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정용진, 파이시티로 10년째 땅뺏기 잇는다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새 주인은 누구
2013-05-06 김나영 기자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롯데와 신세계의 끝없는 부지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음 격전지는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이시티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파이시티 매각 공고가 이번 달 안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 매각에는 파이시티 법인을 비롯해 부지와 사업권이 모두 포함돼 있으며 공고 후에는 매각의향서를 접수하고 본입찰을 진행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올해 안에 롯데와 신세계 중 누가 웃을 수 있을지 그간의 부동산 싸움과 함께 짚어봤다.
전통 부동산 강자 롯데 vs 인천 뺏기고 정신 차린 신세계
파주 가로채기 이전에도 부산 텃밭 갈아엎은 앙금 남아
현재 실사 중인 파이시티에 눈독 들인 후보군에는 롯데와 신세계가 나란히 서 있다. 롯데는 그룹을 전면에 내세웠고 신세계는 STS개발과 손잡았다. 같은 유통업계 ‘빅3’인 현대백화점 역시 대우건설 등과 연합해 후보로 참여했다.
본래 파이시티 프로젝트는 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 9만6017㎡에 지하 6층, 지상 35층의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만 2조4000억 원에 이르는 대어급이다. 법인은 2011년부터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 있으며 각종 의혹에 휘말리면서 사업은 현재 잠정적 중단 상태다.
특히 파이시티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치른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로비 의혹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되면서부터다. 경영진이 인허가 과정에서 최 전 방통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수억 원대의 뇌물을 주고 청탁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대주단의 주관은행인 우리은행은 물론 단독으로 시공계약을 맺은 포스코건설 역시 사전 밀약설에 시달린 바 있다.
배수의 진… 양보는 없다
이러한 파이시티 매각에 롯데와 신세계가 뛰어든 것은 대단위 부지 확보가 대외적인 이유다. 서울의 관문 중 하나인 양재동은 강남권이라는 입지와 보금자리주택지구 입주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아직 번듯한 백화점 하나가 없다. 인근에 농협 하나로마트나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들은 존재하지만 거주민들의 다양한 구매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에 롯데와 신세계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대단위 부지를 선점해 ‘잠실 롯데타운’이나 ‘반포 신세계타운’에 버금가는 대규모 쇼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롯데는 그룹차원에서 파이시티를 직접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신세계는 컨소시엄에 참여해 건물을 임대하는 식의 방법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롯데와 신세계의 파이시티 출사표가 유독 돋보이는 데는 양측의 앙금 깊은 부동산 싸움이 자리한다. 표면상으로는 모두 사업전략상 매입일 뿐 감정적인 부분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한 부지 확보를 넘어선 자존심 싸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광주신세계는 지난달 29일 신세계 광주점이 자리한 전남 광주 금호터미널 내 백화점 부지와 건물 임대차 계약을 20년간 연장했다. 보증금은 기존 270억 원에서 5270억 원으로 늘어난 대신 연간 임차료를 없앤 일종의 전세 계약이다. 추가로 5000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까지 발행한 광주신세계는 적어도 2033년까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또한 신세계는 같은 달 1일 계열사인 센트럴시티를 통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신세계 강남점이 속한 센트럴시티 지분의 60%를 1조 원대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 데 이은 것이다. 센트럴시티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서로 연결돼 있어 이들 모두의 최대주주가 된 신세계는 반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누가 먼저 시작한 땅뺏기인가
통상적으로 자사 백화점이 입점한 부지의 매입이나 임대차 계약 연장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지만 그 대상이 신세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유통업계를 놀라게 한 롯데의 인천상륙작전에 인천점을 뺏긴 신세계가 일종의 학습효과를 거둔 셈이기 때문이다.
앞서 롯데는 지난해 9월 신세계 인천점이 자리한 인천종합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인천시로부터 8751억 원에 사들였다. 매각 계약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된 탓에 갑자기 뒷통수를 맞은 신세계는 지난 15년간 공들인 인천 상권을 한순간에 뺏기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2017년까지 매년 롯데에 건물 임대료를 꼬박꼬박 내다가 해당연도에 백화점을 통째로 고이 바쳐야 하는 굴욕에 치를 떨었다.
다급해진 신세계는 법원에 인천시와 롯데인천개발을 상대로 인천터미널 매매계약 이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난 3월 기각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5일 롯데가 인천ㆍ부천 지역 백화점 2곳을 매각하면 독점 문제에서 벗어나 신세계 인천점을 인수할 수 있다며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신이 난 롯데는 신세계가 터줏대감으로 자리했던 서울고속터미널과 광주터미널 매각에도 발을 담글 것처럼 행동했다. 이에 신세계는 강남점과 광주점마저 인천점처럼 뺏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매각이나 임대차 계약 연장에 힘쓴 것이다.
엎치락뒤치락…뒤통수 치기
주목할 점은 롯데가 흔히 말하는 상도의에 어긋난 일을 자행하면서까지 신세계의 신경을 긁는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면 롯데는 20년간 장기 임대차 계약까지 맺었던 경기도 파주의 아울렛 부지를 2009년 신세계가 매입하는 바람에 ‘닭 쫓던 개’가 된 적이 있다. 롯데의 계약이 공동 소유주의 동의를 받지 않은 임시 계약인 상태에서 임대가 매매로 전환되자 신세계가 서둘러 사들인 탓이다. 절치부심한 롯데는 신세계가 3월 파주에 아울렛을 열자 6km 떨어진 곳에 더 큰 규모의 아울렛을 개점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롯데는 2004년 부산 센텀시티 부지 입찰에서 신세계에 패배할 때부터 감정이 매우 상해 있었다. 전통적으로 롯데의 텃밭인 부산에 들어간 신세계는 롯데 부산점과 겨우 5m 떨어진 곳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열었다. 이렇게 탄생한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부산 지역을 뒤흔들며 롯데를 자극했다. 결국 롯데와 신세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의 등 뒤에서 뒤통수를 쳐 온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신세계의 오래된 땅뺏기 싸움이 파이시티에도 옮겨붙을 것”이라면서 “양재동 복합유통센터라는 커다란 파이를 두고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