰들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범국민적 비난을 받고 경찰청장 자리에서 물러났던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되는 등 공직 생활을 영위해 왔다. 지난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경주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참패를 당했다. 이어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 김 전 청장은 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 사장이 용산 참사의 장본인이라는 이력은 ‘김석기는 절대 공항공사 사장이 될 수 없다’라는 자격 논란을 이끌었다. 용산 참사의 유가족을 비롯한 용산 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공항업무에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고,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할 도덕적·정치적 문제 인사를 공기업 사장으로 내정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철거민을 토끼몰이 하듯 때려잡고 6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자인 김 사장이 도대체 어떤 전문성이 있는가”라고 규탄했다. 공항공사 노조 역시 이때까지만 해도 “김 사장이 취임하면 벌써 세 번째 서울경찰청장 출신이 사장에 부임하게 된다”며 “공항업무에 전문성이 없는데다 용산참사 경찰 진압을 지휘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인물인 만큼 출근 첫날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란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유가족 및 규명위원회와 공항공사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으로 정식 취임식을 열지 못했던 김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취임식을 강행했다. 규명위원회와 뜻을 같이하던 공항노조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취임식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김 사장을 박근혜 정부가 내려 보낸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해 왔던 노조는 취임식 전날인 15일 밤 12시쯤 전격적으로 김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중단하고 해산했다.

공항공사노조 관계자는 “일단 철수한 사실은 맞지만 어떠한 입장도 밝힐 수는 없다”면서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발표할 계획”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렇게 명확한 이유도 없이 노조는 농성을 철수했지만 용산참사 유족과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들은 밤새 길바닥 농성을 이어갔다. 또 전재숙 씨 등 4명의 유가족은 본사로 진입하다가 로비에서 공사 직원과 청원 경찰들에게 잡혀 있어야 했다. 문 밖에서 출입을 봉쇄당한 유족 및 규명위원회 등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노조가 갑자기 왜 태도를 바꾸었는지는 불분명하기만 했다.

이와 관련해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와 이충연 씨는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내 남편이 테러범이 아닌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지옥까지 쫓아다니며 투쟁하겠다”, “김석기의 진정성 없는 사죄에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전문가인 김석기는 당장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등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규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노조가 왜 입장을 바꿨는지 모른다. 아무런 연락이 없는 상태”라면서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시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용산참사 유족들과 규명위원회 등은 항의 시위와 출근 저지 등 김 사장의 퇴진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조희주 규명위원회 대표는 “김석기의 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퇴진할 때까지 따라다니며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래군 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 역시 “용산 참사 5주년이 되기 전인 3개월 안에 김석기를 공항공사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며 “항의시위 출근저지 투쟁을 이어나가며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 사장의 취임에 분노를 느낀 것은 비단 이들 유족만이 아니었다. 정치권 인사들도 김 사장의 취임을 두고 맹렬한 비판을 가했다. 야당 의원들은 김 사장이 공항공사 사장으로서 전문성이 부족하고 용산 참사의 주도적 인물을 공기업 사장으로 임명한 건 박근혜 정부 ‘인사 참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김 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경찰 직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었다. 

먼저 윤후덕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한국공항공사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공항공사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며 “이명박 정부조차 경찰청장에서 퇴임시켰고 국민의 여론 때문에 국내직에 임명할 수 없었던 김 전 청장을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건 참으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용산 참사 당시 실적위주의 강경주의자였던 김 사장이 촛불집회 참여자를 최대한 많이 잡기 위해 포상금을 내걸었던 전적을 되짚으며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 실정의 상징이며 서민을 무시하고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편 상징”이라며 “그런 참사를 주도했던 김석기 씨를 박근혜 정부가 임명하고 취임식을 강행한 것은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생존권을 위해 싸우던 시민을 죽음으로 내몬 대형 참사 책임자를 공기업 사장에 임명한 건 부도덕과 부실인사로 문제 많던 박근혜 정권 인사 참사의 결정판”이라며 “희생자들에게 깊이 사죄하고 자성해도 모자랄 판에 공기업 사장을 맡겠다고 나선 것은 후안무치”라고 질타했다.
더불어 이 의원은 김 사장이 ‘용산사고의 본질은 불법 폭력시위로부터 경찰이 선량한 시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정당한 법집행에서 출발한다’고 밝힌 한국공항공사 사장 후보 공모 지원서를 공개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자격논란은 시작에 불과

아울러 공항공사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인사 논란 외에도 수많은 방만 경영을 지적당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우선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줄곧 경찰 간부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례들을 근거로 공항공사의 사장 자리가 경찰 고위간부의 ‘실업대책보험’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의 한국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계기로 역대 10명의 공항공사와 공단 사장 및 이사장의 경력을 조사해 본 결과 경찰간부 출신 3명, 군인 출신 3명, 관료 출신 3명, 내부 승진 1명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 2001년 이후 현재까지 4명의 사장 중 3명이 경찰간부 출신들로 구성된 바 있다. 7대 윤응섭 전 서울경찰청장, 8대 이근표 전 서울경찰청장, 10대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다.

또 1986~1993년은 윤일균 예비역 공군 준장 등 장군 출신 3명이 이사장에 취임했고 1993~2001년은 김주봉 전 대전시장 등 내무부와 건설교통부 간부들이 이사장직을 차지했다. 공항공사 사장 자리가 군간부 몫에서 고위 관료들 차지가 됐다가 최근 들어 경찰간부들의 자리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맞는 셈이었다.
문 의원은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공기업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며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전문성과 관계없는 경찰간부 출신 김석기 씨를 임명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말이 전부 공염불이란 증거”라고 꼬집었다.
이어 “전문성 없는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도 문제지만 특정 공기업 사장 자리를 경찰 등 일부 권력집단 간부들이 독식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부적격자 중의 부적격자인 김석기 씨를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취임식 이후 이어진 인사 참사의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공항공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과도한 임대보증금을 받으면서 돈놀이를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안 의원이 공항공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공항공사는 지난 5년간 임대보증금을 70% 인상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임대보증금은 고스란히 공항공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문제를 드러냈다. 공항공사는 임대보증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272억 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임대보증금을 가지고 임대매장 원상복구나 임대료 정산에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국감 배포자료에서 “공항공사가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에 필요한 항행안전장비인 ‘이동용TACAN(Tactical Air Navigatio n)’ 사업 계약을 방위사업청과 맺었지만 공항공사의 기술력 확보 미흡에 따른 납품 지연으로 공군전력화가 1년여가량 차질을 빚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공항공사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R&D사업센터에 총 1242억 원을 투자했지만 관련 장비 판매사업은 오히려 10억 원의 손실을 본 점을 짚고 “미래 경제적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처사”라며 “공항공사의 R&D사업센터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공항공사의 R&D사업센터는 항행안전장비 국산화를 통해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기여하고 신 성장사업으로 육성한 장비 개발을 통해 실익을 얻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2006년에 구성됐다.
이 밖에도 공항공사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직원 자녀의 학비를 상한액 없이 무상으로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뿐만 아니라 국내 공항 중 김포·김해·제주공항 등 3곳을 제외한 11개 공항은 2653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3곳의 공항은 9130억6200만 원의 흑자를 기록했을 만큼 양극화가 된 점은 차별화된 공항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공항공사의 탓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한 청주공항 민영화를 박근혜 정부가 재추진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끝없는 문제점을 나타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수현 의원은 “청주공항 민영화는 지난 정부에서 이미 실패한 사업으로 경쟁력이 충분한 청주공항은 민영화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투자 대상”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청주공항 민영화를 재추진하는 것은 명확한 ‘공약파기’”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포공항 주변 습지를 대중골프장으로 조성한 점, 항공수요 감소와 부채 문제, 항공정비기술과 인프라의 부족으로 발생한 1조8000억 원가량의 국부 유출, 승무원에 대한 폭언·폭행 지속, 이익잉여금이 1조 원임에도 불구한 적자공항 이용자 서비스 증진 부재 등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와 같이 인사 논란부터 경영상 차질로 발생한 혈세 낭비, 정치권 자리 나눠먹기의 온상 등의 문제점을 끝없이 지적당하고 있는 공항공사가 언제쯤 공기업의 본분을 되찾고 혈세를 통해 공익을 도모할 수 있을지 여야를 비롯한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