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피플“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투신해야죠”
‘나눔이 주는 행복’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
“행복의 지름길은 나보다 더 귀한 남을 발견하는 것”
[일요서울ㅣ최은서 기자]지하철 동인천역 근처 화수동 골목길, 화수고개 마루에는 ‘민들레 타운’이 있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린 곳이다. 3평 남짓의 ‘민들레 국수’로 시작한 이곳은 10년 사이 민들레꿈 어린이 공부방, 민들레 어린이 밥집, 민들레 책둘레 도서관,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민들레 진료소, 민들레 가게, 민들레 필리핀 스콜라쉽,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 국수집으로 이뤄진 민들레 타운으로 성장했다. 이곳은 이웃의 작은 정성들이 모이고 모여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말아주고 싶어 민들레국수집 문을 열었다는 가톨릭 수사 출신인 서영남(60) 대표를 만나봤다.
수도권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에 위치한 ‘민들레 타운’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매일 수백 명의 사람이 이 곳에 와 배불리 식사하고 간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노숙인들이다. 노숙인들은 허기진 배로 이곳을 찾아 그릇 가득 밥과 반찬을 담아 배불리 먹고 문을 나선다.
이곳은 모든 것이 다 무료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서영남 대표가 국수집 준비를 하면서 4월 1일 만우절을 문 여는 날로 정한 것도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짓말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노숙인들이 밥을 더 원해 뷔페식 식사가 제공된다. 모든 것이 공짜지만 제공되는 식사는 풍성하다. 밑반찬만 예닐곱가지고 싱싱한 제철 야채들도 사시사철 제공된다.
노숙인이 VIP
서 대표는 “사람들을 줄 세워놓고 무료급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든 마음이 상하면 밥을 안 먹는데 배고픈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람대접’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손님들을 ‘VIP’라고 부른다. 다른 무료 급식소와는 달리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곳에서까지 줄서기 경쟁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다. 혹시라도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와 줄서는 날에는 맨 마지막에 선 사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서 대표는 사람은 충분히 배가 불러야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편안해져야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변화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생계가 위협을 받으면 딴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우선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자기 스스로 변할 수 있게끔 거들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나직이 이야기했다.
서 대표가 10년 전 문을 열면서 철칙으로 정한 것이 있다. 이 곳은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후원회 조직도 만들지 않는다. 또 예산확보를 위한 프로그램에 공모하지 않고 부자들의 생색내기 돈은 받지 않는다. 돈이 모자라서 문을 닫게 되더라도 자발적인 후원만 받겠다는 것이 서 대표의 생각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개인의 자발적인 나눔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서 대표는 “10여 년간 하다 보니 노숙인들이 우리 사회의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경쟁만이 살 길이고, 남을 제치고 선착순 일순위가 되어야만 살 수 있다. 노숙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순위가 되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다 외톨이가 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게을러서 노숙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가 먼저 살아야 한다가 착각하다 도태된 것이다. 요즘 사회는 자신이 잘 살기 위해 가장 멀리 있는 사람부터 쳐낸다.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친구, 이웃, 동료 마지막에는 가족까지도 잘라내고 스스로 외톨이가 된다”고 우려했다.
무소유 사랑
민들레국수집 인근에 있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서는 매일 오후 60~70명의 노숙인이 독후감발표회를 한다. 서 대표는 독후감을 발표한 사람에게는 3000원 씩 챙겨준다. 희망지원센터는 10시에 문을 열어 6시에 문을 닫는 노숙인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회원만 1900여 명에 달한다.
서 대표는 “사회적으로 핍박받은 사람들은 말을 잊게 된다. 소외되고 갇히고 억압받으면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스스로 말하게끔 훈련시켜주면 자기 힘으로 살아나기 시작한다. 독후감발표회를 할 때 보면 3000원은 욕심나는데 말은 잘 안 나와 얼굴이 빨갛게 익으면서 써 놓는 것을 더듬더듬 읽는 노숙인들이 많다. 그러다 차차 나아지는 것을 보면 흐믓한 마음이다”라고 빙긋이 웃었다.
이곳을 오가다 정착하고 싶어 하는 노숙인들은 ‘민들레 식구’가 된다. 민들레타운 인근에는 민들레 식구가 된 이들이 사는 집들이 곳곳에 있다. 모두 서 대표가 방을 얻어 준 것이다. 이들이 머무는 곳의 담벼락에는 노란 민들레 벽화 등으로 곱게 채색돼 있었다. 서 대표는 “주변에 따로따로 방 한 칸씩 얻어서 살 수 있도록 생활공간을 마련해줬다”고 밝혔다.
서 대표의 생활신조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이다. 이 글귀는 민들레국수집에도 걸려 있다. 그는 “나보다 더 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나보다 더 귀한 남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보다 귀한 남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게 된다. 부모가 사랑의 열매나 다름없는 자식이 위험에 빠지면 목숨 바쳐서라도 구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몇 번이나 거듭 강조했다. 또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도록 이웃을 발견해야 한다. 적이 아닌 동료로, 이웃으로 보여야 함께 살 수 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이기심이다. 남을 위하면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라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끝으로 “많을수록 좋은 돈이 자기자신이 없다면 과연 필요할까. 자기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면 돈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지만 남 욕심을 채워주려면 돈은 조금만 있어도 된다”며 “내가 존엄한 만큼 다른 사람도 존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 대표는 포스코청암상(봉사부문)을 수상해 상금 2억 원을 받았다.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을 갖기보다는 나누기에 바쁜 그는 상금을 어디에 쓸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놓았다. 그 중 1억 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 국수집’을 여는데 썼다. 남은 1억 원은 필리핀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하는 데 쓸 예정이다. 서 대표는 이렇듯 ‘무소유 사랑’을 직접 실천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일궈 우리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