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손톱 밑 가시 뽑는 기업들 ① - 삼성
삼성의 통 큰 결심 제빵시장 숨통
문어발 비판에 베이커리 철수…도미노 신호탄
철수한 사업 다른 대기업 인수로 홍역 치르기도
손톱 밑 가시를 뽑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거대자본을 앞세워 중소상권을 위협한다는 중소상인과 정부의 지적에 따라 대기업들이 모 회사가 보유한 중소업종 계열사에 대한 사업철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것도 2·3세들이 앞 다퉈 만들었던 제빵사업과 커피 사업 등에 대한 철수의사를 밝히면서 중소상권이 일부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여전히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이며, 박근혜 정부 눈치 보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만연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선 “재계 맏형들이 솔선수범해서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대기업의 중소업종 진출의 끝이 보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중소업종에서 철수하는 대기업의 전횡을 짚어본다. 이번호는 삼성편이다.
재계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처음 거론되는 곳이 ‘삼성’이다.
이미 매출규모면에서 302조9400억 원이 넘었다는 언론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계열사도 76곳에 이른다. 도시 곳곳에서 ‘삼성’의 로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삼성의 사업영역을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재계전반에 회자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중소업종 진출은 물론 소상공인들이 할만한 일에도 ‘삼성’이라는 기업 로고가 적히지 않은 것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소업종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됐던 베이커리 사업에도 삼성은 진출했었다. 그것도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직접 나서서 ‘아띠제’라는 명품 제과업체를 만들었다.
지난해 초에는 서울 중심으로 27개 매장이 운영됐고 2010년 24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호텔신라 전체 매출(1조 7000억 원)의 1.4%수준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매출 기록이다.
맛은 물론이고 고품격 인테리어 때문에 많은 매니아 층이 형성됐고 한동안 효자 사업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사장이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사업전반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장의 경영 리더십에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사례로도 꼽혔다.
그러나 빵집 사업에 대한 소상인들의 반발은 심했다. 타 대기업의 빵집 점령으로 힘든 상황에서 삼성, 그것도 오너 일가인 이 사장이 빵 사업에 진출한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반응들이었다.
한 제과제빵사는 “삼성이다. 그것도 오너일가가 직접 나서서 진출한 사업이 망하겠느냐. 무엇을 만들어도 엄청난 반향이 예고되는 곳이 삼성인데, 이런 거까지 진출한 것은 제빵인들의 목 숨 줄을 부여잡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생존권을 위협 당했다며 하소연하는 빵집 주인들이 늘어났다. 급기야 일부는 아띠제 빵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불매운동에 나서자는 움직임도 일부 포착됐다.
대부분의 소상인들은 “정부가 나서서 빵집 규제에 나서야 하는데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대기업 자녀가 남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이 일을 꼭 해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재계전반적인 분위기도 빵집에선 대기업이 철수하는 게 맞는다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급기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제수석실에 대기업 2~3세들의 제과업종 진출 실태를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상생경영 적극 실천
삼성은 이에 결단을 내렸고 대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빵집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아띠제 매각을 발표한 것이다.
호텔신라에 따르면 기존 커피전문점 ‘아띠제’를 운영하는 자회사 보나비의 사업을 완전 철수키로 하고 홈플러스 합작사인 아띠제블랑제리의 지분 19%를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호텔신라 측은 “철수 배경에 대해 대기업의 영세 자영업종 참여와 관련한 사회적 여론에 부응하고, 사회와의 상생경영을 적극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중기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삼성계열사의 (이번)제과제빵시장 철수가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에게도 귀감이 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분야로 확대, 소상공인 및 서민의 생활 안정과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라 보기 어려운 곳에 매각해 또 한번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아띠제 지분을 대한제분이 인수한 탓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상생 방안을 기조로 베이커리 사업을 매각하고 있지만, 마땅히 인수할 기업이 없다는 게 이들 기업의 입장”이라며 “이렇다 보니 대기업간 사업을 주고받는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외에도 삼성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MRO)사업 철수 의사도 밝혔다. 같은 해 8월 초의 일이다.
삼성은 2000년 12월 아이마켓코리아(이하 IMK)를 설립해 관련 사업을 10년 간 운영해 왔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각각 10.6%, 삼성전기 10%, 삼성중공업 7.2%, 삼성SDI 5.5% 등 주요 계열사들이 고루 지분을 나눠 갖고 있었다. IMK는 2011년 약 1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취급품목 40만개, IMK에 제품 공급하는 회사만도 1만1000여 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9개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IMK 지분 58.7%를 전량 매각했다.
중소업종으로 선정된 또 다른 제품 국내 LED조명 공공시장에서도 삼성은 철수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LED는 동반위의 중기적합업종 권고에 따라 조달청 나라장터, 지방자치제, 공공기관 제품 공급을 모두 중단키로 했다.
철수는 지난 4월부터 시작됐다. 동반위가 LED조명 일부를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자 삼성LED 등 대기업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막판 고심 끝에 철수방침을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중소기업과의 동반 성장 및 상생 협력에 부응하고, 비 핵심 사업 철수를 통한 경쟁력 강화 차원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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