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전직 대통령들의 암울한 인연

퇴임 후 대부분 사법처리… 다음은 MB?

2013-06-17     이범희 기자


받을 길 없는 추징금…은닉 재산 환수로 ‘정의 실현’
역대 대통령 수난사 1위, 재산 빼돌려 비자금 조성 의혹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과 국세청의 악연(?)이 세삼 주목된다. 전두환·노태우·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국세청과의 악연을 이어갔다. 최근에도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대통령에 대한 세무조사가 한창이다. 국세청이 혈안이 돼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퇴임 후 칩거 중인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세무 행동 의혹도 조만간 알려지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 중 국세청과의 질긴 악연(?)이 이어지는 인물은 단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꼽는다.
전 전 대통령은 비자금 사건으로 1997년 대법원에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뒤 현재까지 533억 원만 냈고 1672억 원은 미납상태다. 한 때 29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십 수 년이 넘도록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 찾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최근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이 설립한 조세피난처 내역이 공개되면서 전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 찾기가 한창이다. 장남 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외 비밀계좌를 개설한 시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73억 원이 차남 재용 씨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때와 겹쳐 이 비밀계좌에 비자금이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재성 의원(남양주갑, 기재위)은 지난달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 업무보고 질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2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두고 있으며, 이 재산의 상당수가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이 변칙증여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재산은닉, 변칙증여, 해외재산도피 의혹 등 전 전 대통령은 탈세혐의에 대한 국세청의 제대로 된 세무조사를 조속히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검찰 역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에 대한 공소시효가 오는 10월 11일로 끝남에 따라 특별팀을 만들어 추징금 징수에 나섰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1원 이상 강제집행을 해야 공소시효가 3년 연장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거액의 추징금 납부를 미루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소유로 추정되는 금융자산이 최근 추가로 발견돼 국세청과 검찰이 확인 작업에 나섰다.

국세청이 지난해 초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 씨 회사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소제한 오로라씨에스(옛 미락냉동)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모두 9개 계좌로 총 30억 원대 규모의 자금을 관리해 온 정황을 포착했다.
A씨가 해당 기업으로부터 받던 연봉이 3900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검찰 또한 아들 재현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과 대구 동구 지묘동에 보유중인 부동산에 대해서도 취득과정에서 비자금이 쓰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매입 경위와 자금출처 등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유산을 둘러싼 의혹이 국세청 세무조사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해외에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을 숨겨놓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건네졌다’등 관련 루머가 끊이지 않고 정치권을 떠돌았다. 하지만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이뤄지지 않다가 2010년 2월 김 전 대통령의 유족이 국세청에 12억 6400만원 의 유산이 있다고 신고하자 그간 소문으로 떠돌던 액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의구심이 표출됐다. 평소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인사들도 신고한 재산이 너무 적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국세청이 그 해 3월 19일 김 전 대통령 유족의 상속 재산에 대한 검증 절차에 착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유족이 신고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재 김 전 대통령과 유족의 재산 조회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관례에 따라 전산조회가 마무리되면 이를 토대로 상속세 조사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전직 대통령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을 노린 정치적 목적의 표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민석 의원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대한민국 역사 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를 입증하는 동영상을 준비했다”고 밝힌 뒤 영상을 공개하며 “이는 2011년 3월 21일 피의자 신문조서로 안원구 전 국장의 일방적 주장이 아닌 객관적 자료이다. 국세청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동조자임이 밝혀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동영상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008년 한국·베트남 국세청장 만찬장에 안원구 전 국장이 참석 했는지 자체를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잠시 뒤에는 “안 국장이 베트남 청장과 대면하면서 인사하는 순간 제가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베트남 청장이 안원구 국장의 얼굴도 못 알아 봤습니다”고 거짓말을 하는 정황이 그대로 녹취돼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정축재 뿌리 뽑아야” 박 대통령 강조
전직 대통령과 국세청의 악연이 지속되자 누리꾼들은 부정축재로 명예를 실추당한 전직 대통령들이 거액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는 행태에 공분하고 있다.
아이디 @nanana*****의 이용자는 “(비자금이) 드러나면 압수해야 하는데 이놈의 나라는…"이라며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추징금 문제와 관련해 전 정부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해결하려 들고 있다”며 “과거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강한 어조로 성토에 나섰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어려운 사정의 국민이 작은 세금도 정직하게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고의적·상습적으로 세금을 포탈하는 등 사회를 어지럽혀 왔다”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외탈세 논란과 전직 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퇴임 후 칩거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목이 쏠린다. 아직까지 이 전 대통령과 국세청의 불미스런 소식은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최근 들어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급성장한 대기업에 대한 사정당국의 칼날이 매섭고 4대강 사업과 관련 세금탈루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는 기업이 늘고 있어 이 대통령을 옥죈다는 말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