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노무현 정상회담 대화록 증발 미스터리

안찾는 것인가? 못 찾는 것인가?

2013-07-22     박형남 기자

국가기록원 “대화록 보관하지 않고 있다” 파문
여야, 노무현·이명박 폐기설로 티격태격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대선 때부터 불거졌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마침내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동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놓고 공방전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했으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계기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갔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 녹취록’이 국가기록원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말 못 찾는 것인지, 아니면 안 찾는 것인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여야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폐기설, 이명박 전 대통령 폐기설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공방으로 접어든 형국이다. 대화록 행방 전말 및 노무현·이명박 폐기설이 나오는 배경을 살펴봤다.

NLL 논란으로 달궈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 또 다시 기름을 부은 것은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과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대화록을 보유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서부터다. 지난 18일 오후 긴급 소집된 국회 운영위에서 대화록 열람위원인 황 의원과 우 의원은 “국가기록원이 대화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실을 밝혔다”면서 대화록 부재를 공식 확인했다. 특히 대화록 작성의 기초자료인 녹음(음원) 파일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존재여부 놓고 공방
“없다” VS “못찾았다”

실제 황진하, 우윤근 의원을 포함한 여야 열람위원 10명은 지난 15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찾아 NLL 등 7개 검색어에 기초해 기록원 측이 선별한 자료 목록과 내용을 모두 훑어봤다. 그러나 대화록은 찾지 못했다.

또 국가기록원 박경국 원장도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대화록을 보관하지 않고 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가기록원에 넘긴 지정서고 목록에도 대화록이 없다”고 언급했다. 대화록 존재 여부와 더불어 국기를 뒤흔들만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핵뇌관으로 부상한 상태다.

특히 이번 파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청와대 메인 서버 하드디스크를 봉하마을로 가져간 전력을 연상시키며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실제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던 2008년 초 벌어졌던 ‘청와대 자료유출' 논란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며 전선확대를 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만약 대화록이 없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사초가 없어진 국기문란의 중대한 사태가 된다”고 밝혔다.

이미 청와대 기록물 유출 관련 소동이 한바탕 있었던 탓일까. 또다시 대화록이 증발된 것에 대한 공방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황진하 의원은 “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음성파일을 보관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15일에 (대화록이) 없음을 확인하고, 위원들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며 검색어를 추가로 제공하고 48시간 여유를 줬다”며 “이틀 후인 어제(17일) 추가검색결과까지 확인했으나 여전히 ‘해당 문건 자료를 못 찾았다, 국가기록원은 그런 문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강력 반발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분명 대화록을 넘겼고 아직 못 찾았을 뿐이라는 게 주된 골자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민주당 위원 전원은 ‘현재까지 찾지 못한 것’이 옳은 대답”이라며 “(국가기록원이) 신도 아닌데 모든 방법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없음을 확인한다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질책했다”고 말했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화사업본부장도 “(기록물을) 넘긴 것은 사실이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데 기록원에 안 줬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청와대 기록프로그램 자체를 넘겼는데 기록원이 그 틀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쪼개서 문건별로 보관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최고 보안 등급인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이어서 기록물 검색을 해도 본문이나 목록 검색이 안돼 아직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폐기한 이지원 프로그램을 복원하면 특정 기간별로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검색 방식의 미숙함을 제기했다.

여, 노무현 정부 폐기설
야, 이명박 정부 폐기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서는 ‘노무현 정부 폐기설’을 주장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면서 “이틀에 걸쳐 국가기록원에서 철저히 검증을 했는데 찾지 못했다면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쪽에 비중을 두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나도 대통령실에서 근무를 해 봤지만 비밀문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 “1급 비밀은 더 적을 것이기 때문에 비밀분류가 정확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면 없는 쪽에 점수를 주겠다”고 덧붙였다.

대화록을 찾지 못하는 원인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권 의원은 “일부 보도에서 나온 바와 같이 노무현 정부에서 폐기하고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대화록이 없다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폐기하고 국가기록원에 넘겨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더 무게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국정원에서 공개한 내용과 같이 NLL 회의록이 돼 있다고 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굴욕적이고 저자세의 대통령 태도와 NLL을 포기하겠다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그런 것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리라는 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감추고자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지 아니하고 폐기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 폐기설을 주장, 야당을 압박했다.

주목할 점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9개월여 앞두고 정권인계 과정에서 주요 문건과 자료들을 은폐시키려 했다는 정황과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다는 부분이다.

실제 당시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화록 원본은 2개가 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풀어서 회의록 2개를 만들어 청와대와 국정원에 보관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2개의 원본을 제외한 일체의 사본은 폐기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이번 남재준 국정원장이 공개한 대화록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시 청와대에 있었다.

없어진 대화록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보관하던 원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 전 대통령이 아예 대화록을 파기했거나 퇴임 뒤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의 봉하 마을로 가져갔을 가능성이 여권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일련의 논란에 대해 노무현 정부 당시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e지원 시스템은 최종 대화록 문서를 생산하면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는 시스템”이라며 “최종문서를 e지원에 등록했다. 분명히 (전자문서로) 이관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봉하마을에선 열람만 가능할 뿐 수정 삭제는 하지 않았고 당시 이명박 정권의 검찰 수사에서도 이런 게 다 드러나 종결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즉 국가기록원에 넘겼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대화록을 넘겼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 폐기설로 반격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사실 이명박 정부는 과거에도 BBK서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고 민간사찰 문건, 자료를 다 없앴지 않느냐"며 "심지어 최근에도 국정원 댓글사건, 서울경찰청에서 수사하다가 그것을 검찰에서 내놓으라고 하니까 컴퓨터를 부숴버렸다. 이런 일을 잘하시는 분들이라 의심이 많이 간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러 가지 의심되는 게 많다"며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의거해서 (지정기록)담당과장을 5년 임기로 임명했는데 이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에 임명한 분을 2008년 3월에 해임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렇게 해 놓고 2010년 이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했다”며 “그 많고 많은 자리 중에 자리 하나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여러 가지를 놓고 볼 때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NLL포기 발언 등이 사실로 드러날 것을 노무현 정부가 우려해 폐기했을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 측 관계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법을 제정해서 수백만 개의 기록물을 남겼는데 만약 노 전 대통령이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다면 왜 국정원 것은 남겼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봤다"
국정원 보관용?

이 와중에 이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한 인터뷰에서 대화록을 봤다고 주장,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5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취임 후 대화록을 보고 분노했다는 말이 있다.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에 “격분하거나 화를 낸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격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안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내용은 국격이라고 하기에도 좀…”이라며 “(대화록에는) 한미 관계 얘기도 있고 남북 관계 얘기도 있다. 이제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서해 북방한계선) 문제는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취임하고 보니 ‘안 밝혀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보기에 밝혀지면 국민에게도 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밝힌 대화록이 국정원 보관본인지, 대통령기록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느 쪽이든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특히 노무현·이명박 정부 폐기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간 심상찮은 충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노무현 정부가 폐기했느냐,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폐기했느냐 그리고 대화록을 못 찾는 것인지, 안찾는 것인지 여부다.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