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 핵심부 침투 첩보원 비밀처형 있었다”

신임 국정원장 휴민트 활용 선언 파장 조짐

2013-03-25     오병호 프리랜서

[일요서울|오병호 프리랜서] 북한이 대선을 앞둔 시점인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은 전 세계에 충격과 경악을 안겨줬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우리 정부였다. 우리 정부는 번번이 나로호 발사를 실패해 우주강국 진입이 요원해보였다. 하지만 북한은 마치 자랑하듯 로켓 발사를 성공했다.

무엇보다 제일 충격에 휩싸인 것은 국민이었다. 먼저 북한의 로켓발사에 놀라고 그 다음에는 우리 정부가 로켓 발사에 대한 정보가 먹통이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MB정부가 들어서고 국정원이 원세훈 원장 체제로 바뀌면서 국정원의 대북정보수집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다.

원세훈 원장 임기 내내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이 대북정보부재였지만 로켓발사에 대한 정보조차 먹통이었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놀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은 로켓발사 이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국정원 대북정보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신임 남재준 국정원장이 휴민트를 강화할 것임을 시사해 향후 국정원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휴민트 활용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고 경우에 따라 민간 희생자를 낼 수 있는 사항이어서 국정원이 이 같은 부담을 안고 휴민트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작년 발생한 김일성 동상 폭파 휴민트 작품일수도  
MB·원세훈 국정원 그나마 있던 대북정보라인도 없애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스파이 등을 사용하는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와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여 신호를 포착하는 ‘시진트(SIGINT: signal intelligence)’가 있다.

SIGINT는 다시 레이더 능력과 특성을 파악하는 전자정보수집(ELINT: Electronic Intelli-gence)과 통신의 내용을 파악하는 통신정보 수집(COMINT: Communication HUMINT)으로 나뉜다.

남 원장이 국정원 개혁을 본격화할 것을 예고하면서 언급한 휴민트는 말하자면 인적자원을 활용한 정보 수집을 말한다. 따라서 휴민트는 요원을 특정하기보다 정보를 수집하는 인력을 광범위하게 표현하는 말로 사용된다. 

남 원장의 국정원 개혁은 정보수집부서를 강화하고 정보 수집인력을 보완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또 휴민트의 운용을 본격화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정원 예산편성과 규모도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계속되는 핵 위협으로 안보불안이 초래되자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남 원장은 이르면 4월 중순부터 국가정보원 개혁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현 국정원이 지난 정권 내내 정보력 부재 지적을 받아온 만큼 고유 업무 영역에 충실한 조직으로 만들 계획이다. 특히 최근 대북정세의 불안으로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큰 만큼 대북정보력 강화를 통해 국정원의 무능한 이미지를 씻어 내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국정원 개혁 시나리오

정부는 국내 및 해외 파트로 이원화된 현 체제에서 국내 파트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대신 대북 정보 수집·분석 중심으로 조직을 바꿀 계획이다. 개혁의 핵심은 국정원 고유 업무의 부활과 강화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정권 때 대북정보수집 관련부서를 축소하고 북한 관련 중요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북정보력 부재 비판을 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현재의 국정원은 국내 파트가 미국의 FBI(연방수사국)처럼 기능과 역할이 확대됐다”면서 “본래 국정원은 CIA(미 중앙정보국)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북한 정보와 해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반대로 국내 정치에 개입할 소지가 너무 커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 안보와 방첩, 대공 정보를 전담하는 본래의 목적과 기능에 맞는 최고의 정보 조직으로 국정원이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남 후보자를 중심으로 국정원 조직을 대북·산업·보안·외사·공항·항만 등의 정보 파트로 개편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 부처와 국내 각 기관에 대한 국정원 직원의 상시 출입 관행을 폐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것은 청와대가 국내 파트를 없애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청와대가 국정원의 축소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파트 자체를 없앨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이자 확고한 안보관을 가진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남 원장을 국정원장 자리에 앉힌 것은 국내정치보다 안보문제에 치중하려는 계획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조직뿐 아니라 기존 인적 자원에 대한 전면적인 교체도 단행될 것으로 전망 된다.인적 자원은 대북정보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약화되기 시작한 대북 휴민트가 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청와대에서는 대북정보 라인을 살리는 게 가장 급선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원장을 보내 국정원을 장악하면서 대북정보 라인이 다 무너졌다고 보고 있다. 이는 비단 청와대와 정치권에서만 존재하는 시각이 아니다.

원세훈 원장은 대북관련 부서 축소와 관련해 “마음만 먹으면 중국을 통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는 시대에 기존의 대북첩보부서 운영은 무의미하다”며 오히려 국내 활동을 강화했다. 차라리 국내 간첩을 잡는 게 보안을 지키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를 두고 국정원 안팎에서는 원세훈 원장의 자질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MB정부에서 가장 장수한 장관급 인사로 남았다.

휴민트 상당부분 손실

그러나 휴민트의 부활과 국정원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휴민트 정보라인은 상실된 지 오래고 국정원은 각 분야 전문가라 불리는 정보통 대부분이 정치 희생양이 되어 자리를 떠났다.

정보관련 업무를 한 김모씨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안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북한 관련 정보가 중국의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조선족보다 어두운 상황이다.

이에 청와대는 국내 문제는 청와대가 별도 조직한 직속 정보라인이 관리하고 대북 국외 문제에 국정원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정원을 갑자기 변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고 국정원 내부의 전문가 부재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김씨는 “우리나라가 관리하던 휴민트는 이제 대부분 일선을 떠났다. 죽거나 숨어살고 있는 형편”이라며 “우리나라를 위해 일했던 외국국적의 휴민트는 더 이상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휴민트의 부활을 통한 국정원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2만4000명이 넘는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북한 각계각층과 맺고 있는 인연만 해도 엄청난 정보자산이다. 문제는 이들이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데 있어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김씨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라인의 붕괴 원인을 두고 “휴민트는 정보기관이 요원과 기관과 요원이 관리하는 민간 정보원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정부는 이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거나 희생될 경우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다”며 “해외의 경우 물밑에서 접촉을 벌여 협상을 하거나 사망할 경우 사후 보상을 해 주는데 우리 정부는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김씨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김씨는 “이명박 정권은 북한에서 우리나라 주부 관광객이 총살당해도 침묵했는데, 우리 정부를 위해 일하던 휴민트가 대거 적발돼 숨 막히는 북한 탈출극을 벌일 때도 철저히 외면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의 증언은 계속됐다. 김씨는 “날짜와 장소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명박 정부 때 북한 주민들이 무더기로 목숨걸고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 이들은 우리 정부에 도움을 구했다. 당연히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외면했고 지금 이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고 쫓기던 바로 휴민트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탈출을 철저히 묵살한 것은 국정원이었다.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과 원세훈의 반역


김씨는 “누군가 진보좌파 정권을 두고 친북성향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명박 정권 역시 반역행위에 준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고 싶다”며 “이 전 대통령과 원세훈 원장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데도 미국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모른 척 했다”고 비난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은 국정원에 철저하게 정치권 사찰만 주문했고 원세훈 원장은 그에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다. 이는 원세훈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어느정도로 대북정보에 무능했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대선 직전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때도 우리 정부와 국정원은 까맣게 몰랐다.  로켓 추진체를 해체하는 것처럼 위장한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아 발사가 임박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기 전날까지만 해도 기체결함으로 인해 사실상 연내발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김정일 사망 이틀 뒤인 2011년 12월 19일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했지만 발표 직전까지 그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하고 허둥댔다.

심지어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도 그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얻어내지 못하고 북한 방송과 외국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고서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했다.

북한 정보 수집을 주 임무로 하는 국가정보원의 무능을 드러낸 사례들은 또 있다. 미국 농구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발언을 통해 비로소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을 의심케 한다.

한편 대북 인적 정보망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와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왕설래가 있긴 하지만 이 시기에 해체된 인적 정보망 숫자는 적어도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이때 무너진 대북 인적 네트워크가 다소 복원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해외 대북 소식통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혀 나아진 바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북한 동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다.

작년 7월 발생한 일명 ‘동까모’ 사건에 대한 진실도 오리무중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휴민트를 정부가 버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까모는 ‘김일성 동상을 까부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탈북자 전영철씨에 따르면 이 모임은 한국 내 탈북자들로 구성됐다.

북한은 같은 달 16일 “동상과 대기념비를 파괴하려던 자들이 적발·체포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 주장과 관련, 북한은 사흘 뒤인 19일 탈북자 출신이라는 전영철씨를 ‘범인’으로 지목,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60대 남성의 기자회견 내용을 공개했다. 특히 이 남성은 자신의 배후에는 남한과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측 정보당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북한 당국에 붙잡힌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씨는 “과거 북한 핵심시설 곳곳에 휴민트가 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로 이들의 신원이 드러나 주요 휴민트들이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며 “이들의 죽음을 아직 우리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또 이들의 희생을 초래한 이들에 대한 책임론 조차 나오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ilyo@ilyoseoul.co.kr