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안철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 최장집 이사장
“ 양당제 부정적, 4~5개 경쟁체제가 좋다”
[일요서울 | 안은혜 기자] 지난달 22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 창립 계획이 발표됐다. 이 자리에서 ‘내일’의 이사장 자리에 최장집(70) 고려대 명예교수가 임명됐다.
최장집 이사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적극적인 연구를 해온 대한민국 진보적 정치학자이다. 그는 지난 대선 전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후원회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손학규 상임고문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의 고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최 이사장이 안-손 연대의 가교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 이사장이 지난달 25일 동아시아미래아카데미(동아시아미래재단 주최)의 첫 강의를 했다고 해서 [일요서울]이 밀착 취재했다.
“정당의 운동화, 운동의 정당화 반대”
“시민사회, 정당화나 권력추구 안돼”
최장집 이사장은 동아시아미래아카데미에서 주최한 ‘정당과 운동과의 관계’를 주제로 ‘시민운동적인 민주주의관에 대한 비판’과 ‘정당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했다. 이미 최 이사장은 안철수 신당창당을 겨냥한 듯 ‘노동중심의 진보정당론’을 제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강연은 현역 기초 의원, 정치 지망생, 손 고문 지지자 등을 상대로 이뤄졌다. 최 이사장은 강연에서 “우리 사회에는 ‘시민운동’, ‘시민사회’, ‘시민민주주의’ 등 ‘시민’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시민’은 민주주의의 중심적인 개념”이란 말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시민운동적인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특정형태의 관점이다. 시민운동적인 민주주의관에 대응하는 말은 정당 중심적인 민주주의관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두 가지는 경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강연 내용은 두 의미가 민주주의 실천에 있어 어떤 특징을 갖고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운동’과 ‘정당’은
상호보완의 관계 될 수 있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운동을 통해 이뤄졌다. 87년 6월 항쟁(1987년 6월 10일부터 6·29선언이 있기까지 약 20일 동안 계속된 민주화시위)이 민주주의 역사의 기초가 됐다. 민주주의가 된 계기가 운동이라는 것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최 이사장은 “정당과 운동은 배타적이지 않다. 운동과 정당이 상호보완의 관계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진행됐던 결과는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특징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끌었던 중심세력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였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군부독재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았다. 최 이사장은 “그들은 민주화를 이루고 퇴장했다. 운동은 평상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동원됐다가 민주화가 된 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되어 진보개혁 세력의 태동이 됐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매우 의식화 된 그들은 정당에 참여하는 집단,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집단,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그룹 등 여러 형태로 정치에 참여하는 필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그룹들이 특징적으로 ‘시민운동적인 민주주의관’을 갖는다.
‘시민운동적인 민주주의관’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 결단력을 갖는 민주주의다. 시민 민주주의는 과거 지역·직업 등 사회적 기반으로 조직되는 정당 정치의 고전적 형태와는 달리 SNS 등 뉴미디어를 통한 정치, 정당 활동을 한다. 정치참여의 수단으로 뉴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게 됨에 따라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시대상황에 따라 민주주의도 진화, 발전해 시민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게 됐다.
최 이사장은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영향력이 팽창·증대되어 권위주의적 국가로 인해 여전히 운동이 발생한다. 국가의 권력, 관료주의가 시민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강력해졌다. 국민의 정치참여 권리인 선거에 의해 정부가 구성됐어도 국가가 모든 사회 ·경제적 생활을 주재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권한행사하기 힘들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실상”이라고 역설했다.
"특수·부분이익 대변하는 정당이 나왔으면..."
나아가 최 이사장은 시민운동의 정치화와 관련 “정당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해 관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기능적으로 움직이게 돼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에 실망하고 불신을 갖게 됐다. 선거가 되풀이 되면서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 여론이 중요해졌다.
정당이 여론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정당이 주체성, 정체성을 상실한다. 변덕스러운 여론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정치 사이클이 짧아지고, 일관성 갖는 예측 가능한 정치가 어려워져 신뢰를 더 잃게 됐다. 시민운동 출신들이 정당에 들어와 정치·정당개혁의 움직임을 보이며 정당을 비판·공격하게 됐다. 특히 야당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개혁·진보세력에 의해 제도 개혁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의 특수·부분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 전체 이익을 주장하는 집단만 존재하면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며 특수·부분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민운동은 특정 목표를 비판하고 이슈를 제시할 수 있지만, 국가를 컨트롤하고 운영할 힘이 없다.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지속적인 조직과 제도화의 힘이다. 정당이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체계적· 대안적 정책프로그램을 개발해 여러 형태의 지지 집단과 연결하는 등 기능해야 한다. 정당과 중간적 자유 결사체의 발전이 없으면 국가만 발전하게 된다”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이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정당의 운동화, 운동의 정당화 현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정당화되거나 권력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구조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다당제 유지되려면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돼야
최 이사장은 강연자의 ‘양당체제가 시민권력을 키우고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정치학에서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양당제 체제가 맞다고 본다. 문제는 양당제는 시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부정적인 정당체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발전시킨 중요한 것이 언론 매체다. 정책개발과 리더십을 만들고, 지지기반을 넓히는 등의 정당 활동보다 언론 노출을 통해 개인 정치인이나 정당이 구심력을 갖지 못하고 흩어진다. 결과적으로 안일한 구조가 만들어져 국민들의 요구를 대표할 수 있는 체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양당제를 부정적으로 본다.
현재 지역적으로 경상도는 새누리당이 1당 체제를 갖고, 민주당은 호남지역에서 1당 체제를 갖는다. 4~5개정도의 정당으로 경쟁적인 체제를 만들어 이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문제는 분열될 때 이 제도가 야당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새누리당 하나로 대표되는데, 야당은 민주당, 진보정의당이 있고, 안철수 의원도 도전하고 있어 이런 구조로 대선 때 3자 경쟁구도가 되면 불리하다. 대통령제 하에 다당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양당제가 되면 양당이 우리사회 갈등을 대표하지 못한다. 양당제는 소수 정당을 억압해야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억압적인 정당체제가 되버릴 수 있어서다. 소수의 정당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다당제가 좋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단순다수제를 통한 대통령선거제도하에서는 끊임없이 다당제가 되고자하는 힘과 양당제를 추동하는 제도적 압력이 안정화되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