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박근혜정부 정책 ⑦ 통상임금
상여금 포함 여부 노사 최대 쟁점 되나
[일요서울│박수진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첫 해외 방문지인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안고 온 ‘통상임금’ 문제가 연일 화제다. 지난 8일 미국 GM사의 댄 애커슨 회장이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향후 5년 동안 한국 지사에 80억 달러를 투자하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를 먼저 해결해 달라며 전제 조건을 달았던 것. 문제는 박 대통령이 합리적 해법을 찾겠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통상임금 문제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느냐를 두고 그동안 노·사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으로, 현재 일부는 소송 중에 있고 일부는 재판 결과가 나온 상황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의 해묵은 문제로 불리는 통사임금 문제가 박 정부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 지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봤다.
기본급 40%에 60%가 수당…기형적 임금체계
판례 놓고 정부·노동계 해석 엇갈려…소송 이어질까
통상임금이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급여’로 위험수당, 면허수당, 자격수당 등 각종 수당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 또한 현행 근로법 기준상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등은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지급하게 돼 있어 이것들을 산정할 때 대표적인 기준으로 작용되고 있다. 따라서 통상임금에 포함된 금액이 많을수록 연장근로, 야근근로, 휴일근로 등의 수당은 늘어나게 된다.
통상임금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데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임금체계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평균 월급 비중을 살펴보면 기본급은 전체 40%만 해당, 나머지는 각종 수당으로 채워져 있다. 즉 저임금을 보완하기 위해 각종 수당이란 명목 하에 장시간 노동이 진행됐던 것. 이에 따라 노동계는 이번 논란의 핵심인 통상임금에 상여금(보너스)을 포함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노사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 1항에 따르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소정(所定)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정의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정기적, 일률적’ 이라는 규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그동안 엇갈린 판결이 내려졌다.
2009년 4억4000여만 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대우자동차판매㈜ 근로자 10명은 1·2심에서 일부 승소하고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대법원은 대구 시외버스 업체인 ㈜금아리무진 노조가 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시간외 근무수당 등 각종 수당의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기점으로 현재 현대차, 기아차,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 쌍용차, 금호타이어, GS건설 등 각종 수당 비중이 높은 대기업 노조들이 통상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지난 9일 삼화고속 전·현직 근로자들이 낸 임금 등 청구 소송에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여금이 연 6회 정기적으로 지급되기는 했지만 근로자가 상여금 산정기간 동안 근무한 기간 등에 따라 지급 여부와 액수가 달라지므로 비고정적인 임금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상여금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했는지 여부를 두고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기업 부담 금액 최소 38조 원?
기업들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많은 인건비가 늘어나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최소 38조550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지난 8일 맥쿼리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자동차와 조선업체가 올해 소송에서 패소해 통상임금을 재조정할 경우 일시적으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올해 예상 이익의 20% 수준에 이른다.
이주원 맥쿼리증권 연구원은 “영구직 인력의 70%를 생산직 근로자로 보고 주당 20시간의 시간외 근무를 한다는 가정 하에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 등 4개 조선업체가 부담해야 할 일시적인 비용이 5610억 원”이라고 밝혔다.
반면 노동계는 당연히 받아야 할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데다 이미 대법원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만큼 법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한국의 기업들은 임금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편법적인 방식의 임금을 확대해 왔다. 이렇게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임금지급을 통해 기업들은 잔업, 특근수당, 퇴직금 등에서 막대한 임금 비용을 절감했고, 그만큼 노동자들은 손해를 봤다”며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상식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박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권은 지난 15일 최고경영자 포럼에서 “잠정적이라도 정기상여금만은 일단 통상임금에서 뺐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비난을 샀다. 이에 윤 장관은 다음 날 “법원의 판단을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개별 케이스를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라며 “엔저 때문에 우리 산업계가 매우 어렵고 충격을 받은 상태인 반면 일본은 엔저 효과를 등에 업고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 우리 산업계에서 가급적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통상임금 문제는 외국인투자기업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걸린 문제”라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노사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우선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근로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통상임금을 정하고 이에 맞게 근로 시간을 재변, 근로기준법 상 근로 시간과 임금문제를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