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갱신 고객 속인 뻔뻔한 흥국생명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흥국생명(사장 변종윤)이 계약갱신을 앞둔 고객들을 상대로 회사 측에만 유리한 보험가입을 유도해온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그동안 흥국생명은 승환계약(보험계약 갈아타기) 과정에서 보험계약자에게 중요사항에 대한 비교 안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객의 보험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하는 등의 위법행위까지 저질러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아울러 [일요서울]의 취재결과, 흥국생명 본사가 설계사들에게 이러한 부도덕적인 영업을 강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임직원 15명 주의 또는 견책…과징금 4억2천만 원
사측 “전산시스템 운영 미숙일 뿐 의도된 건 아니다”
지난달 22일 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사들에 대해 종합검사를 실시한 결과, 흥국생명은 보험계약 비교 안내 전산시스템 운용 미비로 4억2000만 원의 과징금 조치를 받았다. 과징금액은 문제로 불거진 계약의 수입보험료에 대비해 결정됐다. 이와 함께 흥국생명 임직원 15명은 각각 주의 또는 견책을 당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신계약 1961건(수입보험료 42억 원)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험계약자에게 중요사항에 대한 비교 안내를 하지 않고 기존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흥국생명은 고객의 보험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해온 사실도 적발됐다.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3년이 지난 보험계약에 대해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16건의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해 4700만 원을 면책 처리한 것이다.
이 외에도 흥국생명은 내부 결재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마음대로 우대지급 수수료율을 변경해 판매채널에 5억여 원을 지급하는 등 사업비도 부당하게 사용한 것이 발각됐다.
결국 흥국생명은 기존 고객의 보험계약이 만료되면 새로운 보험과 과거 보험계약의 차이점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과거 보험에 비해 줄어든 담보와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타게 만들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10%대의 고정금리 수익을 보장하던 보험상품을 3~4%대의 변동금리 상품으로 변경 가입을 유도해 고객에게는 손해를 안기고 자신들만 이익을 취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이 같은 영업실태는 고객들을 철저하게 우롱하는 처사”라며 “흥국생명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들은 다시 정확한 비교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보험을 찾을 수 있도록 흥국생명에 권고조치를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흥국생명이 고객의 보험을 임의로 해지한 것에 대해선 “흥국생명의 계약해지는 ‘보험계약 당시 계약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알렸을 경우에도 3년이 경과된 보험계약은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없다’는 보험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계약 전 고객의 건강상태라던가 질병여부를 점검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3년이 지나서야 해약을 하는 것은 분명히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본사가 강요, 설계사도 어쩔 수 없어”
또 이번 사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본사로부터 이러한 지침이 내려와 설계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흥국생명의 한 내부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어떤 보험상품이 최초로 나왔을 때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너무 많이 타 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럴 경우엔 회사에 손해가 점점 쌓일 수밖에 없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설계사들은 고객에게 유리한 보험을 해약하도록 유도한 후 회사에 유리한 보험상품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럴 때 정확한 정보를 주면 누가 보험을 바꾸려 하겠나. 당연히 좋은 점만 부각시키고 대충 둘러댄 뒤 고객들을 속이는 것”이라며 “향후에 문제가 생겼을 땐 고객 스스로 동의한 서류가 있기 때문에 보험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러한 문제가 흥국생명의 설계사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는 “본사가 설계사들에게 ‘왜 아직도 (고객에게 유리한 보험을) 해약시키지 못 했냐’면서 압박을 넣는 일이 허다하다”며 “승환계약을 마무리 짓지 못한 설계사들은 수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 내부직원들 사이에선 ‘다른 상품을 권유하는 보험 설계사의 추천은 절대 받지 말라’는 불문율까지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의료실비 보험에서 이런 경우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아마 다른 보험사들도 흥국생명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흥국생명의 전산관리 업무를 맡은 적 있다고 밝힌 한 제보자는 “내가 근무했을 당시에는 설계사들이 일하는데 공지도 걸지 않은 채 서버를 차단해버린 일도 있었다”며 “회사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내쪽지를 통해 전산장애라고 안내하라는 지침이 내려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전산관리 업무에 대해선 “매년 1회 이상 프로그램을 교체하는 시기가 온다. 가령 1월에 오픈이면 10~12월은 설치, 1월 오픈 이후로는 안정화, 버그 및 오류 수정 등으로 바쁘다. 결국 고작 몇 달 정상운영 되는데 이마저도 전산장애라고 변명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보험비교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흥국생명의 한 관계자는 “전산시스템의 운영 미숙이었을 뿐, 절대 의도적으로 고객들을 나쁜 상품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다”라며 “고객들에게 다시 한 번 비교안내서를 공지한 상태며 본사가 설계사들에게 계약해지를 강요한 적 역시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절대 나쁜상품이라고 볼 수도 없다. 분명히 고객들에게 철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고 충분한 설명도 했다”며 “보험비교 전산시스템도 철저하게 구비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처럼 흥국생명이 이번 사건을 전면적으로 부인함에 따라 흥국생명의 ‘보험 바꿔치기’ 논란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일부에선 고객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사의 이득에만 혈안이 돼있다는 비난 역시 또 다른 진실게임을 낳을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