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건설사 줄도산 은행 PF 탓
부도공포 확산… 나몰라라 금융사
중견 건설사들 불황속 유동성 위기 잇따라 // 채권은행·PF대주단 지원책임 서로 미뤄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건설업계가 또 다시 부도공포에 휩싸였다. 업계 13위 쌍용건설이 상장폐기 위기에 내몰리더니 대기업 계열사인 금호산업도 최근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시공능력 기준으로 업계 30, 40위 규모의 중견 건설사였던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LIG건설 등도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건설사 줄도산 공포를 현실화시켰다.
이들 대부분의 건설사는 흑자를 내던 회사였던 터라 하청업체의 도미노 부도현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들 건설사들이 PF(부동산파이낸싱프로젝트)대출 부실과 금융권의 자금회수 압박에 못 이겨 부도라는 꼬리표를 단 만큼 금융권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시중 4대 금융기관장이 MB인맥이고 연봉이 센 것이 이들 건설사를 옥죈 자금의 결과라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돈 될 만한 자산은 다 팔아 빚을 갚아도 밑 빠지진 독에 물 붙기다. 건설 경기가 좋았을 땐 은행장들이 찾아와 PF자금을 빌려줬다. 이젠 독촉전화만 온다” - 중견건설사 A대표
“주채권은행과 PF대주간의 의견차이가 결국 회사의 연쇄부도로 이어졌고, 하청기업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그런데 최근 4대 은행 직원 연봉이 평균 1억 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황당했다. 결국 내 빛이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마저 들었다” - B건설사 재무 담당자
건설업계 주변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 관련 불안 심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금융권과 비교하면 표시가 날 정도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이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곧곧에서 드러난다.
PF는 부동산 개발 사업자가 아파트나 주상복합, 상가를 지은 뒤 들어올 분양 수익금을 담보로 금융회사로부터 사업 추진을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인데 최근에는 부실대출 사례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경기가 좋았을 당시엔 건설사는 물론이고 PF대출을 해준 해당 금융사도 함께 호황을 누렸지만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건설사는 부도위기를 맞는 반면 해당금융사는 악덕사채업자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은행 PF부실은 관치금융 탓?
이는 은행들이 PF자금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죽어도 금융사는 살이 찌워진다는 말마저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황주홍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현재 농협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4조1154억 원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우리은행 3조2658억 원, 국민은행 2조9684억 원, 신한은행 2조5841억 원, 하나은행 1만8455억 원 순인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의 경우 2011년 PF부실채권이 전체 시중은행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난해 현대건설 관련 PF자금이 일부 줄어들면서 2위로 하향조정됐다. 당시 금융계에선 우리은행이 유독 PF부실이 많은 것은 관치 금융의 폐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부동산 PF 부실채권(고정이하)도 농협이 1조703억 원으로 최대였으며 국민은행(4313억 원), 신한은행(3540억 원), 우리은행(3335억 원)이 뒤를 따랐다. 농협의 부동산 PF 부실채권은 지난해 말(9987억 원)에 비해 716억 원 증가했다. 이 같은 채무변제를 위해 금융사가 건설사들을 괴롭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업계가 “비 오는데 우산 뺏는 격이며, 채권단이 링거를 꽂아주고 피를 빨아가고 있다”라고 성토할 정도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활황기에 은행 역시 사업성 검증은 뒷전인 채 담보를 잡고 무차별적으로 PF영업을 늘려 수익을 거두지 않았느냐”며 “상황이 바뀌었다고 PF대주단과 주채권은행 모두 자금회수에만 혈안이 돼 있고 건설 업체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풍림산업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이 회사에 PF대출을 한 국민은행과 농협이 돈을 지원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한다.
이에 반해 대출은행들은 분양대금 계좌가 시행사와 공동 명의로 돼 있는 만큼 시행사의 합의 없이는 돈을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는 사이 풍림산업은 기업어음(CP) 423억 원을 갚지 못해 부도를 맞았다.
이 뿐 아니라 시공능력 100위 안에 포함된 건설사 중 21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가운데 20위권 내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 역시 대규모 인원감축 등의 소문이 돌고 있다.
PF부실 초래한 금융당국 엄중 문책
이에 따라 지난 3일 감사원은 ‘금융공기업 경영관리실태’ 감사결과를 통해 PF채권 부실에 대해 금융당국의 과실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캠코는 지원대상이 아닌 PF채권을 인수하거나 정당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입하는 등 업무의 비효율로 인해 예금보험기금의 부담이 커졌다고 감사원은 분석했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캠코가 보유 중인 부실 PF채권에 대해 감사원 지적대로 신속히 정리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조사와 처리 방안을 마련·실행해야 한다”면서 “여전히 부실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처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주도의 분식회계 조장사건’”이라며 “이는 정책과 감독이 분리돼야할 필요성을 재차 확인시켜준 사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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