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근저당 설정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재판 열리면 대부분 은행이 승소…왜

2013-08-05     김나영 기자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서민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의무적으로 냈던 근저당권 설정비용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러나 반환소송 재판이 열릴 때마다 승소한 것은 대부분 시중은행과 제2금융기관들로 지금까지 서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단 2건이다. 양측의 항소가 잇따르는 시점에서 최근 판례를 살펴보고 근저당 설정비를 둘러싼 시선들을 파악해봤다.

 

10년간 10조…200만명이 부당하게 낸 비용 어디로
상위법은 소비자 편이지만 승소율 낮은 이유는

근저당 설정비는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줄 때 대출자의 담보물에 대해 미리 근저당권을 설정하면서 발생하는 부대비용으로 인지세 등 행정수수료를 통틀어 가리킨다. 일례로 1억 원을 대출받을 경우 근저당 설정비로 따라붙는 비용은 도합 70만 원선이다.

예전에는 대출자가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돼 왔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08년 금융회사가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할 것을 금융기관에 권고하면서 양측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결국 공정위가 2011년 4월 승소하면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같은 해 7월부터 여신관련 약관을 개정한 표준약관을 시행 중이다. 이에 그간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했던 개인들이 뭉쳐 공동소송에 참여하는 형태로 대응 중이다.

앞서 금융소비자 490명이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 근저당 설정비 반환소송을 낸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금융소비자연맹, 한국소비자원 등을 중심으로 각각 1만5000여 명, 4만2000여 명 등 5만7000여 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1억당 70만 원…당연히 고객 부담?

공정위와 금소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한 소비자는 200만명가량이며 피해액은 약 10조 원으로 추산된다. 그마저도 현재는 소멸시효로 인해 하루에 30억 원씩 증발하는 상황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아파트를 담보로 3억 원을 대출받을 때 대출자가 부담한 금액의 총 합계는 평균 225만2000원이다. 여기에는 등록세 72만 원, 지방교육세 14만4000원, 법무사수수료 44만4000원, 등기신청수수료 9000원, 인지세 15만 원, 감정평가수수료 42만5000원, 국민주택채권손실액 36만 원이 포함돼 있다.

원래대로라면 대출자는 인지세 50%(7만5000원)와 국민주택채권손실액 36만 원을 더한 43만5000원만 내면 되는 것이었지만 추가적으로 181만7000원씩을 부당하게 떠맡은 셈이다. 간혹 설정비가 대출자의 몫이 되지 않은 경우 금융회사들은 대출금리를 0.2%포인트 가량 임의적으로 높여 부담을 전가시켰다.

하지만 지금까지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근저당 설정비 반환소송에서 서민들이 이긴 것은 단 2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월 법원은 장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75만 원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1월 이모씨가 한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70만 원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역시 이씨가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제2금융기관을 제외하고 은행만 들여다보면 승소율은 반으로 줄어든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은 물론 외국계은행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소송에서 은행들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난 4월 기준 은행들은 28건의 소송 중 27건에서 승소했으며 단 1건만 패소했다. 예외적으로 패소한 신한은행도 항소해 재심이 이어지는 상태다.

승소는 아직 2건…항소할수록 소비자 유리

이처럼 동일한 쟁점에 서 있는 소송 결과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계에서는 은행과 소비자간 설정비 부담에 관한 사전 합의가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꼽고 있다. 소비자가 승소한 사례의 경우 대출 서류 작성 시 누가 비용을 부담할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설정비 부담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도 일부 승소나 일부 패소로 나뉘었다.

그러나 항소를 통해 상급심으로 갈수록 소비자들은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전망이다. 법무법인 태산의 이양구 변호사는 “은행이 계약서를 따로 꾸려 고객에게 설정비를 전가했기 때문에 계약서상 불공정 약관은 무효라고 판결난 것”이라며 “상위법에는 설정비 부담 의무자가 은행이라고 명시돼 있는 만큼 상급심으로 가면 소비자들이 불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들은 대출 시 소비자들과 설정비에 대해 충분히 협의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 금융기관이 대출과 관련해 대출자보다 우월적인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근저당 설정비는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일 뿐 은행의 이익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 정책적으로는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한 것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사법적으로 이를 배상하면서까지 무효화할 수는 없다는 논리도 힘을 받고 있다. 게다가 10조 원에 이르는 근저당 설정비를 단기간에 배상하게 되면 은행권이 파산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흘러 나왔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설령 약관이 무효로 해석되는 경우에도 은행은 고객의 설정비 부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에 상응하는 금리 할인,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며 “은행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거나 고객이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어 설정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