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부는 ‘정규직 전환 바람’

훈풍일까? 검찰 조사 앞둔 여론 달래기일까?

2013-06-24     박시은 기자

CJ·신세계·SK 등 잇단 결정…노동계 환영
따가운 시선 뒤 사회적 순기능 기대감 높아

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열풍이 거세다. 이미 신세계·한화그룹·SK그룹·CJ제일제당·GS그룹 등이 정규직 전환 행렬에 동참했다. 지난 21일에는 두산그룹이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기업들이 리스크를 극복하는 새로운 모범답안으로 삼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들 기업 중 일부 총수가 사법 처리를 앞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이미지 쇄신용’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함께 제기된다. 그 이유를 알아본다.

CJ는 안팎으로 구설수에 올라 시끄러운 상황 탓에 정규직 전환 발표에 대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대기업 회장의 수사가 시작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언론 홍보-정권 말기의 선처’와 같은 방식이 공식처럼 고정화돼가는 양상을 보였던 터라 최근의 CJ행보도 이같은 수순을 밟기 위한 절차의 한 부분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재현 CJ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고 CJ해외 법인 임원들은 이미 검찰 소환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 시점에 CJ는 200억 원 가량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정규직 전환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룹 계열사인 CJ E&M 소유의 케이블 채널(CGV, OCN, XTM, 온스타일, Mnet, 바둑tv 등)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홍보하는 광고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당일 CJ 대리점주들은 CJ가 갑의 횡포를 일삼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를 제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때문에 CJ는 그룹 차원에서 총수에 대한 선처 호소와 여론 달래기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CJ가 5200명을 대상으로 내놓은 정규직 전환의 상세 내용은 ▲4대 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휴일 수당 지급 ▲본인희망 시점까지 근무 가능 ▲인증제도 교육 도입 ▲우수 직원 선발 시 2주간 해외 매장 및 현지 문화 체험기회 제공 ▲6개월 이상 근무 대학생 학자금 대출이자 전액 지원 ▲우수 직원 대상 100만원 학자금 지원 ▲3개월 근속 시 CJ상품권 지급, 일부매장 어학수당 지급으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가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이미 의무화된 상황이다.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를 지키지 않다가 혜택을 주는 것처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휴일 수당도 추가로 근무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됐다. 게다가 임금 지불과 관련된 부분은 언급되지 않아 진정성 있는 고용 대책이 아닌 빛 좋은 개살구란 생각을 들게 하고 있다.

또한 CJ푸드빌 관계 매장은 이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4대보험 가입, 1년 이상 근무 시 퇴직금을 지급해 왔기 때문에 ‘정규직’이란 이름 하나만 달게 됐을 뿐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다.

CJ 계열사 매장의 아르바이트생 A씨는 “대출이자 지원, 학자금 지원 부분을 제외하고 크게 달라진 사항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정규직 우대는 좋지만 시급이 달라지지 않는 한 크게 변화된 것을 체감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들에 대해서 만회해보려는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 B씨(21)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이 사회 전반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취업문이 더 좁아질까 걱정되기도 한다”며 “사실 이런 사업들을 벌이는 것이 정부 압박을 받아서인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는 아닌지도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에 CJ 측은 “이번 ‘정규직 전환’ 사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왔던 사업인데 이를 놓고 오해들이 많아 속이 탄다”면서 “원래 계획은 지난 달 1일 노동자의 날에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세부적인 실무 준비로 인해 발표가 연기됐고, 이 사업과는 별개로 그룹 이슈들이 터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을 땐 좋은 취지로 진행하는 사업도 하면 안된다는 말인지 열심히 준비한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정규직 동참을 선언한 다른 기업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4~5월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와 이마트의 불법 파견과 노조 사찰 등의 혐의 수사를 받은 직후 1만1000여 명들의 직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각 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행렬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세계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을 포함해 대리 이하 사원 급을 대상으로 사기 진작을 위한 복지혜택인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 사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또 한화그룹은 지난 1월 김승연 회장의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됐을 때 2000여명의 그룹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이 지난 5월 횡령 혐의로 구속됐을 때 비정규직 58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광고를 시행했던 것도 의혹을 사고 있는 CJ와 닮은꼴의 모습이다.

고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 호평

이처럼 대기업들의 ‘정규직 전환’ 발표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산, 고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잇따라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고 시행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시행한지 아직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원들 간의 소속감도 높아지고, 일의 효율성이 높아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특히 아직 대학에 가지 않은 자녀를 둔 직원들이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 등의 이유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본래의 직원들도, 전환된 직원들 모두 애사심이 한층 높아진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CJ 측 또한 “이재현 회장의 검찰 소환과는 무관하게 고용노동부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구체적인 근로계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