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수사 통해 본 대기업 비자금 조성

차명계좌, 페이퍼컴퍼니 미술품거래 등 꼭꼭 숨겨

2013-07-01     이범희 기자

임원 성과급은 곧 비자금…‘수사 표적’ 오너 공통점
검찰, 회장 개인 용도여부 증명 못해…수사 난항 겪어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기업 총수들의 검찰 소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에만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재계에서 이름만 대도 알만한 총수들이 검찰조사나 수의를 입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들의 혐의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횡령 또는 비자금 조성이다. 이들 뿐 아니라 기업과 관련한 인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 하면 대부분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이 재계에 퍼진 비자금 조성 루트를 추적해본다.


CJ의 검찰 수사로 기업들의 비자금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리베이트와 비자금은 독버섯처럼 퍼져있다는 게 재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달 25일 진행된 CJ의 검찰 조사에서도 강도 높게 추궁한 부분이 이 ‘돈’ 관련이다. 비자금 조성 혐의와 그 출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이재현 CJ회장이 그룹 임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고가 미술품을 ‘차명 거래’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그룹 임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미술품을 구입했으며 거래 과정에 동원한 자금이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명의자-소유자 확인과 자금 흐름을 파악 중이다. 이 회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그룹 임직원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장이 고가의 미술품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한 정황을 포착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앞서 재판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임원의 급여를 부풀려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았다. 이 수법은 재계의 단골수법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오리온그룹 또한 담철곤 회장과 부인 이화경 사장이 2011년 초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그해 6월 회사 돈 226억 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74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이 사장과 함께 최측근인 조경민 전략담당 사장, 김모 온미디어 전 대표 등을 통해 비자금 조성을 계획·지시·위임하고, 조성된 자금을 횡령·유용한 혐의다.
당시 검찰수사 기록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2009년 2월쯤 스포츠토토의 부장 이상 간부들을 모아놓고 “월급의 절반을 반환하라”고 지시했다. 조 전 사장은 이 같은 방법으로 오리온그룹 계열사 6곳의 임직원 22명의 급여와 성과급, 퇴직금 등 66억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고, 이 중 54억 원을 고급 와인과 롤렉스·까르띠에 등 명품시계, 그림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기소된 대기업 S사 회장 일가는 계열사 임원들에게 지급한 과도한 성과급이 검찰로부터 의혹을 샀다. 이 성과급은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지급된 후 지주회사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고 검찰은 이렇게 흘러들어간 139억5000만 원을 회장 일가가 조성한 비자금으로 간주해 600억 원대의 횡령금액에 포함시켰다.
지난해엔 직원들의 광고수당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중소기업중앙회 전 임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은 중소기업중앙회 전 본부장 성모(57)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성씨는 2007년 1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중앙회 주간소식지에 광고를 수주한 직원들의 성과급 2억여 원을 지급하지 않고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성씨는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당을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거액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비자금은 떼놓기 어려운 관계

신뢰가 두터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혹은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고전적인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9억 원의 비자금을 만들려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100억 원인 물건을 110억 원에 사준다. 하청기업은 10억 원 중 110억 원 거래로 인해 자신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가가치세를 떼고 9억 원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하청기업은 현금으로 빠져나간 9억 원을 가짜 영수증을 발행한 법인을 청산하거나 또 다른 계열사나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식으로 회계처리를 맞추게 된다. 
일부 기업들은 해외 법인이나 대리점을 통해 비자금을 만들어 특정 계좌로 넘겨주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게 이 경우에 속한다.
조세피난처는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 등 법에 대한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다. 해당국가에 의해서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 해외 비자금 조성의 방안으로 이용이 용이하다.
다시 말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위장거래, 위장가공, 과대경비 계상 등의 상행위를 해 세금을 탈루하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회사가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와 거래가 있는 것처럼 위장해 대금을 지급하거나 실제보다 과다하게 대금을 지급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해 소득에 대한 세금은 내지 않는 '역외탈세'를 실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한진해운·대한항공·OCI·SK증권·DSL그룹·효성·대림산업 등이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억울하다”는 입장을 강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의 용도는 무엇일까. 재계 한 전문가는 “그룹 지배권을 세습하기 위해 갖은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처리비용이거나 새 사업 인수로비자금 또는 회장의 개인용도로 사용된다”고 귀띔한다. 
그는 또한 “세금 절약과 비자금 조성의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뛰는 국세청에 위에 나는 재무담당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라며 “국내에서도 기업과 비자금은 떼놓기 어려운 관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