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골프의 힘’ 승부사 배상문 PGA 첫 승
시즌 초반 단순히 스코어 일뿐…경기내용 향상
美골프계 극찬 “꾸준히 톱10 오를 실력 갖춰”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최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한국인 선수의 우승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골프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그간 미국골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자골프와 달리 세계정상급선수들 틈바구니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남자골프로서는 이번 우승이 큰 자극제가 됐다. 한국인으로는 3번째 우승을 거머쥔 배상문 선수, 미국무대 진출 2년 만에 첫 정상에 오르면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5년 프로로 전향한 배상문 선수(27·캘러웨이)는 지난 20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포시즌 리조트 TPC(파70·7166야드)에서 열린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총상금 670만 달러)에서 마지막날 1타를 붙여 최종합계 13언더파 267타로 우승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에서 배상문은 최종일에 선두였던 키건 브래들리(27·미국)에게 1타 뒤진 상황에서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역전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그는 2011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우승자 브래들리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동반 플레이를 시작하는 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샷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3번 홀에서 첫 버디를 신고하며 단독 선두로 뛰어 오른 배상문은 5번 홀부터 잇따라 3개 홀 버디를 성공해 타수를 4타차로 벌렸다. 하지만 9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해 타수가 1타 차로 좁혀지는 위기를 맞았고 15번 홀에서 다시 1타를 잃으면서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그러나 배상문은 16번 홀에서 브래들리의 실수로 다시 1타차 리드를 잡자 17번 홀에서 승부수를 던져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다.
파3 짧은 홀인 17번 홀에서 그는 페어웨이를 거쳐 가는 안정적인 전략을 버리고 그린을 노리는 공격적인 티샷을 날렸다. 클럽을 떠난 공은 해저드를 간신히 넘기고 그린에 떨어졌다. 두 번째 샷에서 공을 컵 30cm 이내로 붙였고 파를 기록하며 통과했다. 반면 브래들리는 같은 홀에서 보기를 범해 2타차로 멀어졌다. 결국 배상문의 공격적인 샷이 이들의 승부를 갈랐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진출 2년 만에 정상에 올라
이번 우승으로 배상문은 향후 2년간 PGA 투어 시드를 확보하게 됐다. 내년에는 마스터스를 포함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 굵직한 대회도 뛸 수 있게 돼 안정적인 투어생활을 보장받게 됐다. 특히 이번 첫 승으로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승리를 향한 배상문의 활약이 기대된다.
배상문은 2005년 프로로 전향한 뒤 2006년부터 매년 한 차례 이상 씩 우승을 차지하며 가능성을 키워왔다. 2010년 SK텔레콤오픈 우승으로 한국무대를 마칠 때까지 우승 7회 준우승 4회를 차지했고 2007~2008년에는 2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0 일본프로골프(JPGA) 투어에 진출한 그는 데뷔 첫 해에만 3승을 챙기며 돋보였고 JPGA투어 최우수선수(MVP)의 영광도 함께 거며 쥐었다. 또 일본에서도 상금왕을 차지하며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무대를 점령했던 배상문에게도 PGA 투어의 벽은 높았다. 미국 진출 첫해인 2011년 퀄리파일 스쿨에서 11위로 졸업한 뒤 지난해 25개 대외에 출전했지만 데뷔 첫 해 우승이 없어 신인왕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2월 템파베이 챔피언십(옛 트랜지션스 챔피언십)에서 루크 도널드(36·잉글랜드)와 연장 승부를 겨루면서 우승에 대한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결국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그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중위권에 머무르거나 컷 탈락을 반복해야 했다. 올 시즌에도 앞선 13개 대회에서 노던 트러스트오픈 공동 8위가 최고성적이었고 두 차례 컷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특히 배상문의 공격적인 샷이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는 결과를 낳아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 1월 휴매너챌린지 1라운드에서 공동 3위로 출발했던 배상문은 3라운드를 거치면서 공동 18위로 떨어진 뒤 공동 14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어 열린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에서도 공동 4위를 유지하던 배상문은 최종일에 6타를 잃고 공동 33위로 추락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의 자신감은 남달랐다. 배상문의 승부사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낸 것.
미국 골프전문가들은 배상문에 대해 기대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골프닷컴은 “촉망받은 리키 파울러(25·미국·2012년 PGA 투어 웰스파고 챔피언십 우승)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런 선수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수석 칼럼니스트 게리 반 시클도 “배상문이 2011년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할 당시에도 강렬한 스윙과 훌륭한 퍼트로 관심을 끌었다”면서 “배상문은 앞으로 몇 년간 꾸준히 톱10에 오를 실력을 보일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골프매거진의 수석 편집자인 조 패소브 역시 “배상문은 아주 멋진 스윙과 훌륭한 템포를 가졌다. 그 속에서 감탄스러운 드라이브샷 거리(2라운드 최대 356야드의 기록)가 나온다”며 “그의 재능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대회 출전권 놓고 랭킹 올리기 주력
이번 우승으로 배상문은 미국프로골프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아직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나서는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해 갈 길이 바쁘다.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US오픈 역시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이 지난주 106위에서 64위로 껑충 뛰어 올랐지만 60위 안에 들어야만 US오픈 출전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에 우승의 기쁨도 잠시 미루고 지난 23일부터 미국 텍사스주 콜로니얼 골프장(파70·7204야드)에서 열린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버디5개를 잡았지만 더블보기 1개, 보기 2개로 1언더파 69타(공동 50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배상문은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쉽에서 4라운드 내내 60대 타수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여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다. 특히 중요한 퍼팅이 정교해지면서 배상문의 향후 경기결과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PGA 투어 홈페이지에 따르면 배상문은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20피트 이상 거리에서 26차례 퍼트를 시도해 6개를 성공시켰다. 이는 성공률 23.08%로 출전선수 전체 평균치인 6.5%를 크게 웃돌았다. 여기에 멘탈 훈련으로 위기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은 두둑한 배짱도 그의 무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00년 PGA투어에 진출해 8승을 기록하고 있는 최경주는 “상문이는 샷도 좋은데다 마인드가 강하다. 그런 선수가 우승을 한다”며 “내가 갖고 있는 PGA 투어 승수를 상문이가 깰 것 같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그는 “이제 젊은 선수들이 PGA투어에서 해 줘야 하는데 상문이가 신호탄을 쏘아올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우승 직후 배상문은 “우승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값진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때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며 “그게 빠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비로소 열매를 맺게 돼 기쁘다. 또 PGA에서 첫 우승이라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고 전해 그간의 고충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즌 초반의 부진은 단지 스코어였을 뿐”이라며 “경기 내용적인 측면에서 지난해보다 훨씬 향상된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우승을 향한 배상문의 끝없는 도전과 열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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