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영웅’ 김재엽, 노숙생활·자살시도 충격 고백

“어떤 아픔과 시련에도 석인(石人)처럼 꿋꿋이 이겨낼 겁니다”

2013-05-21     고동석 기자

유도계 퇴출 후 사업실패·노숙생활…자살 시도 끝에 재기
“체육계 권력 독식 구조 환골탈태해야”

[일요서울 | 고동석 기자] “나라를 위해 국위 선양했던 제가 유도계의 모순에 맞서 바른 소리 했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 전전해야 했습니다. 좌절과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됐어요. 이런 일들이 이제 한국 체육계 전반으로 확대될까 우려됩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싸워갈 겁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유도 60k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엽 선수. 이름 앞에 항상 ‘유도영웅’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그는 지금도 한국 유도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설로 남아 있다. 

유도계 퇴출 이후
겪어야 했던 고통

그런 그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노숙생활에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털어놓아 충격을 던져주었다. TV브라운관을 통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보여주었던 승승장구했던 그의 모습은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뇌리에 각인돼 있는 것과 달리 지금은 유도계에서 퇴출돼 동서울대학교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국가대표를 목표로 훈련 중인 유도 꿈나무들에게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이 돼버린 김재엽 교수는 1996년 한국 마사회에서 지도자로서 후배를 양성하던 시절 국가대표 선발평가전에서 판정시비로 유도계에서 퇴출됐다.

그해 유도협회는 애틀랜타 올림픽 파견 국가대표 최종 평가전에서 김재엽 코치가 마사회 소속 선수에 대한 심판 판정에 불복한 것이 유도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연금 지급까지 중단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런 중징계의 배경은 올림픽 최종평가전 76kg급에서 마사회 윤동식 선수가 라이벌 조인철(용인대)에게 판정패, 패자전으로 밀려나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매트 위에서 항의하다 소속 선수들을 기권시킨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 교수는 “올림픽은 4년을 준비하고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선수들을 선발해 내보내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회인데 용인대라는 특정학교가 유도계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보니 심판들까지 매수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일로 유도협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이후 김정행 대한체육회장(당시 유도협회장)과 사사건건 맞부딪히는 악연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유도계에서 잘려 나온 뒤로 동서울대에서 자리 잡기까지 김 교수는 유도 지도자의 길을 가기 위해 두드린 대학마다 김 회장의 입김에 밀려 문전박대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쌍용양회에서 지도자로 출발했다가 마사회 선수단이 창단되어 갔다가 편파판정을 제기한 배경으로 쫓겨났어요. 그런 뒤 동국대학교 교수 임용을 앞두고 보이지 않은 힘에 다시 좌절됐고, 순천향대학교 전임교수로 임용 받을 예정이었지만 김 회장과 친분이 있던 대학 총장이 거부해 밀려났죠. 이도저도 안되다 보니 벌어놓았던 돈으로 사업을 하다가 20억을 모두 날렸습니다.”

타의에 의해 유도계를 떠나야 했던 그는 방황과 사업실패, 이혼, 대인기피증, 노숙생활, 자살시도까지 겪어야 했다. 30대 후반에 무너지고 망가진 그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그의 어머니였다. “더 이상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아니다”며 다그친 어머니 덕분에 김 교수는 경호학을 공부했고 2010년 2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계의 미운오리새끼로 낙인 찍혀 그 영향권 아래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김재엽 죽이기’에도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씁쓸한 우리나라
체육계의 현주소

그가 유도 지도자의 길을 떠나 경호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것은 과거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대선기간 이회창 후보의 경호를 맡았던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김 교수는 2004년 동서울대 경호학과 겸임교수로 임용됐다가 2006년에 전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제가 대학교수로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동서울대 총장님이 유도계에서 퇴출된 과정을 알면서도 지켜봐준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 대학에 와서도 절 내쫓으라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유도계를 특정 대학 출신들이 모두 장악한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던 것이 그렇게도 큰 죄였는지 되묻고 싶어요. 어린 놈이 누구에게 대들어 하면서 지독히도 괴롭혔습니다. 주변에서 제가 옳고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만류하지만 언젠가는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서도 정부와 체육계 차원에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열변을 토했다. “유도인 김재엽이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 출신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 진정한 우리나라 체육계 발전을 위해 어릴 적부터 운동만 했던 엘리트 선수들이 육성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까지도 고려한 정책을 펴주길 바랍니다. 국가대표로 나라를 빛냈던 선수들이 은퇴한 뒤에 사회 적응도가 부족해 생활 형편이 어려운 선후배가 많이 있어요. 국위 선양의 대가가 최소한 살아 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어 체육계의 현실에 대해 한 숨 섞인 아쉬움과 함께 뼈 저린 일침을 토해냈다. “국가주의와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렸던 엘리트 선수들을 양성하는 코치들이 매질하고 가르쳐서 성적을 올려야 사는 구조가 우리 체육계의 현실이다 보니 대학이든 고등학교든 성적이 안 좋으면 팀이 해체돼요. 그렇다보니 공부보다는 오로지 운동에만 몰두하게 만들어가는 현실”이라며 “세계 대회에 출전해서 성적이 좋지 않다고 운동만 했던 선수들을 쫓아내고, 금메달을 따고 유명했던 선수들조차 바른 소리를 했다고 퇴출되는 것이 우리나라 체육계의 현주소”라며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엘리트 선수 출신
처우 개선 필요”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에 대한 김 교수의 안타까움은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 선수회(KANSTM)’로 옮겨갔다. 국가대표선수회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현역과 은퇴 선수들이 결성해 2011년 출범한 단체다. 국가대표선수회는 출범 이후 해마다 자선골프대회 등을 통해 걷어 들인 모금액으로 형편이 어려운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국가대표선수회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사단법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대표선수회의 답답한 현 상황을 김 교수가 고스란히 대변했다. “사단법인 등록이 가로막혀 있어요. 대한체육회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왜 국가대표선수회를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직원으로 임용하지 않아요. 모두 선수 출신이 아닌 그야말로 낙하산이나 다름없어요. 운동선수들이 뭘 안다고 하며 무시하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체육계 조직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견뎌내야 했던 피땀을 흘린 고통과 아픔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엘리트 출신 선수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체육계가 나아갈 발전과 개혁을 이야기 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바뀌어야 하고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김 교수에게 앞으로 어떤 인생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물었다. “대학 강단에서 뿌리를 내리고 체육인으로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 평생을 살아갈 겁니다. 내 삶의 목표는 ‘목인(木人)’이 아닌 ‘석인(石人)’ 되리라 다짐합니다. 나무는 비바람 불면 갈라지고 닳아 찢겨버리고 말지만 돌은 잘 다듬어 놓으면 비바람이 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 앞으로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어떤 아픔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오뚜기처럼 꿋꿋이 이겨낼 겁니다. 또 체육계를 위해 우리들의 바른 소리는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와 나눈 악수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과거 빛나던 시절 세계를 제패하고 유도계 간판스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 교수는 운동과 상관없이 권력과 조직에 씁쓸하게 휘둘린 한국 체육계의 또 다른 단면이자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의든 자의든 묵묵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의 풍파 속에서 그는 남은 인생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지키고 서있을 석인(石人)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재엽 교수 프로필

1983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금메달
1984  제23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유도 60kg 은메달
1985  세계유도월드컵 금메달
1986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도 금메달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유도 60kg 금메달
1987  세계선수권대회 유도 우승
1988  제24회 서울올림픽 유도 60kg 금메달
1994 한국 마사회 유도선수단 코치
2006  現 동서울대학교 경호학과 전임교수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