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재배농민들 한숨 가득…풍년도 반갑지않아
[일요서울 | 경북 김기원 기자] 영양ㆍ청송ㆍ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의 올해 고추 농사는 사상 최대의 풍작이다. 별다른 병해충 피해도 없었고, 마른장마에 생육에 적합한 비까지 적당히 뿌려주니 농가마다 고추 수확량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풍년이면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할 터인데, 농민들의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고추가격이 지난해 절반 이하로 폭락한데다 일손까지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년 특수는 커녕 아예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마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18일 오후 2시 봉화군 봉화읍 인근지역의 고추재배 농가들은 마을 입구 밭고랑마다 붉게 물든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렸지만 어쩌다 한두 사람만이 수확하고 있었다.
이 마을 32가구 가운데 31가구 모두가 고추농사로 생계를 삼는 동네다보니 고추 값 폭락사태로 집집마다 근심걱정은 한결같았다.
“지난해는 잦은 폭우와 병해충로 애를 먹이더니, 올해는 너무 풍년이라서 인건비도 못 건지겠어요”
20여년 동안 1만㎡의 고추농사를 이어온 황현국(56)씨의 한탄이다.
황씨가 올봄부터 고추밭에 쏟아 부은 돈은 적지않다. 모종심기 등 인건비에다 농약, 퇴비 등에 초기 투자만도 400여만 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점점 폭락하자 황씨는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본인은 물론 부인과 딸들, 모친, 삼촌까지 동원했지만 모처럼 주렁주렁 달린 홍고추를 모두 수확하기엔 역부족이다. 일꾼 품삯도 만만찮지 않게 올랐다.
지난해 5만 원하던 1인 품삯은 현재 7만 원을 줘도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황씨는 올해 고추폭락 파동을 견디려면 수확할 인건비라도 최대한 아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본인 뿐 아니라 이웃 농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가격은 둘째 치고 탐스럽게 자란 자식같은 농작물을 수확도 제대로 못한 채 고스란히 두자니 얼마나 애가 탈까.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수확하려던 일부 어르신들은 뙤약볕에 장시간 노출돼 탈수 증상 등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가장 무더운 8월에 수확한 고추(첫물)가 그나마 상품성이 양호해 경매가는 5500원 선, 하지만 9월부터 수확하는 `끝물` 은 3000원도 채 못건지는 형편이어서 마을 전체 고추농가 대부분은 아예 수확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푹푹 찌는 밭고랑 사이에서 힘겹게 수확하는 고추농사. 황씨는 지금까지 자치단체나 각종 기관에서 매년 사과수확 인력지원은 있어도 고추 수확을 위한 인력 지원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누구든지 1년치 먹을 고추를 마음껏 따 가시고 일손이나 좀 거들어주세요. 물론 인건비도 드릴께요” 재배 농민들은 푸념을 하면서 일손 구하기에 동분서주 하고 있다며 농가일손 돕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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