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강덕수 회장 몰락한 내막?
샐러리맨 신화의 흥망성쇠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개천에서 난 용’은 승천할 수 없는 것일까.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이었던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과 STX 강덕수 회장이 연이어 무너졌다. 이들은 자금난으로 채권단 손에 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물론, 강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퇴진 당하기까지 했다. ‘사원’으로 시작해 대기업을 이끈 1세대 오너 기업인들은 잇단 퇴장 행렬을 보이는 반면 재계의 전통적인 가문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어, 직장인들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는 후문이다. [일요서울]은 두 회사 회장의 흥망성쇠 과정과 배경을 집중 취재해 봤다.
‘자수성가’ 어려운 사회…‘미래에셋’ 박현주만 남아
채권단 강경…부실기업 ‘벌벌’·전통 재벌은 승승장구
원조 샐러리맨 신화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에 이어 윤석금 웅진 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마저 샐러리맨 신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맨손으로 회사를 일구고, 빚으로 몸집을 불리는 고속성장이 가능했지만 경제구도가 고도화되면서부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런 와중에 몸집 불리기식으로 성장해온 기업들 중 자본과 정·재계 기반이 없는 샐러리맨 출신 오너들은 리스크 관리 소홀로 치명타를 입고 끝내 성공 신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윤석금, 강덕수 회장 역시 몸집 불리기를 통해 크게 성장했고, 과한 M&A로 남의 손에서 그룹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얼핏 보기에 두 사람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계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윤 회장이 채권단과의 워크아웃 논의를 일방적으로 뒤엎고 법정관리를 선택하면서 도덕성에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직원 7명 자본금 7천만 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출장 때 식사비와 숙박비를 들고 가지 않을 만큼 스스로를 채찍질해 입사 한 달 만에 국내 1위, 1년 만에는 54개국 영업사원 중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상무직을 끝으로 입사 9년 만에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1980년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웠다. 오늘날 웅진그룹의 모태인 웅진출판이다. 윤 회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과외를 금지하자 유명 학원 강사의 강의를 녹음해 판매하며 직원 7명 자본금 70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윤 회장은 ‘웅진코웨이’ 정수기 붐을 일으켰다. 외환위기를 겪을 때도 ‘렌털 사업’을 도입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 결과 웅진그룹은 웅진식품, 코리아나화장품, 서울저축은행, 극동건설 등 15개 계열사에 매출 6조 원대, 재계 32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핵심 역량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태양광사업 진출부터 건설업, 저축은행까지 과감한 확장 전략을 펼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를 재벌 반열에 올려놓은 건설회사와 저축은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독’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부도를 내면서 그룹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든 것.
윤 회장은 2006년쯤 웅진을 일으킨 공신들을 ‘퇴물’ 취급해 대부분 퇴진시키고 그 빈자리를 경영컨설팅 그룹 출신으로 채웠다. 이때부터 ‘윤 회장이 변했다’는 소리가 그룹 안팎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과한 욕심과 경제위기가 맞물리며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지게 됐다.
게다가 윤 회장은 경영권에 집착한 나머지 신속한 구조조정에 실패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또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에 대한 채권단과의 논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뒤엎고, 법정관리를 선택해 도덕성에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이외에도 사기와 횡령 배임 형의로 불구속기소까지 당했다.
결국 윤 회장은 출판·교육분야 사업만 남긴 채 회사를 처음 열었던 1980년 상태로 돌아가 패자부활전을 노리고 있으나 그가 보여준 행보로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덕수 STX 회장은 ‘쌍용맨’ 출신이다. 1973년 쌍용양회에서 평사원으로 입사해 28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재무책임자(CFO)로 있던 2001년 외환위기로 외국 자본에 넘어갔던 쌍용중공업이 매물로 나오자 전 재산(20억 원)을 투자해 오너가 된 뒤 사명을 STX로 변경했다.
‘쌍용맨’서 ‘회장님’으로
이후 강 회장은 범양상선(현 STX팬오션)과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을 잇달아 인수해 조선·해운업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구축했다. 성장제일주의자인 강 회장은 “돈이 돈을 번다. 투자만이 기업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며 돈을 비축하기보다 투자에 집중했고, 10년 만에 재계 10위권으로 성장했다.
당시 강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뿐만 아니라 ‘IMF가 낳은 영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조선·해운업 호황기를 맘껏 누렸다.
그러나 STX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 다롄에 대규모 조선소를 설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인수·합병은 그룹을 위기에 빠뜨리는 요소로 돌변했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STX는 지난 4월부터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채권단 공동관리 수순에 들어갔고, 강 회장과 채권단의 경영권 싸움도 본격화 됐다.
결국 지난 9일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이 새 이사로 선임되면서 강 회장은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룹 지주회사인 STX와 STX중공업 대표이사직에서도 물러날 것으로 예측된다.
강 회장은 그동안 채권단들에게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으나 “채권단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으로 사실상 STX 경영진에서 빠지게 됐다.
이처럼 재계 샐러리맨 신화가 계속해서 퇴진하는 가운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만이 그 신화를 이어가게 됐다. 반면 재계의 전통적인 범삼성, 범현대 등의 가문 기업들이 나머지 그룹 이익의 10배를 낸 것으로 조사돼 대한민국에서 50년 이상 된 전통 재벌 외 신생 기업의 성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윤석금, 강덕수가 또 나타나기 위해서는 실패한 샐러리맨 출신 오너 기업들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며 “향후 기업들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해 ‘나도 오너가 될 수 있다’는 봉급생활자들의 희망과 도전정신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