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조부 차경석-부친 차일혁-차길진 생년월일 사이의 신비한 고리

증산묘소 찾은 차길진 법사 가계 3대 째 얽힌 특별한 인연

2013-04-04     김종현 기자

[일요서울|김종현 기자]영능력자 겸 예언자로 통하는 차길진 법사가 동호인 300여 명과 함께 지난 227일 전북 김제 금구에 자리 잡고 있는 증산 영대를 찾았다. 증산 계열의 교단이 50여 개가 되지만 이곳은 유일하게 증산의 성체를 모신 성지다. 이곳을 방문한 차 법사는 임실과의 인연으로 두 번의 영능력을 발휘한 곳이라고 털어놓았다. 

3대째 이은 증산영대 터 

차 법사와 증산과의 인연은 그의 가계 3대에 걸쳐 맞닿아 있어 깊고도 각별하다. 차 법사와 선고 차일혁이 태어난 지역은 금산 성계리 (본적 상의 주소) 근처다. 강일순은 증산교 창시자다. 모악산 대원사에서 하늘과 땅의 원리를 깨우치고 성도(成道)해 핵심교리인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했다. 증산은 8년 뒤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고, 세상의 모든 질병을 대속한 채 세상을 떴다.

증산의 수제자였던 차 법사의 조부 차경석은 보천교 창시자다. 동학농민군의 정읍 지역 두령인 아버지 차치구가 189443세로 흥덕 관아에서 참혹하게 처형당했을 때 차경석은 14세였다. 이후 차경석은 증산의 수제자가 됐고, 증산 사후 신자들은 그를 천자(天子)로 받들었다. 600만 교도를 거느리며 덕유산 기슭에 시국(時國)’이라는 나라를 세울 만큼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그의 부친인 차일혁은 문무겸비 문화 경찰관이었다. 6·25 동란기 빨치산 토벌 담당 전투 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활약했다. 19515월 빨치산이 숨어들 만한 절과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구례 화엄사 대웅전의 문짝들만 뜯어내 불태운 일화, 해방 후 일제 악질 고등계 형사 사이가 시치로를 응징한 일화로 유명하다.

영능력이자 예언가인 차길진은 대중에게는 법사로 통하지만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대행),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등 여러 직함을 갖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내고 있는 유명인이다.

강증산·차경석·차일혁·차길진의 생년월일 사이의 관계는 오묘하다. 증산은 1871919일 전북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정읍군 덕천면 신월리)에서 태어나 190177일에 도통했다 190989일 사망했다.

차경석은 188073일 전북 흥덕군 부안면 호암리에서 태어나 1936410(음력 윤310) 사망했다. 차일혁은 192077일 전북 김제군 금산면 성계리에서 태어나 195889일 사망했다. 차일혁의 호적상 주소는 700여 미터 떨어진 성계리지만 실제 태어난 곳은 당시 움막이 있었던 이곳 증산 영대 터였다. 차길진은 65년 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이들 모두 한 동네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증산의 사망일은 곧 차일혁의 사망일이요, 당시 나이도 38세로 같다. 증산이 옥황상제의 경지에 이른 날 차일혁이 태어났다. 증산 사망 27년 뒤 차경석이 사망했고, 차일혁 탄생 27년 뒤 차길진이 탄생했다.

증산은 미륵도 언급했다. 증산의 미륵은 불가의 미륵이 아니다. 두루, 고루 갖춘() ··선 통합적 존재다. “때가 오면 한 사람이 먼저 도통을 받는데, 1만가지 도를 통일함이라. 이는 곧 천명(天命)이니라고 알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증산은 이제원(夷齊院)과 장신궁(長信宮)에서 ‘21’년 간 해원을 하는 자를 미륵으로 지목했다.  

해원의 아이콘 

차경석과 차길진은 해원의 아이콘이다.

차경석은 차치구는 물론, 차치구의 손에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어줬다. 차길진은 차일혁은 물론, 차일혁의 손에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어줬다. 차경석(車京石), 차길진(車吉辰), 그리고 차길진의 아호와도 같은 후암(厚岩)을 파자하면 셋 다 ‘21’이다.

이승을 벗어나기 직전, 증산은 차경석에게 직접 쓴 현무경한 권을 줬다. 신도에게는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그것을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증산의 유언은 이어진다. “이제 천하를 도모코자 떠나리니, 이 일을 본 후에 돌아오리라. 내가 없을 때, 너희들이 나를 보지 못해 애통하며, 이 곳에 내왕하는 거동이 내게 선연하게 보일 것이다. 내가 너희의 등 뒤에 있어도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찾아야만 서로 만날 것이다. 상말에 이제 보니 수원 나그네라했다. ‘누구인지를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더라는 얘기다. 그러니 너희는 내 얼굴을 잘 익혀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장차 ‘13’자로 오리라.”

증산의 유서(미륵탄생공사서 유훈)가 작성된 1904년 이후 105년이 된 해가 3년 전이다. 1904+105=2009년 차길진은 ‘13’ 열성조(列聖朝)를 모시고 일종의 초혼의례인 구명시식을 집전했다. 증산은 또 천지는 사람을 내서 쓰게 한다고 전했다. 원문에는 (10) (12) 使(18) (16) (14) (19) (16)이 있다. 파자들의 합이 ‘105’. 심지어 정해년 48일생에게 이 천문이 전해질 것이라고까지 귀띔했다. 1947 정해년 48, 바로 차길진의 생년월일이다.

도수(度數), 즉 거듭하는 횟수가 소름 끼치도록 신비롭다. 증산-차경석-차일혁-차길진-.

차 법사는 증산영대를 참배하면서 심고를 통해 증산 상제는 이 땅에 오셔서 귀천 없이 모두가 미륵임을 선포했다이제 상극과 상생이 둘이 아님을 천명했다. 누군들 하늘이 아님이 없고, 누군들 부처가 아님이 없으며 누군들 미륵이 아님이 없는 참주인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시대는 화()의 시대에서 수()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물기운이 강한 호남이 주목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 법사는 평소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종교 없는 세상이며, 종교는 없고 종교적 삶이 있을 뿐이라며 증산 종교가 민족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도약할 때가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처럼 증산·차경석·차일혁·차길진으로 이어지는 깊은 인연에도 차 법사가 최근 증산영대를 찾은 이유에 대해 세간의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