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33일만의 웃음 속사정

고비 넘겼지만 산 넘어 산

2013-08-19     박시은 기자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남북이 개성공단 잠정 폐쇄 133일 만에 정상화를 결정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단이 정상 가동되기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아직 많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남북 공동 책임’에 급작스럽게 합의한 것을 두고 세제개편, 국정원사태 등을 무마하려는 반전카드로 개성공단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개성공단을 둘러싼 의혹과 앞으로의 과제를 보다 자세히 파헤쳐봤다.

세제개편·국정원사태 덮으려 ‘언 발 오줌 누기’
현대아산 ‘금강산·개성공단’ 관광 사업 재개 기대

남·북한은 지난 14일 오후 7시께 종결회의를 시작한 후 5분 만에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5개항의 합의서를 최종 확정했다. 합의 내용으로는 ▲개성공단 사태 재발방지 주체는 ‘남·북 공동’ ▲개성공단 정상 운영 보장 ▲신변안전 보장 투자 자산 보호 ▲남북, 설비정비 후 개성공단 재가동 적극 노력 ▲남북, 개성공단 남북공동위 구성·운영 ▲남북, 외국기업 개성 공단 유치 적극 장려 등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외국기업 개성 공단 유치 적극 장려를 위해 남북 공동 해외 투자설명회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두고 향후 개성공단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하지만 합의된 내용을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남북 간 실질적 회담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나 유사사태 재발방지 보장 ‘주체’를 두고 우리 정부가 ‘북’을 단독 주체로 명시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을 철회한 것을 생각해볼 때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고, 협상 팀에게 필요한 내용을 관철하지 못할 경우 협상을 과감히 접으라”고 지시해왔다. 이 영향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지난 6월 60%를 넘어서고 나서 3개월째 60%대의 견고함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8일 세제 개편안을 발표로 대다수의 ‘월급쟁이’ 서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 그간의 추동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세금폭탄 문제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조짐이 보이자 지난 13일 세제 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며 민심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발 빠른 민심 잠재우기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증세 논란이 일어날지 말지를 두고 대통령이 간을 봤다”는 부정적 여론이 지속됐다. 이 와중에 개성공단을 두고 북한과 드라마틱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우리 정부는 다시 환영과 우려의 중간지점에 서게 됐다. 일각에서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개성공단 합의를 극적 타결한 것이 아닌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기대 속 불안 여전…근본 문제 해결 없는 합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외신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인 상태다. 아직 실무수준의 합의지만 한반도의 상황이 안정세로 돌아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여기에 현대아산 측도 금강산·개성공단 관광 재개 여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룹의 위기 탈출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공단의 개발권자로서 개성공단이 향후 2단계, 3단계로 확대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미국의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며 “남북한의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 소식을 환영 한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연구원은 블로그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문화 교류, 비무장지대 내 평화공원 건립 등 인도주의 사안을 비롯해 민감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근본적인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세부적인 개성공단 협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북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의 의도가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이 아닌 무기 증강에 필요한 ‘자금줄’ 활용,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CFR의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개혁하지 못했고, 남한에 대한 도발과 위협도 막지 못한 개성공단 실험은 이미 정치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개성공단이 잠정폐쇄 된지 무려 4개월가량이 지나 입주해 있는 123개의 기업의 정상화가 이뤄지려면 최소 1~2달이 소요된다. 실질적 정상화는 내년에서야 가능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집을 며칠만 비워도 쌓인 먼지, 마당에 자라난 잡초 등으로 인해 ‘난 자리’의 티가 난다. 때문에 그간 멈춰있던 시설과 장비 점검, 정비를 감안하면 빨라야 1~2달인 것이다. 또 개성공단을 떠난 바이어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세우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구지역 기업 3곳은 공장 재가동을 위한 준비 작업에 바로 착수했고, 입주 기업 중 한 곳인 로만손 측은 “합의가 이뤄진 만큼 세부사항이 논의되는 기간부터라도 기계들을 정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권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업에 따라 정상화 소요 시간이 다르겠지만 주문을 확보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내년 하반기쯤 돼야 실질적인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합의 내용에 대한 실무 논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 보며 “이번 합의는 너무 성급하게 이뤄진 감이 있다. 이미 노동집약적 산업에 관심을 잃은 미국, 유럽이 개성공단 국제화에 참여할 가능성도 적고, IT산업은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화’를 내세운 이번 합의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관철했다.

‘개성공단 극적 합의’가 진정한 의미를 갖고 구설수를 무마하기 위한 방패막이용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우려를 잠식시킬 완벽한 세부 논의가 필요하다. 막판 합의 직전까지 우리 정부가 보장 ‘주체’ 문제를 두고 확고한 입장을 고수했던 것처럼 세부 논의 협의에서는 진정한 ‘합의’의 바람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