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복심’이 정치권 뒤집는다

2005-02-02     홍성철 
정초부터 여의도 정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부의 잇따른 외교문서 공개로 과거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고, 여권의 민주당 인사 입각 제의 파문으로 정계개편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는 인위적인 정계개편론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 관계자들은 정계개편 추진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의 연정·통합론 논란은 노 대통령과 DJ(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영원한 DJ맨이자 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이 두 사람의 밀명을 받아 큰 틀의 정계개편 플랜을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정계개편론이 수면위로 부상하자 정치권의 시선은 어느덧 문 의원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문 의원이 DJ 정부는 물론 현정부에서도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 의원은 노 대통령과 DJ에게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다.실제로 문 의원은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 중앙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영원한 DJ맨으로 98년 DJ정부 초기 때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되기도 했다.또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에는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통령 정치특보를 역임하는 등 현정부에서도 핵심실세로 통하고 있다. 지난해 4·15 총선때 3선 고지에 오른 문 의원은 당과 청와대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어 ‘문창구’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이처럼 문 의원은 노 대통령과 DJ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면서 정치적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 여권의 민주당 인사 입각 제의 파문으로 불거진 통합론 등 정계개편 논란 과정에서 문 의원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는 배경에는 그의 높아진 정치적 위상과 전현직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여권이 민주당과의 연정 내지는 통합론에 불을 지피는 등 정계개편 추진에 시동을 걸었다면 이러한 플랜을 입안하고 진행시키는 막후 조정자가 있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들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막후 조정자로 문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론 이면에는 노 대통령과 DJ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두 사람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문 의원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토네이도 문’이란 별칭으로 정치 지략가 내지는 정계개편의 귀재라는 문 의원의 명성도 그를 지목하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문 의원은 지난 98년 DJ정부 초기 때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이후 이른바 ‘토네이도론’을 물밑 추진한 바 있다. 매년 미국을 강타하는 태풍 토네이도처럼 정치권을 순식간에 뒤흔들어 정치지형을 완전히 새로 짜겠다는 구상이 바로 ‘토네이도론’의 기본 골자다.DJ와 YS(김영삼 전대통령)로 대변되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하나로 묶는 이른바 ‘민주대연합론’을 기치로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려 했던 것. 하지만 문 의원의 이러한 정계개편 구상은 당시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의 ‘낚시론’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이후 문 의원은 1년 뒤인 99년 두번째 정계개편을 시도했다. 새천년민주당 창당과정에서 ‘지역을 넘어, 세대를 넘어, 계층을 넘어’라는 슬로건으로 개혁세력 연합을 통한 정치권 재편을 시도했던 것. 하지만 이러한 개혁연합 구상도 자민련과의 통합논의로 변질되면서 결국 ‘찻잔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2002년 초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청와대비서실장으로 발탁된 문 의원은 또다시 정계개편을 시도할 수 있는 호기를 잡게 됐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상황도 DJ정부때와 비슷했다. 노 대통령이 동교동계와 친분이 두터운 문 의원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배경에는 문 의원의 이러한 정계개편 구상 등 남다른 전략전술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분석됐다.하지만 문 의원은 취임초 정계개편과 관련해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절대 시도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의 공언대로 아직까지 ‘의원 빼가기식’의 정계개편은 시도되지 않았다.대신 개혁신당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면서 결국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이라는 새로운 정치권 재편이 이뤄졌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태동하는 과정에 노심(盧心)이 반영됐고, 그 노심 이면에는 문 의원의 구상도 어느 정도 투영됐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았다. 정치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기본 노선이 노 대통령이나 문 의원이 구상하고 있는 정국구상안과 상통하는 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 의원이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일부 정치권의 시각은 바로 ‘정계개편 귀재’라는 문 의원의 명성에서 기인한다.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친정인 민주당 분당에 관여했다면 그 대안도 어느 정도 마련해 놨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그 대안은 다름아닌 총선 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다시 합치는 이른바 ‘통합론’. 실제로 민주당 분당이후 정치권 주변에선 두 당이 언젠가는 다시 합칠 것이란 통합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비록 대선자금수사와 정치인 사정, 탄핵정국 등 극한 대치상황이 지속되면서 양 당의 앙금의 골이 깊게 파이고 있는게 현실이지만 더 이상의 출혈은 공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문 의원을 해결사로 내세운 배경이 됐을 것이란 시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특히 여권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미 의원직을 상실했거나 상실 위기에 놓인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과반 의석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민주당과의 관계복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코 앞으로 다가온 4월 재보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최근 불거진 민주당 인사 입각 제의 파문은 다소 무리수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고육책을 쓸 수밖에 없는 여권의 어려운 정치현실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한편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권이 정계개편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시켰다면 민주당과 통합론은 그 시작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과의 연정 내지는 통합이 성사된다면 그 이후에는 한나라당내 개혁세력과 무소속 의원 등을 망라한 진보vs보수로 대변되는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이러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할 적임자는 바로 문 의원이라는 게 이들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문 의원은 아직까지 당권 도전 의사를 직접 표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권이 처해 있는 작금의 어려운 정치상황을 문 의원이 외면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여기에 문 의원이 구상하고 있는 정계개편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당권접수는 그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문 의원. 그가 그리고 있는 정계개편 구상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또 통합론 등 정계개편론이 수면위로 부상한 정국상황에서 그가 어떤 정치력과 용인술을 보여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