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200주년 기념 무대…베르디 오페라 풍성
2013-05-06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오페라의 왕'인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돈 카를로>와 <아이다>가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각각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관객과 만났다. 국립오페라단의 <돈 카를로>는 15년 만에, 서울시오페라단의 <아이다>는 25년 만에 공연이었다.
베르디 최고의 심리드라마 '돈 카를로'
아들의 연인을 정략적으로 부인으로 맞은 왕 필리포2세, 자신의 연인을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아들 돈 카를로, 그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왕비 엘리자베타, 왕자 곁을 배회하는 공녀 에볼리, 왕자의 충실한 벗 백작 로드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인물들은 거시적으로는 '교회와 국가'를, 미시적으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스페인 궁중실화를 희곡으로 쓴 독일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역사물에 픽션을 혼합한 <돈 카를로>는 1867년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초연 당시 5막의 그랜드 오페라였던 이 작품은 이후 4막으로 수정돼 이탈리아에서 재공연됐다. 이번 공연에는 3시간40분(인터미션 포함) 분량으로 개작된 4막 버전이 올랐다.
오페라의 1막은 돈 카를로가 할아버지 카를로 5세가 잠든 수도원을 찾아 자신의 연인이 어머니가 된 안타까운 심경을 노래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자신의 변치 않는 사랑을 고백하면서 2막을 연다. 3막에서는 필리포2세가 젊은 아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나이 많은 남편의 고독한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마지막 4막에서는 남편이 자신의 결백함을 믿어주지 않아 억울한 심경의 엘리자베타와 카를로 5세의 망령에 의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돈 카를로를 담았다.
1막 2장 수도원 안뜰, 2막 2장 대광장 화형식, 3막 1장 왕의 서재 장면은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40년 만에 국내 오페라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된 필리포 2세역의 베이스 강병운(65)의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유럽에서 인정받은 한국 성악가 1호인 그는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정식 단원으로 활동했다. 1988년엔 동양인 최초로 바그너 성지인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입성했다. 이후 필립포2세역만 200번 이상 맡아 배역에 완벽하게 동화됐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그에게 관심이 집중된 건 당연지사.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극의 절반 이상에 출연해 강렬한 연기로 좌중을 압도했다.
이번 작품에는 9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80명의 합창단 등 총 200명의 출연진이 동원됐다. 거대하고 웅장한 무대는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나의 공간으로 이뤄져 깔끔한 느낌이 드는 무대 배경은 공간의 깊이와 관점에 변화를 줘 새로운 공간감을 부여했다. 왕의 고독을 담아낸 서재와 종교재판이 열린 성모마리아 교회 앞 대광장 등 커다란 무대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가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의상도 원작의 배경인 16세기와 작곡 시대인 19세기를 혼재했다. 여기에 젊은 명장 페이트르 라초의 지휘, 베르디 오페라 연출의 거장 엘라이저 모신스키, 국내외 최고의 성악가들이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베르디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아이다'
오페라 <아이다>는 이집트 공주의 노예가 된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그리고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랑의 치정극으로 보기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광기’라는 주제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한 배경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드는 극단적인 마음, 즉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과 같은 광기를 스펙터클하게 표현했다.
<아이다>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에 비해 대중적으로 작곡됐기 때문에 음악으로 관객을 더 빨아들인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아 ‘이기고 돌아오리라’, 개선행진곡으로 알려진 대 합창곡 ‘이집트의 영광’, ‘죽음은 아름다운 것’ 등이 작품의 몰입을 더했다.
극은 ‘정결한 아이다’를 노래하는 라다메스의 등장으로 1막이 시작된다. 그는 신탁에 따라 에티오피아 군을 물리칠 이집트군의 총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공주 암네리스는 라다메스가 승리해 돌아오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만 곧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질투에 휩싸인다. 2막은 ‘개선행진곡’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영광’이라는 곡과 함께 승전한 라다메스의 개선행진을 화려하게 표현했다. 이 무대에는 지난 1월말부터 오디션을 통해 선출된 아마추어 시민합창단(50명)과 시민연기자(20명)가 함께했다. 3막에선 포로로 잡혀온 에티오피아 왕이자 아이다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가 등장한다. 그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관계를 이용해 이집트 군대의 기밀을 알아낸다. 마지막 4막은 기밀을 누설한 죄로 산 채로 돌무덤에 갇혀 죽는 사형선고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라다메스와 그런 그를 돌무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아이다,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채 서서히 죽어가며 막을 내린다. 여기에 2중창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 더해져 안타까운 사랑의 순애보를 표현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성악가들이 한데 모여 화제가 됐다. 특히 라다메스 역의 테너 신동원은 영국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아이다> ‘라다메스’역으로 데뷔했다. 이후에도 같은 역으로 공연을 거듭해 라다메스 역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아이다 역의 소프라노 임세경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에서 아이다 역을 10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세계 메이저 극장에서 <아이다>를 공연한 노련한 성악가들이 빚어낸 완벽의 하모니가 빛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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