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가시 빼는 기업들 ⑤ - 동부

코드 맞추기 한창…농업 세계화의 꿈 접어

2013-06-03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손톱 밑 가시를 뽑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중소업종 품목 진출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더니 최근 들어서는 소상인들을 위해 모 회사가 가지고 있던 중소업종에 대한 사업철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일각에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며, 박근혜 정부 눈치 보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여전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선 “재계 맏형들이 나서서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대기업의 중소업종 진출의 끝이 보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중소업종에서 철수하는 대기업의 실태를 짚어본다. 이번호는 동부그룹(회장 김준기)이다

 농업계 반발…화옹간척지 토마토 재배 손 떼기로
 LED·게임 산업 철수…동종업계 눈치 보기 여전

동부그룹은 재계19위다. 2011 회계연도 기준 자산 규모가 42조9149억 원 대의 대기업 집단이다. 1969년 동부건설의 모태인 미륭건설을 시작으로 2011년 기준 56개 계열사 57개의 사업을 영위해 나아가고 있다. 김 회장의 부친은 정치인 김진만 선생(국회 부의장 역임)이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의 유년시절은 유복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치인의 길이 예고돼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대학시절 미국을 방문하면서 정치인보단 경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 회장은 당시 ‘전자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전자업계 미국 우수인재 유치단 일원으로 뽑혔다. 그는 그때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에너지는 바로 ‘기업’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당시 즐겨 읽던 유명 기업인, 경제학, 경영학자의 책은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했다.

창업 구상 당시 김 회장의 최대 관심사는 ‘관광’이었다. 미국 여행 당시 여러 대학과 전자업체를 방문하는 일정 틈틈이 둘러본 라스베이거스, 디즈니랜드는 김 회장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하지만 당장 창업에 필요한 사업자금을 확보하는 문제에서 벽에 부딪혔다. 부친은 대학에 재학 중인 젊은 아들이 사업하는 것 보다 유학을 갔다 와서 계속 공부하기를 바랐다. 결국 김 회장의 자금 지원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미 기업가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이 선 상태였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시작하는 사업이었기에 김 회장은 백방으로 뛰어 다니면서 친지들에게 자신의 사업구상과 계획을 밝히고 집요한 설득 작업에 나섰다. 결국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약 2500만 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어려움 끝에 1969년 1월 자본금 2500만 원과 직원 2명으로 오늘의 동부그룹을 있게 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하게 됐고 연세대학 공사를 계기로 동부건설은 외형 성장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으며 도급 순위 또한 일약 30위 이내로 도약하게 됐다.
이후에도 김 회장은 새로운 산업 분야에 진출하는 방안과 기존 사업 분야에서 부실회사를 인수하는 방안, 이 2가지 방안이 타개책이라고 판단하고 4대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무분별한 기업 확장을 지양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전략적·계획적인 사업복합화에 주력함으로써 동부를 그룹화 했다.

1983년에는 미국 몬산토사와 국내 최초로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 제조회사인 실트론을 합작 설립했다. 때마침 정부가 30년 동안 문을 걸어 놓았던 금융시장을 개방하자 신규 허가를 받아 동부투자금융(현 동부증권)을 세우고 손해보험업(현 동부화재)에 진출했다. 또한 미국 보험사 애트나와 합작으로 동부생명을 설립했다.
또 여객운송업만을 하던 동부고속에 물류·하역·창고 업종 회사들을 합병시켜 육상운송전문 종합운송회사인 동부익스프레스로 키웠다.
합금철·선재사업의 동부메탈, 냉연강판의 동부제강(현 동부제철), 비료농약의 동부한농(현 동부하이텍 농업 부문)등 중화학공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설립해 고부가가치 선진기술산업인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에도 진출했다. 이러한 전략적·계획적 사업복합화를 통해 동부는 1990년에 20대 그룹으로 진입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동부는 1997년 말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퇴출기업 하나 없이 오히려 반도체·철강 분야의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저력을 발휘했다. 1969년 창업 첫해 9200만 원에 불과 했던 매출액은 2005년 10조 원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동반성장 요구에 부응 유리온실 사업 매각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초까진 또 다른 영역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농업의 대기업화였다.
동부그룹은 수출용 농·식품을 재배하게 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첨단유리온실을 완공했다. 김 회장의 꾸준한 농업 사랑이 보인 그룹 내 농업사업의 결실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다
동부 관계자는 “동부가 한국 농업 경쟁력 제고에 앞장서고 있는 데는 김 회장의 농업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이 크게 작용했다"며 “화옹 유리온실도 국내에서 첨단재배ㆍ유통 사업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치는 불운을 맞았다.

농민단체들은 동부의 사업진출 선언이후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농업에 뛰어들면 영세 농민들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동부그룹의 토마토사업 철수를 요구했다.
손재범 한농연 사무총장은 “대기업이 농산물 생산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농민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다”며 “동부가 토마토 생산 분야에서 철수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농민단체와 농협이 주축이 돼 동부제품 불매운동까지 전개하며 동부의 토마토사업 철수를 전방위로 압박해왔다.
결국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경기 화성 화옹 유리온실(농식품 수출전문단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지난 3월 26일 전격 발표했다. 유리온실을 완공한지 석 달여 만이다.
동부팜한농과 동부팜화옹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농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유리온실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동반성장위원회의 또 다른 결정이 동부의 발목을 잡았다.
동반위가 지난 4일 중기 적합업종을 선정하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합계가 5조원 이상 인 47개 재벌그룹)에 대해 백열등을 대체하는 벌브형 LED 램프와 인테리어 및 상업조명으로 많이 쓰이는 MR형 LED램프, PAR형 LED 램프 등 3개 품목에 한해서만 민간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형광등을 대체하는 제품인 직관형·평판형 LED 조명 등 7가지 품목에 대해서는 민간시장에서의 사업철수를 권고했다. 아울러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 관수(官需)시장에서는 10개 품목에 대해 완전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문에는 대기업은 민간시장에서 2012년 4월~2012년 12월말까지, 관수시장에서는 2012년 5월~2014년 12월말까지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동부라이텍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동부그룹도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동부그룹은 지난 3월 LED조명업체인 화우테크(지난해 매출 705억 원)를 인수해 동부라이텍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물론 동반위의 철수 권고는 강제성이 없고 대기업이 이행하지 않아도 제재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지만, 대기업들이 이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동반위가 대기업의 이행여부를 모니터링해서 결과를 발표하는 만큼,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