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채용의 신에게 묻다
스펙보다 실무능력 중시 ‘실전형’ 채용문화 확산
올 하반기 채용 시즌을 앞두고 대졸 이상의 고학력 백수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 ‘취업전쟁’이 보다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인재상도 ‘실전형 선호’로 변화되고 있어 청년 구직자들의 혼란이 더욱 커졌다. 일각에서는 ‘스펙(Specification·구직자 사이에서 학력, 학점, 자격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맞춰놨더니 이젠 스토리(story)를 내놓으라는 건가’하는 한탄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기업들의 인재상은 어떠할까. [일요서울]은 1000호를 맞아 청년 구직자들이 변화된 인재상에 맞춰 구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정리해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차별화된 자기소개서 작성
회사 핵심 가치 파악…우수 인재 되기 위한 준비 철저
차별화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인재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더 없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기는 것’처럼 해당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알면 그 만큼 취업 성공 확률도 높일 수 있다.
국내 상위권 기업들은 5년 전에 비해 도전정신과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기업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이전에는 기업들이 신기술 개발과 신사업 진출에 기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저성장과 내수침체 장기화를 겪으면서 강한 도전정신과 주인의식으로 신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인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한 인사담당자는 “최근 스펙 대신 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채용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만큼 청년 구직자들은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의 핵심가치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우수인재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갑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기업은 온실 속 화초같은 유약한 인재보다 기업이 원하는 핵심적 가치를 명확히 파악하는 인재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각 기업의 성격마다 중점을 두고 있는 사안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청년 구직자들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따라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해야 할 덕목의 차이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삼성·SK·현대·포스코 도전정신으로 판단
삼성의 대표브랜드 ‘삼성전자’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다양한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글로벌함을 갖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전문인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삼성은 2011년부터 ‘창의 플러스’ 전형을 도입해 필기시험 대신 전형 에세이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서류전형 후 심층면접을 통해 기술과 창의성을 검증받아야 최종 합격자 명단에 오를 수 있다.
또 다른 전형을 통해서는 일정 요건을 갖춘 지원자 모두에게 삼성 직무검사인 SSAT에 응시할 기회를 줬다. 이 때문에 지난 상반기 채용 기간에는 10만 명 이상의 응시자들이 시험을 치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SK그룹은 신뢰를 기반으로 도전과 혁신을 실천하는 글로벌한 인재를 원한다. 때문에 도전 정신을 가진 신입 사원들을 채용하기 위해 2년 연속 오디션 채용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올해 총 7500명의 채용 계획 중 10~15%를 ‘바이킹형 인재’로 선발할 예정이다. 전국 6개 도시를 순회하며 오디션을 보고 미션 수행 능력에 점수를 매겨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눈여겨 볼 것은 기본 정보를 제외하고 학교, 학점, 자격증 등의 스펙 기입란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파일을 SK 채용사이트를 통해 업로드 해야 한다. ‘사람’으로만 역량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로 ‘도전 정신’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지 정책·문화를 이해하고 고객과 함께 할 수 있으며 ‘고객’ 중심의 사고가 가능한 인재상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올 상반기부터 제2외국어, 주소, 증명사진 등 이력서의 일부 항목을 과감하게 없애고 블라인드 면접인 ‘5분 자기 PR’을 확대했다. 5분 자기 PR은 모든 정보가 가려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모의 면접이다. ‘스펙’보다 도전 정신 가득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포스코는 ‘창조인, 세계인, 실행인’을 포스코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인재로 판단하고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도전정신과 독창적인 대안을 제시할 창의력을 갖춘 이를 ‘창조인’으로 본다. 실행인은 전문적 기술 및 노하우와 건전한 사고, 윤리의식을 갖추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세계인은 비즈니스 매너, 어학,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역량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포스코는 GS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갖춘 인재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면접장에서 “철을 사용하지 않은 물건 중, 철로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예로 들고 타당한 이유를 말하세요”,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면?” 이란 질문을 통해 포스코의 인재상에 부합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판단하는 척도로 애국심까지 포함해 판단하고 있다. 또 한국사 자격 보유자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LG·KT·동부·CJ 탐구, 주인의식 중시
LG그룹은 ‘꿈·열정·혁신’을 갖춰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인재를 원한다. 때문에 계열사별로 다르나 외국어 구사 능력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앞서 구본무 회장은 ‘인재경영’을 강화하고자 올 초 신년사를 통해 “국적이나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사업에 필요한 인재가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KT는 창의적인 태도로 변화시켜나가는 전문 인재를 인재상으로 두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인 대안을 통해 업무에 신속하게 적용하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한 도전적인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주인의식으로 스스로를 주도하고 회사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지니고 주도적으로 업무에 임하며 결과에 책임 질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인재를 채용해 적극적인 협업과 고객감동을 지향하고 있다.
동부그룹이 찾는 인재상은 창의와 도전정신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다. 이러한 인재는 첫째, 과거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와 도전정신’으로 변화와 미래를 선도해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둘째로는 세계 최고를 향한 진취적인 자세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셋째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업을 이끌 수 있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사람이며 마지막 요소인 넷째는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과 ‘신뢰를 형성하고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부는 우수인재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해 조직구성원 모두가 주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혈연·지연·학연을 배제해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사를 운용하고 있다. 또 능력과 업적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보상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CJ그룹은 ‘강유(强柔) 인재’, 즉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추고 그 속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인재를 원한다. 구체적으로는 CJ의 핵심가치인 ‘정직-열정-창의’를 실천하고 1등 마인드와 실행력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인재라 할 수 있다. 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창의력을 갖추고 있어야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CJ그룹의 인사 관계자는 “입사 시 고려해야 할 점은 그룹에서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며 “인재 선발 기준은 전공, 학점, 학벌로 대표되는 ‘스펙’이 아니라 ‘열정’과 ‘도전’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냐는 것이다”고 말했다.
제조·운송 ‘도전정신’ 금융·보험 ‘전문성’
취업전쟁, 앞으로는 더 치열한 전쟁 예고
대우인터·GS칼텍스 준법정신, 역사 의식 강조
‘준법정신과 도덕성을 갖춘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인재’, ‘국제적 비즈니스 감각과 2개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춘 무역전문가’ 등을 인재상으로 내세운 기업도 있다. 도덕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GS는 ‘열정, 창의, 도전’의 에너지로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며, 조직 가치에 기반해 선제적으로 행동하고 자원과 역량을 결집해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내세우고 있다.
최종 면접 때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직접 면접에 참가해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지원자를 합격시켜 왔다. 맞고 틀림을 판단하기보다 지원자의 태도와 자질, 대처능력 등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하반기 채용 면접장에서는 토익 점수가 평균보다 100점 가량 낮은 지원자를 상대로 “영어 점수가 낮은데 합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했고, “입사 때까지 남은 두 달여 동안 영어로만 말하고 생각해서 실력을 갖춰나가겠다”고 긍정적으로 자신감 있게 대답한 지원자를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재상은 ‘성실성, 협력성, 책임감’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혁신에 대한 적극성과 열정을 기반으로 성실성, 협력성, 책임감을 판단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인·적성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인성검사로 조직적응력을 판단, 적성검사로는 언어·수리·공간지각력·창의력 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4대 금융사 프로금융인 역점
금융권은 업무 특성 탓인지 여전히 전문성을 강조한다.
KB국민은행은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변화를 선도하며 고객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금융인’을 선호한다.
특히 ▲특출한 세일즈 역량 또는 성공스토리를 보유한 실전형 마케팅 인재 ▲창의적 사고와 혁신적 마인드를 보유한 창의적 인재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글로벌 마인드를 소유한 글로벌 인재 등이 지원하는 경우는 우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창의적 열정가’를 뽑고 있다. 무엇보다도 ‘완성형 인재’가 아닌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발전해 나가는 ‘성장형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우리은행 또한 고객행복, 미래도전, 정직신뢰, 인재제일 등 우리은행의 핵심가치와 직무역량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최고의 금융전문가’를 찾고 있다.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우리은행의 비전과 목표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육성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전문가 육성을 위해 직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금융연수원, KAIST 금융전문가 과정, 국내 MBA(국내 유수대학) 및 국외 MBA 과정에 대한 파견 및 학비지원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비전달성을 위한 전문역량과 리더십을 겸비한 리더다. 구체적으로는 무결성과 정신적 가치인 자주, 자율 및 진취를 바탕으로 행동가치인 성과리더십, 조직리더십, 혁신리더십을 시현하는 리더를 뜻한다.
비전달성을 위한 전문역량을 보유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전문지식과 능력을 겸비하여 본인 스스로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