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문재인·안철수 ‘3대 덫’에 빠지다
‘비주류’, ‘노무현’, ‘새정치’ 선명성 대결 심화
2013-08-12 홍준철 기자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야권 리더 3인방이 한 여름밤 폭염속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5·4전당대회에서 난파선을 구하겠다고 나선 김한길호가 4개월이 다 돼 가지만 본전싸움만 한창이다. 지난 대선에서 역대 대통령중 가장 많은 표를 받고서도 패배한 문재인 의원은 NLL 늪에 빠져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새정치를 보여주겠다’며 국회에 입성한 지 4개월 된 안철수 의원 역시 ‘광’을 잡고서도 좌고우면하다 패만 노출하고 점수를 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야권의 대표적인 리더로 알려진 3인방이 선명성이라는 덫에 빠져 삼복더위속에 ‘청량제’를 바라는 국민들을 더 후덥지게 만들고 있다.
- 민주·문재인, “등 떠밀려 나왔지만...본전 생각뿐”
- 안철수, “광(光) 쥐고 패만 까이고...양비론 정치만”
당내 자중지란이 벌어지고 당 쇄신도 정국 주도권도 못가져가면서 스텝이 꼬이길 시작했다. 비주류로서 당내 설움을 받는 사이 바깥에서는 안철수가 보이질 않게 압박했다. 당 지지율이 안철수 신당에 절반에도 못 미치고 호남에서 지지율이 벌어지면서 애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민주당 전통적 기반인 호남 출신이 전무한 비주류 지도부를 압박하기엔 충분했다.
‘갈길바쁜’ 김한길 ‘스텝꼬인’ 문재인
급기야 김한길 대표는 최후의 카드로 국정원 사건을 두고 장외 투쟁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 지도부가 앞장선 모습이지만 당안팎에서는 범친노 강경파에 밀려 받은 ‘장외투쟁 선언’이라는 점에서 등떠밀려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수는 없었다. 특히 집권 여당에게 NLL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장외투쟁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받으면서 시작부터 동력이 떨어졌다.
그나마 김 대표로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야당으로서 선명성 투쟁에 뒤늦게나마 뛰어들어 지지층 결집 효과 정도다. 문제는 처음부터 김한길호가 자발적으로 장외투쟁에 나선 게 아니라는 점에서 양날의 칼처럼 위험 요소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진행중인 국정조사가 국민들 기대에 못미치거나 청와대 회담이 무산될 경우 역풍이 불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국정원 국정조사 관련 핵심 증인인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청장이 불참할 경우 ‘하나마나’한 국정조사로 전락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박근혜 대통령과 양자 내지 단독 회담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실적인 안이 3자 회담(대통령 여야 대표)이지만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요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여야 주도의 국정원 개혁 3가지 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럴 경우 김한길 지도부는 당장 당내 비노 온건파로부터 “장외투쟁으로 얻은 게 뭐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결국 장외투쟁은 김한길 지도부로선 ‘본전 싸움’이지 ‘플러스 알파’가 없다는 점에서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대목이다.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역시 갑갑하기는 매한가지다. 문 의원의 경우에는 대선 패배에 대한 무한 책임을 약속했지만 가시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문 의원은 정치적 칩거를 마치고 국정원 국정조사와 NLL 대화록 유출 파문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민주당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7월22일 ‘대화록 실종’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검찰발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폐기를 지시했다’는 소식까지 외부로 전해지면서 문 의원과 친노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다줬다. 문 의원은 그동안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장했었기 때문이다. 당장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조차 ‘문재인 책임론’이 일었다.
책임론의 핵심은 문 의원이 굳이 정계 은퇴까지 거론하며 NLL 대화록 열람을 주장하면서 당초 핵심 사안이던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과 ‘대화록 사전 유출’ 의혹을 묻혀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행간에 숨은 의미는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가 어떻게 사초가 폐기됐는 지 아닌지를 모르고 정계은퇴까지 언급할 수 있었느냐는 질책도 포함돼 있다. 여당은 대화록 실종사건이후 문 의원과 친노 진영을 향해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국 반전에 성공했다. 문 의원의 한번 전략적 판단 잘못이 민주당에겐 대형 악재를 새누리당에게는 대형 호재를 안겨 준 셈이 됐다.
문재인 ‘노무현 트라우마’ 도 지나쳐
민주당 비주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도 지적됐던 것인데 문 의원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노무현이다. 노무현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최고의 선으로 알고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다”며 “여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만 하면 바로 발끈하는 데 그것으로 인해 잃는 게 너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문 의원이 NLL 대화록 관련 스텝만 꼬이지 않았다면 국정원 국정조사 사건이나 NLL 사건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당장 문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관련 장외투쟁에 얼굴을 내밀 수가 없게 된 것도 NLL 발언록과 무관치 않다. 문 의원이 오버하지 않았더라면 국정원 사건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장외투쟁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NLL 역풍을 받은 이후 문 의원은 정치적 운신의 폭이 확 줄어버렸다. 문 의원이 장외투쟁에 나설 경우 여당은 당장 NLL 폐기 의혹에 박근혜 후보와 대권을 두고 경쟁했다는 점에서 문 의원을 두고 ‘대선불복’이라는 낙인을 찍을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문 의원은 NLL 발언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문 의원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언론 공개 노출이나 장외투쟁 대신 친노 세력 결집을 위해 트위터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문 의원은 최근에도 박 대통령이 6일 국무회의에서 ‘사초 실종’을 두고 처음으로 “사초 증발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고 언급하자 당일 밤 트위터를 통해 “북방한계선 논란의 본질은 안보를 대선공작과 정치공작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맞받아쳐 재차 민주당내에서 우려감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문 의원의 노무현 트라우마는 향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계속 나타날 전망이다.
민주당 김한길호와 문재인 의원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갑갑할 수밖에 없는 인사가 안철수 의원이다. 김한길 대표가 비주류라는 덫에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이라는 덫에 빠져 있다면 안 의원은 ‘새정치’라는 덫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안철수 “새정치란...”
안철수 의원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새정치’에 대한 일단의 심경을 밝혔다. 안 의원은 “새정치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싸우지 말고 막말하지 말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말라는 게 국민들의 요청”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분들을 대변하고 민생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은 안 의원이 말하는 새정치에 대해 체감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안철수 새정치는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 의원의 존재감이 대선전보다 점점 떨어지고 정국의 중심에서 비껴 있다는 점에서 한계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특유의 ‘양비론 정치’를 통해 여야 중도 세력을 껴안기 위한 행보가 계속되고 있지만 대안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실망하는 국민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곧 여론조사에서 ‘신무당층’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안 의원도 이런 정치적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7일에는 안 의원은 작심하고 현안에 대해 조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일단 안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 국면에 대해 “여당과 정부는 책임을 흐리는 일을 하고 있고 야당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장외투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현 국면에 대해 비판의식과 함께 책임감도 든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그는 “국정원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여당과 정부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야당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양쪽을 싸잡아 공격했다. 안 의원은 “사태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와 선거 과정에서의 ‘NLL 대화록’ 유출 문제 등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태 반복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마무리를 졌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의 회담 형식관련해선 “박 대통령이 5자 회담을 역제안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3자 회담이 적당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안 의원이 이런 태도에 ‘훈수두기 전에 여의도에 대해 더 공부하라’(9일 홍문종 의원)고 맞받아쳤다.
친노·전통지지 중도 3인 선명성 대결
반면 민주당 한 관계자는 9일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정국에 중심이 없어 존재감이 약화되는 약점이 있지만 거꾸로 정쟁에서 벗어나 있어 자기만의 트레이드를 만들면 오히려 여야를 능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하지만 4개월이 지났는 데 안철수 정치 특유의 트레이드마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까지 보여주는 여야 양비론 정치로는 안철수 현상을 다시 재현할 수 없고 새정치 새로운 인물 영입 등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인사는 “안 의원이 사실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국정원 국정조사관련 시민들의 촛불시위를 시작할 때 먼저 치고 나갔더라면 여야는 현재보다 더 쪼그라들고 안 의원의 새정치도 시민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지만 안 의원이 안보 불안이라는 중도 보수층의 우려 때문에 주저한 것 같은데 국정원 사건이 국기문란 사건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게 아닌가 싶다”고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안 의원은 7일 장외투쟁 참여 여부에 대해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안 의원은 최근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연대를 제안했지만 안 의원측 송호창 의원은 “사안별 협력은 몰라도 연대는 답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색깔론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결국 김한길 당 대표는 민주당 전통지지세력을 문재인 의원은 친노 세력 그리고 안철수 의원은 여야 중도세력을 잡기위한 선명성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3인의 앞날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은게 정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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