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원세훈 로비 의혹 수사 막바지
MB 정부때 매출 6배↑…황보연 스캔들 터지나
검찰, 전직 임원 진술 확보…‘황 리스트’ 토대 계좌 추적
공공기관 발주 공사 하청 전문 작년 석연찮은 부도
[일요서울|이범희 기자]황보건설의 금품로비 의혹이 정·관계와 건설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황보연 전 대표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통해 대형 건설공사와 공공기관 공사들을 따낸 것으로 의심하고 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확보한 선물리스트인 이른바 ‘황 리스트’를 바탕으로 황 전 대표와 주변인물 간에 돈이 오간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계좌를 추적 중이다. 황 대표는 회사 돈 수 십 억 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법률상 횡령 등)로 지난 6일 새벽 구속 수감됐다.
황 전 대표의 구속과 관련해 검찰주변에선 특별한 게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건설 공사 수주과정에서의 특혜일 뿐 별다른 사안이 아닐 것이란 추측이었고, 원 전 원장과의 밀약관계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열린 뚜껑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황 전 대표가 정·관·재계 및 언론계 인사 300여 명에게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낸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리스트가 발견된 것이다. 이 리스트에는 황 전 대표가 원 전 원장에게 10여 차례에 걸쳐 순금과 명품 가방 등 수 천만 원에 이르는 선물을 보낸 기록이 남아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선물을 받은 사람 중에는 황보건설에 하청을 준 민간 건설사 K대표·유통업체 L대표·중앙 언론사·금융계 고위 간부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공직자도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자료를 분석 중이며 현재 수사 중인 사항이라 말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정치권도 이 자료 입수를 위해 움직였지만 입수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로비에 활용된 자금 일부가 황 전 대표가 분식회계를 통해 조성한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고, 원 전 국장원장 외 다른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알려진다.
1977년 설립된 황보건설은 MB정부 첫 해인 2008년까지만 해도 자본금 19억 원에 매출액 63억 원, 도급순위 490위 대의 중소건설사였다. 그러나 2009년 매출액은 1년 만에 3배가 넘는 207억 원으로 치솟았다. 이 해는 황 전 대표의 금품 로비 대상으로 의심받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해다.
황보건설은 2010년과 2011년에도 매출액이 각각 395억 원과 388억 원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MB정부 들어 매출액이 과거의 6배로 뛴 것이다. 같은 기간 대형건설사들이 국내건설경기 침체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것과는 상충되는 모습이다.
황보건설은 지난해 5월 돌연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부도를 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새 정부 들어 수사를 받을 것을 대비해 ‘위장 부도’를 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건설경기 침체의 어려움에도 성장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황보건설이 수주한 공사 내역을 들여다 본 검찰 역시 부도에 대한 의문을 품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수사 초점은…
황보건설은 MB정권 하에서 주로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공사의 하청을 맡았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으로부터 173억 원 규모의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건설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그해 서울시가 발주한 문래고가차도 철거 공사도 맡았다.
2011년에는 해외로 진출해 캄보디아 프놈펜 56번국도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수주 금액은 2400만 달러(약 277억 원)에 달했다. 정부가 총괄하는 유상원조 사업이었다.
현대건설의 하청을 받아 행정중심 복합 도시건설청에서 발주한 세종시~정안IC 도로 공사도 맡아 진행했다. 이외에도 홈플러스가 발주하는 사업 일체도 관장할 만큼 다수의 시공 이력을 가진 중견건설사였기에 부도는 석연찮다.
검찰은 또한 황 대표와 원 전 원장,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의 ‘3각 관계’도 주목한다. 황 대표는 원 전 원장과 김 전 사장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은 황 대표가 김 전 사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현대건설, 한국전력과 그 자회사가 발주한 각종 공사를 따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2010년 한국남부발전 이상호 대표(당시 기술본부장)가 두산중공업에 황보건설을 하청업체로 선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진술도 확보 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황 대표가 친분이 두터운 원 전 원장을 통해 이 대표에게 공사 수주를 청탁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각 공기업에 파견돼 있는 국정원 정보요원(IO)들이 수집한 동향과 비리는 공기업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기업 간부가 국정원장의 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구조다.
또한 시공사 입장에서는 발주처의 요청을 무시하기 어렵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는 관급공사를 발주하는 공기업을 ‘갑’으로 모셔야 하는데, 청탁을 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기선 두산중공업 사장과 이 대표를 불러 조사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외압’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과의 거래의혹도 제기된다. 이외에도 다수의 건설사와의 특혜설이 제기되고 있어 이번 황보건설 로비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물론, MB 정권의 대형 비리사건으로 확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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