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피플] ‘사랑의 밥상’ 차려내는 유효근-정춘란 부부

“배불리 먹고 환하게 웃는 어르신 모습이 행복”

2013-05-06     최은서 기자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가게에서는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사랑의 밥상’이 차려진다. 이 식당은 유효근(57)-정춘란(53) 부부가 운영하는 과메기집이다. 부부는 홀로된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점심을 대접해오고 있다. 무료식사는 금방 소문이 나 100~3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이들 부부의 ‘사랑’을 먹고 간다. 부부는 “힘없이 우리 가게를 찾아왔다 따뜻한 식사를 배불리 먹고 힘 있게 걸어 나가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며 ‘나눔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부부가 운영하는 과메기집은 매달 4째주 월요일이 되기 전 일요일이 항상 부산스럽다. 어르신들을 위한 ‘영양 만점’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서다. 100~300인 분 이상의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굽고, 찌고, 볶고, 튀기고, 끓이고 하다보면 하룻밤을 훌쩍 샌다. 음식을 준비하며 녹초가 되기 일쑤. 하지만 부부는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나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고.

따뜻하고 풍성한 밥상

부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영양소’와 ‘위생’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밥상은 5대 영양소가 고루고루 갖춰져 있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이 혹시라도 음식을 드시고 탈이 날까봐 ‘위생’에 각별히 챙긴다.

식단은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부드럽고 말랑해서 씹기 좋은 음식을 위주로 짠다. 식감이 부드럽고 항암효과와 면역 증진에 탁월하다는 버섯으로 만든 요리와 치매예방 효과가 있다는 카레는 부부의 ‘단골메뉴’다. 간단한 멸치볶음에도 부부는 정성을 쏟는다.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잔 멸치에 마늘쫑 혹은 꽈리고추를 함께 넣어 볶는다.

이렇게 정성을 쏟은 10가지가 넘는 반찬이 상에 오른다. 혹시나 서로 모르는 어르신들끼리 한 자리에 앉았다 불편함에 식사를 제대로 못하실까봐 한 사람당 밥과 반찬을 따로따로 놓아드린다. 이처럼 부부의 밥상은 작은 곳 하나하나에 정성과 배려가 듬뿍 담겨 있다.

부부가 이렇게 ‘정성’을 쏟은 밥상을 받은 어르신들은 ‘맛있다’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낸다. 무료식사가 있는 날이면 ‘음식 솜씨가 일품’이라며 오전 아침부터 가게를 찾아와 점심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계실 정도다. 몇 년 째 부부의 따뜻한 밥상을 받은 한 어르신은 “몇 년째 한결 같이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부부는 “무료식사 아이디어는 공무원인 큰 아들과 요리사인 작은 아들의 아이디어다. 가게 수익금의 10%라도 남을 도와주다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했다. ‘이웃을 위한 도움’이 이렇게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다보면 적어도 우리가 사는 동네만이라도 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무료식사가 순탄하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니 만큼 서로 간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사무소에 이야기해 어르신들을 모셔왔다. 점점 수가 늘어나 100명까지 늘어나더니 300명의 어르신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달은 어르신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못해 단 10명의 어르신만 가게를 찾아와 잔뜩 마련해 놓은 음식을 어떻게 해야하나하고 부부가 고민에 빠졌던 달도 있었다. 결국 부부는 어르신들께 직접 전화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부부는 “동사무소에 부탁해 동네 어르신 200여 명의 명단을 받아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직접 전화해 ‘꼭 식사하러 오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계속 전화를 드리니 1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매달 꼭 와주신다. 찾아와주실까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오셔서 정성껏 차린 식사를 드시는 모습을 보고선 기뻐서 눈물이 다 났다. 안 겪어보면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부부의 휴대전화에는 ‘어르신OOO’으로 저장된 연락처가 200여 개가 훌쩍 넘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어느 누구나의 인생 속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동시에 있다.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부는 남들보다 장사가 더 잘 되어서, 재산이 많아서 베푸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서점을 운영하며 졌던 빚을 아직도 갚아나가고 있다. 이때 진 빚으로 날마다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불안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무료식사를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중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부는 오히려 “무료 식사 때 500명의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이 있다. 인생관이 긍정적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더 좋아지지만, 인생관이 부정적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더 나빠진다. 부부는 이 말을 ‘무료식사’를 어르신들에게 베풀며 몸으로 깨우쳤다.

부부는 “서점운영을 하며 진 빚으로 생활이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그런데 내가 베풀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빚이 있지만 마음은 너무나 편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억눌려 있고 불만에 가득 차 있던 마음도 비울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부부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그 사람이 가진 진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는 “사랑은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사랑’과 ‘남에게 베풀줄 아는 마음가짐’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의 생활신조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람 인생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면 불만을 가질 시간이 없다. 오히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게 된다. ‘너 왜 이렇게 나한테 안 해줬어’라고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내가 먼저 나서서 하고 베풀게 된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