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 ‘힐링맘’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
“가해자 교화 중심 교육정책 피해학생 치유 사회적 책임은 여전히 외면”
●피해학생 치유센터 개소 앞두고 각계 도움 손길 요청
[일요서울|고동석 기자]“우리나라는 어찌된 판인지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문제가 터지면 온통 가해자들을 위한 정책들만 쏟아내는 이상한 나라에요.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가해자의 심성을 뜯어고치는 것에만 치중하고 나라 예산도 대부분 그 쪽으로 쏠려 있어요. 피해 학생들의 아픔과 학부모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트라우마는 모두들 나 몰라라 하고 있어요.”
조정실(55·사진)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회장은 요즘 대전시 유성구에 들어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의 보금자리가 마무리될 것을 생각하며 설렘과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학가협은 가입 회원 3000천여 명 대부분 피해학생 학부모들로 구성된 단체다. 내 아이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당해야 했던 그 숱한 폭력에 억눌린 굴종의 시간들과 따돌림의 악순환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피해학생 부모들끼리 뭉쳐 출발했다.
활동가로 나서게 된 이유
조 회장도 피해학생의 어머니였다. 2000년 4월 학교 친구였던 여중생 5명이 자신의 딸을 잔인하게 집단 폭행했다. 그때 조 회장의 딸은 코뼈가 부러지고 무릎 뼈가 뭉개지는 중상을 입고 몇 년을 정신적 후유증으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부둥켜 울고 나서도 원통함과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른바 ‘성수여중 폭력사건’으로 알려졌던 그때 일로 딸아이가 당했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그는 시청 인터넷 게시판에 피해 학생을 대하는 가해 학생 부모, 학교, 경찰의 해도 너무한 무심함을 고발하고 소송까지 불사했다.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은 파산선고와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 만신창이가 된 딸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피해학생 부모들을 모으고 학가협을 만들어 온 힘을 쏟았다.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등 관계 기관에 아예 출근 도장 찍을 정도로 발이 부르터라 찾아가 항의하고 하소연도 했다.
주말에는 대학로에서 학교폭력 퇴출 캠페인과 1인 시위도 벌였다. 가벼운 처벌에 그친 가해학생과 그 부모들이 두발 뻗고 살아갈 때, 피해 부모들이 매일 같이 웅크린 잠을 쪼개가며 10여년을 넘게 물방울 같은 목소리를 모아 바위처럼 단단하게만 보였던 일들이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다름 아닌 정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등 일련의 조치를 이끌어낸 것이다. 참담한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발해온 언론의 힘도 컸고, 학가협의 끈질긴 저항과 활동도 한 몫 했다. 그러면서 학가협 활동을 해오면서 무조건 가해학생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가해 학생의 치유의 첫걸음은 우선 잘못한 행위에 대한 분명한 벌을 통해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요. 아이의 폭력행위를 가정사의 문제나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등으로 자꾸 변명거리를 주게 되면 가해 아이들이 진심으로 반성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죠.”
그는 무엇보다 가해 학생만 교화시키면 폭력 재생산은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사회의 막연한 낙관주의를 경계한다고 했다. 또 가해 학생 중심의 정책적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는 위(Wee)센터의 전국적 확대하는 것 외에도 올해 6월 90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에 개교할 가해 학생 맞춤형 공립 대안 중학교가 설립되는 것 등 온통 가해자 교정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회 인식에는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상처를 안고 가야할 피해학생과 가족의 치유에는 정작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산 지원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대전 유성구의 한 폐교를 리모델링해 피해 학생 전용 치유센터를 여는데 고작 10억원의 예산을 지원 받았다.
조 회장은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치유센터를 겨우 마련하게 됐지만 어렵사리 타낸 예산 10억원으로는 폐교 리모델링만 겨우 했을 정도에요. 앞으로 센터에 입소할 아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과 24시간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할 선생님들까지 외부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며 하소연했다.
그는 “사회가 지금처럼 가해 학생에게만 초점을 맞춘 대책을 쏟아내게 되면 가해 학생들은 오히려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시 되는 거에요. 피해 학생들은 ‘난 계속 상처입고 피해 받겠지’ 자조하다가 ‘피해자로 바보 취급 받느니 차라리 나를 보호해야 겠다’며 가해 학생으로 돌변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소를 앞둔 치유센터 운영에 대해선 “학가협 회원들과 일부 피해 부모들이 열정적으로 뛰고 있지만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에요. 입소할 아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은 예산이 너무 없어 엄두가 나질 않아요.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걱정만 잔뜩 쌓여 있어요”라고 토로했다.
집안 일상에 매여 있던 주부로 살던 조 회장은 학가협 활동을 하면서 이제 세종사이버대에서 학부 과정 이수 후 상담심리를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활동가의 삶을 체계적으로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다. 학가협 피해 부모 중 희망자에 한해 사회복지와 상담심리를 전공할 수 있도록 대학 측과 협약도 맺었다.
또 조만간 열게 될 기숙형 치유센터가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학부모의 상처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보듬어 줄 안식처가 되길 희망한다. 그는 당분간 대전 유성구에 들어설 치유센터가 시발점이 돼서 전국으로 파급될 구심점이자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