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이슈화로 박근혜 때리기?
2005-01-26 홍성철
정치권 관계자들도 이번 문서 공개 배경에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 외에 또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두 건의 문서가 박 전대통령과 관련된 것인 만큼 문서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자연스럽게 과거사 규명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박 전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논쟁도 뜨거워질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박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이와 관련,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과거사 문제 이슈화-박정희 재평가-박근혜 죽이기-정국 주도권 장악-정권재창출 등으로 이어지는 여권의 대권 마스터플랜과 맞물려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권이 정권재창출이라는 대업 완수를 위해 정적인 ‘박근혜 죽이기’ 플랜을 본격 가동시키고 있고, 과거사 문제 이슈화는 플랜 착수를 알리는 신호탄일 것이란 게 한나라당의 시각.실제로 여권은 박 대표가 지난해 4·15총선이후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키면서 당 장악은 물론 차기 대권주자 1순위로 자리매김하자 박 대표를 노골적으로 견제해 왔다.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발의를 통해 과거사 문제에 불을 지폈고,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박 대표를 압박했다.하지만 박 대표를 겨냥한 여권의 1단계 압박 전략은 여론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박 대표의 최대 지지층인 보수·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정적 죽이기’라는 역풍을 감내해야 했다.그렇다고 여권이 ‘박근혜 죽이기’ 플랜을 사장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1단계 전략이 다소 추상적이고 성급했다는 점을 보완해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안을 가지고 공략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여권 주변에서는 ‘박근혜 죽이기’ 플랜과 관련한 구체적인 얘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 수뇌부에서는 박 대표가 74년 육영수 여사 사망이후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했던 5년여 기간의 행적과 관련한 이른바 ‘박근혜 파일’을 취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최근 기자에게 “친일청산법이나 정수장학회 문제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며 “박근혜 대표를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는 폭발력 있는 X파일을 취합중이고 일부는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이 당직자는 또 최근 공개된 3공화국 관련 문서 공개 배경과 관련해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과거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 차원으로 해석해 달라”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이나 박 대표측이 정치적 노림수 등 그 배경을 의심하고 있는 것은 ‘도둑이 제발 저리는 꼴’”이라고 주장했다.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도 대부분 잇따른 외교문서 공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부 의원들은 문세광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한국 정부가 저격사건 이후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단교’까지 언급한데 대해 “박정희 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정부 또한 한일협정과 관련된 모든 문서를 빠른 시일내에 모두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공개 시에 파생될 문제점을 점검하는 등 사전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는 일부 문서를 공개한 이후 시민단체 등이 나머지 문서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한일수교 40주년과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 한일외교문서는 모두 일반에 공개해 불행했던 한일 과거사를 완전히 정리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비공개된 나머지 여러 문서들에 대해서도 공개대책기획단의 외교문서 전문가와 법률전문가 등이 나서서 자구(字句)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공개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점검하고 있다”며 “가능한 빠른 시일안에 100% 모두 공개하는 것이 외교부 방침”이라고 전했다.
정부도 8·15 광복절 이전까지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아울러 연말까지 외교문서 공개로 파생되는 민원과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 보상 문제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정부와 여권이 문서 공개를 환영하는 동시에 추가 문서 공개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박근혜 죽이기’ 등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다만 한나라당은 당내 이념갈등을 포함한 주류-비주류간 힘겨루기,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한 역학관계 등 당내에 복잡한 함수관계가 맞물려 있어 공식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내심 역풍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문서 공개와 관련한 후폭풍이 몰아칠 경우 그 중심에 서게 될 박 대표는 지난 20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누구의 딸이라는 것을 잊어달라. 문서공개에 대해 공당의 대표로서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여권의 과거사 이슈화 전략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김덕룡 원내대표도 21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역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면 성공도 못하고 용서받을 수 없다”며 정부와 여권의 정치적 악용 의혹을 제기했다.박 대표 측근들은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죽이기’ 내지는 ‘한나라당 고사작전’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박 대표가 부메랑을 받게 될 3공화국 관련 문서가 잇따라 공개되고 영화 제작과 방송 다큐멘터리가 속속 방영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여권 수뇌부의 기획된 정치공작일 것이란 게 이들 측근들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