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유해 발굴 사례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하나, 호국형제의 묘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형제의 묘가 있다. 바로 이천우 이등중사(병장)와 이만우 하사의 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0년 10월 강원도 양구군에서 유해를 발굴해 영문 이름과 군번이 적힌 인식표로 이천우 이등중사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 이등중사는 친형인 이 하사가 입대한 뒤 한 달 만인 1950년 9월 홀어머니를 뒤로하고 자원입대했다. 그는 7사단 소속으로 서울수복작전에 이어 북진 대열에 참가해 평양탈환작전과 개천·덕천지구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무공을 세웠다.
그러나 1951년 9월 강원 양구 백석산 전투에서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했다.
형 이 하사는 1사단 소속으로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에서 전사했다. 형은 화랑무공훈장을 한 차례, 동생은 두 차례 받았다.
국방부는 2011년 제56회 현충일을 맞아 두 형제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처음으로 ‘호국형제의 묘’를 조성했다. 혈육이 국립현충원에 함께 안장된 것은 2007년 7월 서해 야간비행 중 순직한 박인철 대위가 1984년 팀스피릿 한미 연합훈련 중 순직한 아버지 박명렬 소령 옆에 묻힌 이래 두 번째다.
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 된 최승갑
2000년 3월. 칠곡군 다부동 369고지에서 한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뼈와 뼈 사이에는 딱딱하게 굳은 흙이 살점처럼 붙어있었고, 낡은 군화는 짝을 잃어버린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겨진 군화 속에는 발가락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해와 함께 소지품도 발견됐다. 녹슨 수통은 바짝 말라 있었고, 반쯤 부러진 빗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끼여 있었다. 쏘지 못한 실탄과 호루라기, 플라스틱 숟가락, 연필 등도 함께 나왔다. 그리고 노란색 삼각자에는 ‘최승갑’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삼각자에 적힌 이름을 근거로 유가족을 찾아 나섰다. 확인 결과 최승갑의 아내가 살아있었다. 당시 아내의 나이는 75세. 생사도 모르는 남편을 50년 동안 기다려 온 늙은 아내는 이튿날 다부동 369고지를 찾았다. 그리고 말없이 남편의 주검을 거두었다. ‘최승갑’과 늙은 아내의 사연은 이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결정적인 모티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