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춘천 마지막 집창촌 ‘난초촌’
아가씨들 떠나고 시민들 품으로…
한국전쟁과 함께 문 연 캠프 페이지와 난초촌
성매매 여성에게 특별생계비 1000만원 지원
난초촌은 춘천역 인근에 있다. 하지만 처음 들르는 사람들은 난초촌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성매매를 위해 외지인들이 알음알음 찾아오지만 난초촌의 주 고객은 춘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난초촌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은 춘천에 유도탄기지사령부와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등이 주둔할 캠프 페이지를 만들었다. 캠프 페이지가 만들어지면서 난초촌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캠프 페이지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장진호 전투에 참여해 명예 훈장을 받은 존 U. D. 페이지 대령의 이름에서 따 왔다. 반환 이전까지 미국 2보병사단 예하 2항공연대, 1대대(아파치)가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 기밀문서에서 따르면 핵무기가 배치되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1972년에 핵탄두 관련 사고가 있었다. 1983년 5월 5일에는 중국 민항기가 이곳에 불시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대한민국에 반환됐으며 8년간의 정비를 거쳐 지난 6월 시민에게 개방됐다.
지난 10일 이슬비가 내리는 오후 취재진이 난초촌을 찾았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썰렁하고 흐린 날씨였다. 춘천역을 지나 난초촌을 가는 길은 한적했다. 캠프 페이지가 폐쇄됐고 난초촌이 문을 닫아 행인의 발길은 더욱더 줄어들었다.
7~8년 전만 해도
일하는 아가씨 80여 명
난초촌 초입의 집들은 이미 시작된 철거공사로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다. 가림막을 지나자 전형적인 집창촌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등이 달린 쇼윈도가 집집마다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쇼윈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성기 때였다면 붉은 불빛 아래 몸매가 드러나는 화려한 옷들로 치장한 아가씨들이 서 있었겠지만 이제는 빈 의자만이 남아있었다.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난초촌에 아가씨들은 없었다. 다만 아직 철거공사가 끝나지 않아 난초촌 관계자들 몇 명이 남아 마을을 관리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안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난초촌을 둘러본지 20분쯤 지나자 어디선가 취재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를 따라 조그만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그만 사무실에는 3명의 남성이 앉아있었다.
취재진을 부른 남성은 난초촌 운영주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난초촌이 철거될 때까지 관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취재진은 그를 통해 난초촌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까지 난초촌에는 16개 업장이 문을 열어 운영되고 있었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는 80여 명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고 춘천시청과 시민단체 등에서 폐쇄 압박이 심해졌다. 그런 가운데 캠프 페이지가 춘천에 반환되며 공원으로 꾸며지기 시작했고 추가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난초촌은 설 자리가 없어져 갔다.
난초촌 관계자는 “시청 관계자들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의 경우 집창촌 폐쇄 시 물리력을 동원한 알력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난초촌은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그 이유가 다 지난 1년 동안 시청 관계자들과 난초촌 업주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해온 결과다”라고 말했다.
춘천시는 난초촌 폐쇄를 위해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성매매 피해자 등 자활지원 운영조례’를 만드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지원조례로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 52명은 1인당 1000만원씩 특별생계비를 지원받아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난초촌 건물이 있던 공간은 주차장으로 탈바꿈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던 아가씨들은 어디로 갔을까. 난초촌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간 사람도 있고 다른 지역의 집창촌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만큼 그들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든 다 그들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뤘을 난초촌. 이제는 텅빈 건물과 적막만이 남았다.
예쁜 담장, 가로수길 조성
10월 월드라이트 파크 개장
캠프 페이지가 사라지고 난초촌이 문을 닫은 지금 부대 부지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캠프 페이지와 난초촌 사이에 있던 담장은 산뜻하고 화려한 벽화로 단장됐다. 춘천시가 미철거됐던 담장 300m에 대해 벽화사업을 진행한 결과다. 춘천역 왼쪽 난초촌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담장에는 춘천의 명물 닭갈비와 춘천에서 탄생한 캐릭터 ‘구름빵’ 등 12개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기존에 있던 격납고는 리모델링해 시민들을 위한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체육관 안에는 배드민턴 코트 15면과 탁구대 15대, 암벽타기 훈련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이용료는 무료다.
드넓은 캠프 페이지 대지에는 시기에 맞게 청보리, 유채꽃, 코스모스 등이 심겨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지금은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다. 약 4만8400평 규모의 대지에 심어진 만큼 장관을 이룬다.
캠프 페이지 전체 용지를 둘러싸는 도로는 가로수길로 재탄생한다. 전체 길이 5km로 가로수만 2000여 그루다. 일렬로 심는 일반 가로수길과 달리 삼렬로 심어 그늘이 드리워진 작은 숲이 조성된다.
또 빛 테마파크 ‘춘천월드라이트 파크’가 10월경 조성돼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월드라이트 파크에는 빛 조형물인 루미나리에를 비롯해 발광다이오드(LED) 가든, 호수 조명쇼장, 평화의 숲, 공연장, 전시관 등이 조성돼 춘천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난초촌과 캠프 페이지가 있었던 근화동은 춘천시 한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제한이 많았다. 그래서 주변의 소양동과 함께 다른 지역에 비해 소음, 교통 불편 등의 문제로 지역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난초촌과 캠프 페이지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며 활기를 띠고 있다. 슬픈 역사는 사라지고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