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회장의 구멍 뚫린 지역 전략
현대백화점 광주점 철수… 왜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백화점 광주점이 오는 6월부터 NC백화점으로 간판을 바꿔단다. 옛 송원백화점이 현대백화점으로 바뀐 지 15년 만이다. 이로써 현대백화점은 전라도 지역 내 거점 점포가 한 곳도 없게 됐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지역 전략을 수정하면서까지 철수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전라도 포기한 현대백화점 이미지 손실 커질 것
백화점 매출 점포별 순위 굴욕에 아울렛 손대나
광주에서 유명한 송원백화점이 현대백화점으로 탈바꿈한 시기는 외환위기의 후폭풍이 밀려오던 1998년이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송원과 위탁운영 계약을 맺고 초기 10년간 운영했으며 2008년부터는 매년 1년씩 계약을 연장해왔다. 송원은 매입과 매출에서 명의를 유지하고 현대백화점은 일정 금액을 운영수수료로 받아 챙기는 형식이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백화점 광주점의 영업면적은 1만9428㎡로 타 백화점에 비해 부지가 작은 편이다. 게다가 가까운 광주역 근처 구도심인 신안동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점점 상권이 축소되면서 매출 면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관계사인 기아자동차 광주 직원들과 일부 자스민(현대백화점 VIP)들이 현대백화점 광주점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반면 경쟁점포인 롯데백화점 광주점은 1998년 함께 출범해 바로 근처에 있지만 현대보다는 매출이 훨씬 좋은 편이었다. 또한 경쟁사인 신세계는 1995년 광천동에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을 끼고 신세계 광주점을 들인 이후 이마트와 CGV까지 반경 내에 구축한 상태다. 게다가 도시의 중심이 광주역에서 광주종합버스터미널로 이동하면서 인근 지역 수요까지 흡수한 신세계 광주점의 매출은 날로 늘어만 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업이익면에서도 좋을 리가 없다. 2012년 실적발표 전인 현대백화점 광주점은 2011년 1320억 원의 매출과 24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는 신세계 광주점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며 롯데 광주점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영업이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마음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 자리 꿰찬 이랜드
결국 현대백화점 광주점을 두고 송원과 새로 계약을 맺은 곳은 이랜드그룹이다. 현재 이랜드리테일은 전국에 NC백화점 9개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광주점까지 합치면 총 10개점이 된다. 이는 백화점 업계 3위인 신세계와 같은 숫자의 점포수로 이랜드의 백화점부문 성장세를 한눈에 보여준다.
유통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이 수익 면에서 미미했던 광주점을 정리했다는 분석과 가격싸움에서 이랜드에 밀려나 지역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는 해석이 교차하고 있다. 초반에는 어차피 위탁경영을 하는 처지에 걱정거리를 계속 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랜드가 송원과 맺은 계약을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랜드는 송원과 위탁경영 계약이 아닌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매출이 올라가 수익이 많아지면 수수료도 높아지는 형태다. 현대백화점이 계약 방식이나 가격 문제로 망설이다가 광주점을 포기해 정지선 회장의 지역 전략 포트폴리오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느긋한 현대? 실상은 ‘동동’
당황한 현대백화점 측은 최근 수도권 등지의 복합몰과 아울렛 사업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는 해명을 내놨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위탁운영해온 광주점은 비교적 소형점포로 송원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 종료된 것”이라며 “수도권 부근의 새 아울렛과 복합몰 점포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화점 업계의 전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현대만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미 업계 1위인 롯데와 2위인 현대의 격차가 큰 것과는 달리 3위인 신세계는 근소한 차로 현대와 엎치락뒤치락할 기세다. 게다가 셋 모두 전국 단위의 백화점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라도 지역 내에 점포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상당한 이미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업황 불황으로 백화점들이 서로의 실적을 숨기기 급한 가운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매출 점포별 순위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위 신세계 강남점, 3위 롯데 잠실점, 4위 롯데 부산점, 5위 신세계 본점으로 보인다.
명색이 업계 2인자인 현대백화점은 6위 신세계 부산센텀시티점, 7위 신세계 인천점에 이은 8위에야 겨우 현대 무역센터점이라는 점포 이름을 올렸다. 신세계 인천점의 매출이 급신장해 2011년 7위였던 현대 무역점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무역점은 계속된 리모델링으로 인해 수익이 감소하기도 했다. 이후 9위 현대 목동점과 10위 현대 압구정본점이 뒤를 따랐지만 10위 중 모두 하위권으로 자존심을 구겼다.
업계도 납득 힘든 전략 펼치나
이처럼 현대백화점이 집중하는 수도권에서조차 상황이 좋지 않은 터에 지역 내 하나 있는 점포를 포기하는 것은 큰 모험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가 광주점을 두고 수익이 미미하다며 포기할 만큼 거점 확보에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VIP 공략이 주특기인 현대가 왜 이를 활용하지 않고 복합몰이나 아울렛에 매달리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현대백화점의 1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 중이다. 홍성수 NH농협증권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의 1분기 영업이익은 당사 예상치인 1244억 원과 컨센서스 1266억 원을 하회한다”면서 “기존점 상장률 0% 내외의 정체 예상, 저마진율 상품 매출 증가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에 현대백화점의 연간 실적 전망치까지 내려가는 추세다. 박종렬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1조1243억 원, 영업이익은 11.3% 감소한 1076억 원에 그쳐 당초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이라며 “실적 부진을 반영해 올해 현대백화점의 연간 수익 예상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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