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그룹 회장 아들 폭행 사건 휘말린 내막
개에 물리고 맞았는데 개 주인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만 분통 “억울한 데 어떠한 대책도 없어”
가해자 獨대사관 직원 ‘공소권 없음’ 결론날 듯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아내가 공원을 산책하던 중 개(犬)에 물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개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아들은 개 주인에게 폭행까지 당해 경찰서까지 가야했다. 하지만 피의자로 지목된 이는 독일대사관 직원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같은 사건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알려진 것을 계기삼아 외교관 면책특권의 재조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흘러나왔다.
부영그룹 이 회장의 부인 나모씨(72)와 아들 이모씨(43)는 지난 9일 오후 6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남산공원 내 연못 주변을 산책 하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목줄이 풀린 개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나씨의 오른손을 물어댔다. 갑작스런 개의 위협에 아들 이씨는 지니고 있던 우산을 활용, 어머니를 공격하는 개를 간신히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그런데 상황이 종료된 후 나타난 개 주인 독일인 H씨는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이씨 모자를 밀쳐냈다. 이 과정에서 H씨는 이씨의 오른쪽 다리를 발로 걷어차고 손으로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에 이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H씨를 이태원파출소로 연행했다. 하지만 신분 확인 결과 H씨는 주한 독일대사관 소속 직원이었고 외교관 면책특권에 의해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 “더 이상 볼 것 없다. 그냥 끝이다”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면책특권이 있는 대사관 직원 신분이라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권이 없다는 것은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라며 “피해자인 이모씨 조차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있어 수사는 진전 없이 종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사관에서 내부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나씨 측 역시 언론에 회사 이름까지 거론되는 것에 난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피해자가 언론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사건의 중심은 부영그룹이 아닌 공공장소 안전관리체계와 면책특권에 의한 피해상황이 돼야한다”고 뜻을 밝혔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대기업 일가와 관련해 벌어졌기 때문에 억울함이라도 알려졌지만 일반인들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겠느냐”면서 “외교관 면책특권에 의한 피해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독일대사관 외부와 접촉 차단 ‘내부 조사 중’
주한 독일대사관 측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였다. 독일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우리 역시 매우 놀랐다. 베를린에 있는 본부와 논의 중에 있으며 내부조사를 진행한다는 입장 외에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현재 대사관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대기업 총수의 가족이 억울한 피해자로 등장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과 최근 들어 면책특권을 가진 이들의 범죄행위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 규제의 필요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여 향후 움직임을 주시하게 만들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독이 되고 있는 외교관 특권과 면제 |
최근 주재국에서 사적 범죄를 저지른 뒤 원활한 외교업무 수행을 위해 외교관들에게 주어진 면책권을 악용해 처벌을 받지 않는 사례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면책권은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할권이 면제되는 것을 뜻함에도 일부 외교관들은 면책권을 앞세워 아예 사건에서 빠져나가는 태토를 보여 한국 법망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와 관련 박병도 대한국제법학회 이사는 “외교관이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면제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들 역시 주재국의 법을 지켜야하는 의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 제재의 어려움에 대해 “주재국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본국의 법을 따르기 때문에 주재국 내에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방도가 없다”면서 “외교관들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추방하는 방법이 있지만 외교관계를 고려했을 때 쉽지가 않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 역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을 경우 본국으로 소환되는 방법이 거의 전부”라며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은 정부 차원의 문제로, 지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재국은 대사관을 통해 주의를 당부하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피해자 역시 범죄를 저지른 외교관의 본국까지 가서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 절차 강화와 비공식적 압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들은 “법적 제재가 힘든 외교관 관련 범죄는 비공식적 압박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박 이사 역시 이에 대해 “물론 한국의 경우 외교관 소양 교육을 매우 철저하게 준비한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이 미비한 교육만 받고 한국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면서 “예방을 위해 주재국에서는 아그레망 절차 중 외교관이 될 인물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하고 대사를 통한 소양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