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 하차…왜
중앙회-농협금융 구조적 문제 “병났다”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신동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5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금융권 수장 교체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농협금융지주 수장의 중도사퇴는 신충식 현 NH농협은행장이 98일 만에 지주회장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로써 농협금융지주는 출범한 지 1년 2개월 만에 세 번째 수장을 뽑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새 수장이 오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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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금융그룹과 달리 ‘지주 위 중앙회’ 기형적 구조
허수아비 회장 공론화…전반적 제도 개선 이어질까
신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히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임하거나 연임을 포기한 금융지주사 회장이 네 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앞서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금융당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줄줄이 사퇴나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지난해 초 외환은행 인수 이후 일찌감찌 사퇴했으므로 이명박 정부 시절 부임한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그러나 신 회장의 사례는 금융당국과의 관계보다는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불거진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의 갈등이 컸던 것으로 보여 제도적인 개선까지 요구되는 실정이다.
인사ㆍ예산 모두 휘둘려
신 회장이 취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하는 배경에는 농협중앙회의 경영 간섭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농협이 지난해 3월 신용(금융)사업과 경제사업을 나누는 신경분리를 단행한 지 1년이 넘었어도 금융 부문은 여전히 중앙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탓이다.
대부분의 금융지주들은 은행을 중심으로 꾸려져 있어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이 부각되기 마련이지만 농협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은행이 주가 되는 것과 별개로 금융지주 위에 실질적으로 중앙회라는 지붕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당초 농협의 신경분리는 덩치를 줄여 각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중앙회는 여전히 농협금융지주 지분의 100%를 갖고 인사권 및 예산편성 등 모든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신경분리 이전에도 제왕적인 권한을 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금융권에서는 신경분리 이후 새 수장들이 생기면서 집중됐던 권력이 분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사실상 중앙회가 지주 위에 군림하는 형태가 되면서 최 회장의 영향력은 오히려 공고해졌다.
게다가 신 회장은 농협 내 서열에서 중앙회 전무 등에도 밀리는 ‘5인자’라는 비아냥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신 회장은 사실상 권한이 없는 이름뿐인 지주사 회장으로 전락한 데 대한 회의감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근본적인 법 상충 언제까지
이처럼 권한 없는 수장 자리가 생겨난 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농협금융지주는 금융지주회사법을 따르지만 농협중앙회는 농협법을 따라야 하는 현실이다.
금융지주회사법 상에는 금융지주가 자율적으로 이사회를 통해 회장의 성과를 평가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농협법에서는 중앙회가 자회사와 손자회사들까지도 지도ㆍ감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농협법이 금융지주회사법보다 상위법인 까닭에 신 회장에 대한 평가는 최 회장이 의장인 중앙회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 이뤄진다. 게다가 금융지주에서 관장해야 할 실무까지도 중앙회에서 관리하는 일이 잦아지며 농협금융지주는 실질적인 힘을 잃었다.
결국 신 회장은 사의를 표명한 이후 최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경영전략 수립, 인사, 예산, 조직 등에서 모두 부딪혔다”면서 “농림부 시각에서 금융을 다루려 하니 갈등이 발생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또한 신 회장은 “이는 개인 성격 문제라기보다는 법과 제도가 미비한 탓”이라며 “한쪽은 금융위원회, 다른 한쪽은 농림축산식품부라 법 개정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 틈바구니에서 경영하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옥상옥 논란
이로 인해 금융지주회사 제도 개선과 함께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도 개혁이 가능할지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금융위는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논의 중이다. 현재 금융그룹들 내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을 막기 위해 처음부터 권한을 나눠서 부여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각 수장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屋上屋)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옥상옥은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뜻으로 불필요하게 이중으로 존재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은행장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지주사 회장이 거수기로 내려앉는 것 역시 막을 수 있게 된다.
주목할 점은 농협의 경우 신 회장이 언급했던 것처럼 금융위뿐 아니라 농림부와의 공조가 있어야만 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사 구조가 개선되면 농협에도 영향을 미치기야 하겠지만 중앙회에 대한 통찰 없이는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침묵하는 사이에도 농협의 문제는 계속해서 곪고 있다”면서 “신동규 회장의 사퇴가 촉매로 작용해 농협의 지배구조 개선이 더 빠른 시일 내에 행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