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원전비리 수사 향방
기업들 대형 로펌 선임…진흙탕 싸움 예고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원전비리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초호화 변호인단 구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90여 명을 기소함에 따라 방어권 행사를 위해 선임된 변호인단이 무려 1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앤장’은 물론 ‘광장’, ‘동인’, ‘대륙아주’ 등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가 대거 포진해 공소사실 가운데 허점을 찾고 있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개인 비리 사건에서 그룹의 조직적인 비리 사건으로 수사가 확대될 것을 대비해 일찌감치 변호사 군단을 지원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검사 9명 vs 변호사 100명 ‘다윗과 골리앗’ 싸움
수뇌부 지목 막으려 꼬리 잘라내기 형국 비난 거세
원전비리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검찰은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 기소를 포함해 43명을 구속기소하고 54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97명을 기소했다.
박 전 차관은 2010년 한국정수공업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설비 용역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과 2011년 4월에는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에게서 각각 200만 원과 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원전비리 수사단은 전국 7개 검찰청과 동시에 진행한 수사에서 ▲JS전선 등이 제어 케이블을 비롯한 47개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서 위조 ▲현대중공업과 한국정수공업 등이 납품을 위해 대규모 금품 로비를 벌인 것 ▲한수원과 한전 자회사 인사 청탁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그 결과 원전 비리가 납품업체, 검증업체, 승인기관(한국전력기술), 발주기관(한수원)이 연결된 구조적 비리임을 밝혀냈다. 또 2008년 4차례 423억 원 상당의 신고리 3·4호기 케이블 입찰 과정에서 LS전선 등 5개사가 낙찰 업체, 입찰가를 담합한 혐의로 5개사 전현직 임원 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도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중간수사 과정에 불과하고, 아직 명확한 몸통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검찰 측도 “발표 이후에도 모든 증거와 단서를 포착하는데 주력할 것”이라 밝혀 JS산전과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비리 연루 기업들의 문단속이 심하다.
몸통의 실체가 기업 내 수뇌부로 지목될 경우 입을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리 연루 기업들이 일제히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100여 명을 동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해 비난을 받았다. 비리로 인해 전력대란은 물론 해외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가 국내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높인 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논란이 일어난 것. 9명의 검사를 상대로 100여 명의 변호사가 선임되자 일각에서는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며 로펌업계의 때 아닌 호황이라는 후문이 돌 정도였다.
변호인단 김앤장·광장
동인·대륙아주 대거 포진
특히 김종신(67) 전 한수원 사장은 3개 로펌 소속 변호사 9명과 개인 변호사 2명 등 모두 11명을 변호인단으로 구성해 개인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선임된 변호인단 대부분은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 ‘동인’, ‘대륙아주’ 등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다.
송모 한국수력원자력 부장에게 17억 원을 제공한 혐의의 현대중공업 임직원 일부는 ‘김앤장’ 및 ‘대륙아주’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 신고리 1·2호기 등에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제어케이블 등을 납품한 LS전선의 전현직 임직원은 ‘광장’ 소속 변호사 6명과 ‘동인’ 소속 변호사 4명이 변호인 등록을 했다. 이 외에도 부산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뒤 사무실을 개업한 변호사들이 만든 로펌인 ‘해인’도 한수원 직원과 현대중공업 상무, 원전부품 시험업체인 새한티이피 대표 변호에 나섰다.
그 결과 JS전선은 불량 케이블 납품으로 무려 179억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수원 직원들에게 상품권 수백만 원어치를 준 것 외의 돈거래는 없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또 검찰이 “안전에 직접 영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발언을 해 일각에서는 “사실상 원전 비리 수사 결과는 중간발표에서 다 나온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JS전선을 비롯한 기업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고용한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니냐는 것. 이들은 현재 차후 수사 범위가 확대돼 몸통의 실체가 그룹 수뇌부로 밝혀져 입을 타격을 대비해 꼬리만 잘라내고 도망가려는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JS전선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채 어떤 입장도 내비치고 있지 않다. 한수원 관계자는 “개인 비리이기 때문에 한수원 입장을 발표할 만한 내용은 없다”며 개인의 일임을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측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검찰 중간수사 발표에 대한 입장 표명보다 재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회사 차원의 공식 발표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변호인단 구성에 대한 비난을 두고는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책임을 지기에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직원들의 속사정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회사 차원해서 지원해주는 것이다”며 배경을 밝혔다. 이어 “외국 수출용 부품 공급 계약 건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뇌물 수수 비리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불량품 공급, 전력 대란 원인 제공 등의 오해를 받고 있다”며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측이 수사 한계에 대한 우려를 잠식하고 막판 수사에서는 이에 대한 극복 의지를 보이고 있어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