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만들고 살려낸 대한민국, 요즘 엄마들이 망치고 있어요”

[발행인 특별대담]70년대 정·재계의 화제의 인물 '신당동 애기보살' 김현정 예명원장

2013-03-27     고동석 기자

오히라 전 수상 임기, 중국 정치 변화 예언
국가 중대사 고비마다 신통력 발휘 신당동 애기보살유명세
박근혜 정부 성공하려면 인적자원 분배 잘해야
김정은 도발하면 권력 구도 오래가지 못할 것

신통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이에게 꽃을 피우게 하고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물과 같은 존재에요.”

 대한불교 예명원 김현정 원장(67)은 남다른 영적 능력으로 70~80년대 국가 중대사의 미래를 예언했던 신당동 애기보살로 유명하다. 신통한 예지력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김 원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치인, 고위공무원 등 정·관계, 재계 총수들부터 다양한 계층의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특히 그가 1960년대 일본 오히라 수상의 임기를 예언해 일본 열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예언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공산국가였던 중국이 개방으로 돌아서는 정치지형 변화를 내다보기도 했다. 또 베트남 전쟁을 예언한 예지력으로 코리아헤럴드에 소개된 적도 있다.

굴곡 어린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그의 신통력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육영수 여사,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70년대 자유당 정치사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한 것도 바로 김 원장이다. 그가 영적 능력을 발휘한 지 올해로 45여년이 흘렀지만 신당동 애기보살이라는 옛 명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초등학교 시절 갖게 된 신통력  

김 원장은 1946년 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래를 보는 신기(神氣)10살 때인 초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시험을 치르던 문제지 글자가 보이지 않고 백지로 보이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양호실에 간 김 원장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깊은 잠이 들었고, 깨어나 어린 나이로 걸어가기 힘든 한성대학교 뒤편 낙산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오른 낙산 정상 부근 바윗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게 된 것.

그런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럽게도 세상이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별 다른 일이 없이 지내다가 13세가 되는 해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에 불과했던 김 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려진 지폐로 총을 만들어 자유당은 곧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의 첫 예언이었다. 뒤이어 자유당 정부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너희들은 다 총살이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했던 인사들은 5·16혁명 때 모두 사형 당했다. 그때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3년 뒤인 16살에 학교를 마치고 거쳐가는 마을에서 굿판이 벌어졌는데 이끌리듯 구경하러 갔다가 굿하던 무속인이 가오리(수유리)에서 굿을 하는데 나와 같이 가자고 해 함께 간 곳에서 뜬금없이 쓸 줄도 뜻도 몰랐던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한자로 썼다. 다름 아닌 그날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국가 중대사를 딱 맞춘 그의 신비한 영험은 입소문을 타고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번져나갔다. 주위에서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고 하나하나 답해주면서 그가 지닌 신통력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됐다.

그의 부모님은 어린 딸의 신기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한 뒤로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한동안 예지력을 드러내지 않고 여느 여고생들과 다르지 않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거부할 수 없는 예언가의 숙명  

그러나 주머니 속 송곳은 삐져나올 수밖에 없듯 고교를 졸업한 후 학창시절 교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출산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 마주하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시름시름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산약수터까지 가서 정한수를 떠놓고 100일을 기도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의 병세는 호전됐고, 이를 계기로 다시 영적 능력을 회복했다. 

아들의 병환으로 시작했던 100일 기도 후에 김 원장은 베트남전쟁 발발을 예언했다. 이 예언은 코리아헤럴드에 소개됐다. 전쟁이 일어나자 신문에 올랐던 예언 때문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후로 일반인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 외에도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국가 중대사들을 예언하고 또 적중시켰다.  

신당동 애기보살은 단순한 무속인 아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유명한 예언가로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개인적인 소소한 행복에서 점차 멀어지는 자신을 돌아보며 가족들에게 미안함으로 마음 한 구석은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아들이 많은 사람들의 어머니가 아닌, 저에 어머니로 살아주세요라는 간곡한 말에 예언가로서의 명성과 갈채를 모두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의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에는 시련이 뒤따랐다. 평범한 인생이 허락되지 않은 그의 운명 때문인지 남편이 크게 다치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김 원장은 예전 명성을 명성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예언가의 숙명 때문에 내 인생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때 일로 삶의 깨달음을 얻었어요라며 지난 일들에 대해 담담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어떨 때는 영험도 신통력도 잃고 몸도 지칠 때도 있어요. 신통력이 있는 반면 외면하고 살아야 할 것들이 많아요. ()보다 감사한 게 남편이 날 인정하고 밀어주고 지켜준 거에요. 이런 외조 덕분에 예전엔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총애를 받을 만큼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운명과 남북관계 

김 원장은 최근 [일요서울] 고재구 발행인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북한 김정은 정권의 운명, 남북통일의 미래에 대해 여러 말들을 꺼내놓았다. 그는 현재의 국운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해줘야 하는 시기이고, 잘 할 것이라고 본다북한과는 대화의 물꼬를 잡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선 “(한반도에서)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먹고 사는 경제난이 아니더라도 올해부터 내년 이전에 김정은의 권력구도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언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여부에 대해선 우리나라 문제는 사람이 자원인데 이 자원들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며 지도자들이 잘해서 이 문제를 잘하면 된다. 북한과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는 모심의 나라, 어머니가 살린 나라라며 대한민국이 새롭게 우뚝 서기 위해 어머니의 소중함을 유독 강조했다. “옛날 우리 문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어머니가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인적 자원들을 어머니들이 길러내고 만들어 세운 나라인 거죠. 대한민국을 세운 이들은 그런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듣고 자랐어요.”

  그런데 요즘 어머니(엄마)들은 오히려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머니들은 모심으로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온갖 낭비와 사치로 얼룩져 있어요. 병이 안든 곳이 없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40여년 전 육영수 여사 생전에 영산재와 물고기 방생 행사에서 맺었던 각별했던 인연을 소개했다. 그 인연으로 김 원장은 매년 이 행사를 빠뜨리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그는 육 여사도 생전에 자녀들이 잘 되기 위해 많이 애를 썼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원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능력으로 개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이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밝히고 싶어 한다. 더불어 앞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이 꽃을 피우고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물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가길 원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 주고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예언가로 기억되길 희망하고 있다.

<정리=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
<사진=조준호 기자>richappa@ilyoseoul.co.kr

 

 

   
 

고재구 발행인과의 대화록

 

- 발행인 : 김 원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70년대 초부터였죠. 당시 김 원장의 신통력이 언론의 주목과 갈채를 받았는데 지금도 당시 명성이 그립기도 하죠? 

김 원장 : 아뇨 저는 옛날 명성을 명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삶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 피해도 없지 않았다고 봐요.

 

- 발행인 :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부터 김종필 전 총재와도 잘 아는 사이죠? 

김 원장 : 그런 인연으로 언론과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요. 그 후손들하고 인연이 계속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오시는 분들 중에는 4대까지 찾아와요. 정치인, 정부 고위급 인사, 재계 회장들이 절 많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나라를 위하는 일에 도움이 돼 왔다는 점 때문에 제 일을 사랑하고 남에게 물을 주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발행인 :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된 것도 모두 시운이라고 봅니다. 지금 북한 문제가 시끄럽고 꼬이고 있는데 이번 일이 박 대통령에게 득인가요, 아니면 독이 될까요?

김 원장 : 북한 때문에 나빠질 일은 없어요. 반드시 도움이 될 거에요.

 

- 발행인 : 북한의 김정은이 전쟁 같은 장난을 칠 가능성은 없을까요 

김 원장 : 세계적인 전쟁,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난 이전에 금년부터 내년 이전에 김정은 권력 구도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의 문제는 사람이 자원인데 자원을 분배 못하는 것이에요. 지도자들이 앞으로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돼요. 북한보다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경제 문제가 더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