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협박한 국정원 직원 파면 왜

고유명사로 굳어진 삼성 비자금…더 있을까?

2013-07-15     김나영 기자

[일요서울ㅣ김나영 기자] 최근 경제민주화로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삼성 비자금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특히 비자금 관련 첩보로 삼성을 협박한 국가정보원 직원의 파면이 회자되면서 재계에서는 삼성 비자금이 추가적으로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한 삼성-CJ간 유산상속 분쟁을 기점으로 양 그룹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서로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냐는 신경전도 펼쳐지는 상황이다.

상장 전후 계열사 주식 사고팔기로 부 축적 의혹
재계 “비자금 없으면 대기업 아냐…방법 갖가지”

삼성 비자금 여부를 두고 관련 첩보를 받은 국정원 직원이 삼성을 협박해 파면된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함상훈)는 전직 국정원 6급 직원인 이모씨가 국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파면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씨가 삼성 비자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 3월 초등학교 후배로부터 관련 의혹을 담은 첩보를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이씨는 삼성 비자금에 대한 확신을 갖고 같은 해 4월 삼성전자의 한 전무를 만나 이를 거론하며 넌지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같은 해 6월 이씨가 삼성을 협박해 대가를 요구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이씨를 파면했다.

“국정원 위에 삼성 있다”
이씨는 파면 처분이 지나치다며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재판부는 “첩보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한 행위는 정보요원으로서 기본적이고 중대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20년 가까이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삼성 비자금 첩보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다 일자리를 완전히 잃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씨가 언급한 새로운 삼성 비자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다. 재계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삼성 비자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시각과 아울러 존재하더라도 그룹 차원보다는 개인적인 용도의 비자금일 것이라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비자금이 없으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아니다. 다만 드러나느냐 묻히느냐의 차이”라는 비아냥도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추가적인 삼성 비자금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조성했는지도 관심거리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그동안 삼성은 상장 직전의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오너 일가와 주요 임원이 사들이게 했다가 상장 후 보유하거나 되팔아 차익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부를 증식했다. 현재 삼성은 삼성물산 등 그룹 계열사의 현지법인을 통해 해외 기업의 지분을 사들였다가 상장 직전 제3자에게 되팔고 상장 후 같은 제3자를 통해 차익을 축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또한 국정원에서 본원 직원이 삼성을 협박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관심사다. 정부 모 부처 관계자는 “만약 다른 기업이었다면 국정원이 자체 감찰을 통해 파악했다고 해도 다소 설득력이 있겠지만 삼성의 경우 국정원 고위 관계자나 연계부처 윗선을 활용해 해당 직원을 감찰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국정원 위에 삼성 있다”는 말이 뼈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삼성-CJ간 폭로전 의혹도
지금까지 삼성 비자금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어질 정도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앞서 전직 삼성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차명계좌에 비자금 50여억 원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고 2007년 폭로했다. 이어진 삼성특검 결과 이건희 회장은 차명계좌 1199개를 활용한 주식 매매로 차익 5643억 원을 얻고 양도소득세 1128억 원을 포탈한 혐의로 2008년 불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관리해온 4조5000억 원대의 차명재산이 드러났지만 삼성특검은 해당 재산에 대해 불법 비자금이 아닌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는 면죄부를 줬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큰형이자 이재현 CJ 회장의 아버지인 이맹희씨가 “선대 회장의 차명주식은 공동재산”이라며 지난해 7100억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특검發 면죄부가 삼성-CJ간 희대의 유산상속 분쟁의 단초가 된 셈이다.

이후 날선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양 그룹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험악해졌다.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삼성과 CJ가 오르내렸는데 소송과 관련된 것 이외에도 양 그룹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들이 다수 있었다. 또 CJ가 지난 5월 대대적인 비자금 수사를 받을 때도 정부의 정권 초 대기업 길들이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설과 타 기업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흘린 것이라는 설이 동시에 나오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CJ가 서로 치명적인 부분에 대한 단서를 은밀히 배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향후 터져나올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상대방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드러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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