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건설사 커넥션 “비자금·섹스·이권 숨어있다”
돈세탁 창구 역할 농후…건설 스캔들 비화 될까
명품·순금 수수 의혹…원세훈 개인비리 수사 급물살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개인비리 수사를 통해 흘러나오는 의혹의 중심에는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가 등장한다. 윤중천 중천산업개발 회장의 성접대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도 김학의 전 법무차관과 금융계·학계 인사 등이 거론된다. 특별한 사업적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검찰의 고위공직자 비자금 조성 수사가 있을 때마다 건설업자는 빠짐없이 등장해 그 이유에 의구심을 키운다. 일각에선 이들의 관계를 ‘돈’으로 설명한다. 돈이 많은 사람과 권력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설업 특성상 이권(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과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금세탁 창구로 건설업계만큼 용이한 구조가 형성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빗대어 ‘악어’와 ‘악어 새’로 비유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보통 100억 원짜리의 공사를 하면 10억 원의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10억 이란 숫자 자체도 의미가 없다. 생각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귀띔한다.
턴키공사 수주는 수주 단계부터가 비자금 조성이라고 한다. 수주원가를 산정할 때부터 이미 비자금의 조성 내역과 사용처도 함께 포함된다는 것이다. 시행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시행사를 많이 만들었다. 시행사들은 그동안 다져놓은 토지공사나 지자체 인맥들을 이용해 토지를 확보한 뒤 계약금의 10%만 내고 잔금은 시공사의 신용을 이용한다. 여기서 폭리의 커넥션이 형성된다. 시행사는 토지를 통해서 시공사는 시공 후 분양가 인상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 더욱이 회사를 작게 만들수록 탈세하기 쉽고 감사나 세무조사도 피할 수 있다. 설립과 폐업이 자유로워 3~5년마다 있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을 일도 없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지방단체장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용도변경이라든가 건설 실무에 관여하면서 건설업체나 주택업체에 혜택을 주고 그 대가로 정치자금을 수수한다. 이 때문에 건설브로커들은 주로 공무원들을 접대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설계변경과 분양공고 등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돈을 쓴다. 중간에 한번이라도 공사가 묶이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회계의 특성상 장부조작이 용이하고, 이중계약을 통한 원가 부풀리기 등이 가능하고, 사업현장별로 시공방식과 공급자재 등이 표준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제조업 등과 달리 검은 돈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언급했다.
검찰의 원 전 국정원장의 개인비리 수사에서도 이 같은 의혹이 잘 드러난다.
검찰은 황 전 대표가 원 전 원장이 취임한 2009년을 전후해 각종 대형 건설공사의 하청업체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분이 두터운 원 전 원장을 통해 원청업체들에 압력이나 청탁을 행사했는지를 확인 중이다.
특히 검찰은 2010년 7월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에서 황보건설이 하청업체로 선정된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당시 공사는 두산중공업과 대림산업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했으며 황보건설은 이 가운데 제2공구 본관 부지 토목공사의 하도급을 맡았다. 2공구 공사는 총 400억 원 규모이고 이 중 본관 부지 공사는 171억 원 규모였다.
검찰은 삼척그린파워발전소 1공구 공사때까지만 해도 하도급 업체 선정 방식이 최저가 입찰이었다가 2공구 공사부터 적격 심사로 바뀐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황 대표가 원 전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원 전 원장은 수주를 돕기 위해 남부발전 측에 압력을 행사해 입찰 방식 변경 등 편의를 봐준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 건설업자가 사업상 이권을 위해 사회 고위층에게 성접대 한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각종 이권을 대가로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업자 윤중천 중천산업개발 회장이 병원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수도권 모 병원 암센터 증축 공사를 따냈다는 증언이 나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해당 병원장은 윤 씨의 원주시 ‘별장 파티 참석자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여서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비자금 몸통과 창구는 건설비자금(?)
이처럼 일부 고위공직자를 향한 수사 때마다 사건의 실마리를 움켜쥐고 있는 핵심 인물로 건설업자(일명 브로커)들이 수사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공직자 비자금의 몸통과 창구는 건설 비자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도 이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불투명한 건설업계의 관행이 계속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분양가를 산정할 때 광고비의 1~2%를 간접비로 포함시키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 된지 오래”된 일이라며 “이 돈은 공사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주위 민원이 발생할 수 있고 산업재해·환경문제 등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관공서와 언론에 로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공원가와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명해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